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치킨을 사랑해서 정말 다행스러워!
우리 아빠는 떡, 빵, 고구마 같은 부식을 참 좋아한다. 아빠의 핏줄들이 모두 그러해서 어릴 적 고모집에 가면 항상 옥수수 찐빵이 있었고, 할머니는 9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모나카나 도넛, 꽈배기를 보면 반색하신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에겐 그런 부식들은 그림의 떡에 가까웠다. 가끔 고모집이나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 거실 탁자나 식탁 위에 으레히 놓여 있던 빵이나 부식 바구니가 그렇게 부러웠다. 우리 집엔 그런 게 없었다. 전업 주부로 집안의 살림을 총괄했던 엄마가 부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또래의 어머니들에 비해 항상 마른 편이었고 끼니 외의 부식을 즐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엄마의 끼니는 유난히 기깔나서 밥상에서 받는 끼니나 도시락으로 꺼내는 끼니나 항상 상다리가 부러지거나 도시락이 미어 터질 정도로 거나했다.
아빠의 핏줄들은 부식을 즐기는 대신 술은 젬병이었고, 엄마의 핏줄들은 부식을 즐기진 않지만 모두 술고래였다. 아빠는 회사 생활을 하느라 후천적으로 주량을 늘렸고 엄