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Feb 26. 2023

(42)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2)

인간의 달리기: 사냥부터 마라톤까지

"매일 아침 아프리카에서는 가젤이 깨어난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안다. 아침마다 사자도 깨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인지, 가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태양이 떠오르면 당신은 달려야 한다."


-크리스토퍼 맥두걸



이전의 글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지는 육체적 강점인 달리기, 그 중에서도 장거리 달리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간이 ‘어떻게’ (이전의 글에서는 ‘왜’라고 표현했지만) 잘 달리는지에 대해, 그것은 우리의 신체 구조 때문이라는 답 또한 알아보았다. 오늘은 분량 상 넘어갔던 저번 글을 다소 보충하고, 두 번째 내용으로 넘어가 보자.



달리기 그리고 열: 털과 땀이 이끈 달리기의 진화


우리가 가진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열 배출이다. 마치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연락을 주고받을 때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연산이 발열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운동을 하게 되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증진되고 혈류가 확장되며, 근육에서 열에너지가 대량으로 생성된다(림 1; 불에 대한 이전의 글서 우리는 몸에서 ‘조절되는 연소’ 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조절되그렇지 않, 연소는 열을 발생시킨다; 미주 1).


그림 1. 운동하는 사람의 열화상 이미지. 많은 열을 발생시켜 방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올바르게 배출되지 못하는 열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열사병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열을 생성하는데(대략 100와트로, 커다란 백열전구 정도다-지하철에 사람이 들어차 있을 때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이러한 열이 올바르게 배출되지 못할 경우 생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고,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림 2.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털을 점차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타 영장류처럼 얼굴 부근의 털만 잃었지만, 점차 몸의 다른 부위도 맨 피부를 드러내게 됐을 테다.


전신의 근육을 몇 시간동안 최고 효율로 가동해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 시에는 이러한 열의 효율적 배출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이러한 열의 배출에 매우 효율적인데, 바로 땀샘이 존재하는, 털이 없는 피부를 가지기 때문이다(그림 2).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털이 거의 없이 벗겨진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우리는 의복에 대해 다룬 이전 글에서 옷의 진화와 인간의 털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마 이러한 진화는 달리기와 함께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곳에는 땀샘이 높은 밀도로 위치해 있다. 이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은 증발하며 기화열로 열을 빼앗아가 몸을 식혀 준다.


그림 3. 개는 몸통에 땀샘이 없다. 그래서 대신 큰 혀를 이용한 증발냉각을 통해 몸을 식힌다.


 땀을 흘리는 능력은 전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오히려 귀찮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뜨거운 온도에서도 장시간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개를 보면, 이들은 순간적으로 높은 속도를 내 달릴 수 있지만 잠시 뛰고 나면 혀를 내밀고 헥헥거린다(그림 3). 혀를 통해 침을 증발시키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 온도를 낮추기 위함인데, 이것만으로는 전신의 열을 방출하기에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회복이 오래 걸린다. 반면 인간은 올라간 열과 심박수를 빠르게 낮출 수 있고, 빠르게 다음 운동을 준비할 수 있다. 근지구력이 좋은 셈이다(미주 2).


그 뿐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가설들이지만 인간이 두 발로 일어선 원인 중 하나를 이 온도 조절에서 찾는 가설도 있다. 뜨거운 사바나의 직사광선을 맞는 표면적을 줄이기 위해 일어섰고, 이 때 직사광선이 바로 내리쬐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카락만 남게 되었다는 가설이다(우리 모두 머리카락이 체온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미용을 해서 머리를 짧게 자르면 유독 춥고 덥게 느껴지지 않는가). 혹은 일부 학자들은 뇌가 커진 이유 중 하나로 체온의 상승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뇌가 클수록 온도가 빠르게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또한 우리의 뇌는 두개골 안에서 뇌척수액이라는 액체에 떠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수랭식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왜 달려야만 했는가?


각설하고, 그럼 우리는 왜 잘 달리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잘 달려야만 했는가(미주 3)? 그것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달리기 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전의 글에서 다루었듯 인간은 큰 뇌를 유지하기 위해 다량의 고기를 섭취해야 했던 예외적인 동물이었다. 이러한 고기를 보충하기 위해선 인간은 효율적인 사냥꾼이 되어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근력과 작은 이, 흠집도 낼 수 없을 만큼 약한 손톱으로 우리가 어떻게 거대한 먹잇감들을 사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가진 지구력, 그리고 협동 능력을 통해 성취될 수 있었다.


그림 4. 인간이 어떻게 자신보다 훨씬 크고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을까? 원인 중 하나를 우리의 달리기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초식동물은 으레 다큐멘터리 등에서 볼 수 있듯, 포식자를 피해 도망친다. 만일 이들을 쫓던 포식자가 치타나 사자였다면 재빠르게 뛰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냥꾼들은 인간이다. 인간은 비록 순간 속도는 느리지만,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쉬지 않고, 중간중간 구비한 물을 섭취해 가면서 동물을 쫓아서 달린다. 몇 십 분, 몇 시간이 지나면 동물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끊임없이 달리다가 수분 부족과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고 만다(그림 4). 그러나 인간은 끄떡없다. 비록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힘들게 달렸지만, 대신 아무 부상 없이 이들은 손쉽게 사냥감을 포획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 몇 명이 무리를 이루면, 이들은 사자와 같은 맹수도 똑같은 방법으로 잡을 수 있다. 일부 아메리카 부족들은 신성한 의식에 사용하는 가죽을 얻기 위해 활도 창도 사용하지 않고 이러한 방식으로만 동물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원시적인 사냥법인 추적 사냥(persistence hunting)이다.



사냥꾼이 되기 위한 두 번째 능력: 던지기


이러한 사냥에 한 가지 더 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우리의 두 번째 뛰어난 운동 능력인 던지기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엄청난 던지기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다른 동물들도 던지기 자체는 할 수 있지만(특히 동물원의 원숭이들은 관광객에게 돌이나 분변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만큼의 힘과 정확도를 낼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그림 5. 투창기(아틀라틀)을 사용하는 모습. 간단하게 모양을 낸 나무토막에 불과하지만 투창의 위력을 배는 강하게 해 준다.


메이저리그에서 기록된 최고 속도의 투구는 아롤디스 채프먼이 2010년 기록한 시속 169km 다. 또한 올림픽의 투창 기록은 98.48미터인데, 이것은 맨몸으로 던진 것이고 창 좀 썼던 사냥꾼들은 대개 투창기라는 도구를 이용했는데(그림 5; 2만 년 전도 등장하는 유서깊은 도구다), 투창기의 도움을 받으면 시속 150km 로 2-300미터까지도 창을 날릴 수 있었다(미주 4). 이러한 던지기 능력으로 돌이나 투창을 던지며 집단으로 쫓아오는 인간을 동물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러다 보면 동물들은 부족한 근지구력과 열 발산 능력으로 인하여 쓰러졌을 테다. 이것이 인간이 훌륭한 사냥꾼이 된 방법이다(미주 5).


그림 6. 인간만이 가지는 두 가지의 파지법인 던지기와 몽둥이질 파지법(좌). 이는 손의 모양 변화 덕분이다(우). 침팬지와 다르게 커진 엄지와 작아진 나머지 손가락을 보라.


실제로, 인간의 진화에 있어 손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를 추동한 것이 던지기라는 주장이 있다(그림 6, R Young et al., 2003, J. Anatomy 에서 그림을 차용하였다). 돌 따위를 던지기 위해서는 엄지가 다른 손가락과 마주보는 형태를 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충분히 길어서 큰 돌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확도를 위해 각 손가락이 정밀하게 조절될 수 있는 신경학적 토대가 필요한데(프로 야구 선수들은 2천 분의 1초의 시간 정확도로 손가락을 놀려야 한다), 인간의 손은 진화 과정에서 이 모든 것을 얻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손 동작이 있는데, 그게 바로 Opposition이라는 동작이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맞대는 동작이다(한 번 해 보라). 이러한 동작은 엄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며 가능하게 되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밀한 손동작을 가능케 했다.



마무리


이번 두 글에서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달리기와 던지기라는 두 가지 신체 능력이 어떻게 그리고 왜 진화하였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는 동물을 위협하기 위해 던졌고, 그들을 죽이기 위해 달렸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지금도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달리고 또 던진다. 축구, 야구, 달리기와 투포환을 볼 때 우리의 몸에 새겨진 또 하나의 흔적들을 생각해 보며, 때로는 나가서 뛰어 보기도 하자. 무엇보다, 뛰는 것은 건강에 좋다! 수십만 년간 뛰기 위해 진화해 온 몸뚱이인데 어련하겠는가. 이에 더불어, 이번 글에서는 인간이 뛰어난 사냥꾼이 된 또 한 가지의 이유인 협력에 대해 다루지 못하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도록 하자.



미주 Endnote


미주 1.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 우리 몸은 추울 때 열을 생산한다. 떨기를 통해서. 근육을 강하게 반복적으로 수축시키면 이들은 우리가 운동할 때와 같이 열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열을 통해 우리는 체온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교토 대학의 카즈히로 나카무라 교수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10년 이상 진행해 왔는데, 우리의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온도 감각이 부완핵을 통해 시각교차전핵을 지나 시상하부로 전달되고, 여기서 뇌간의 온도 조절 중추를 조절함으로써 떨림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체온을 조절하는 다른 메커니즘 하나는 갈색지방조직(brown adipose tissue, BAT)인데, 이들은 수많은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열을 발생시킨다.


미주 2. 물론 다른 동물들도 열을 방출하는 수단을 당연히 마련했을 테다. 대표적인 것이 코끼리의 귀와 같은 넓은 방열판으로 작용하는 신체 부위다. 앨런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다(더운 곳에서는 신체 말단이 길고 넓어져 열의 방출을 유도한다). 또한 도마뱀과 같은 종들은 바람이 잘 부는 곳에서 입을 벌려 점막을 노출시켜 몸을 식히기도 하며, 독수리와 같은 일부 조류들은 자신의 다리에 분변을 배설하여 축축하게 적심으로써 땀이 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꿀벌들도 장기간의 비행을 하고 나면(이것도 이전 글에서 다루었다) 많은 열이 생기는데, 꽃에서 채집한 물질들을 몸과 얼굴에 펴 발라 열을 낮춘다. 물론 그냥 땀을 흘리는 다른 동물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말인데, 말은 격렬한 운동 동안에 시간당 15리터가량의 땀을 흘릴 수 있다.


미주 3. 이렇게 잘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몸이 장거리 달리기에 일종의 ‘보상’ 을 할당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high 는 약을 한 것과 같은 들뜨는 기분을 뜻한다) 라고도 불리는 달리기 중의 행복감이 그것인데, 우리는 장기간의 달리기를 할 경우 체내의 다양한 엔도르핀 양이 상승하며 행복감과 고양감을 느끼게 해 주며, 에너지가 소모된 근육과 관절에서 오는 통증 신호를 차단해 준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엔도르핀뿐 아니라 체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대마초의 성분과 비슷한 물질인 엔도카나비노이드 또한 관여한다(J. Fuss et al., 2015, PNAS). 뭐가 됐, 굶어서 죽는 것보단 단기간의 통증 신호를 차단해서 사냥을 하도록 하는 게 개체의 생존에는 나았을 것이다.


미주 4. 이러한 던지기 능력은 실제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간접적 증거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고대인의 유골을 살펴보면 이러한 창 던지기를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서 생기는 흔적들(예를 들면, 팔꿈치나 어깨 뼈와 관절의 특정한 마모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비슷한 예시로, 옛날 영국 궁수의 유골을 보면 오른쪽과 왼쪽의 비대칭성과 함께 어깨뼈의 변형을 확인할 수 있다. 무려 50킬로그램에서 100킬로그램의 장력을(현재 올림픽 양궁의 2-4배) 어릴 적부터 매일 훈련하던 흔적이 뼈에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미주 5. 이것은 온갖 디지털 기기와 화포류로 무장한 현대전에도 아직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류탄 투척이다. 아직도 몇몇 국가의 정예병은 척탄병(Grenadier)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이들은 손으로 무거운 폭탄을 던지던 정예 부대의 후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까지 도달하며, 현대 올림픽 종목에 있는 투포환도 궤를 같이한다.


작가의 이전글 (41)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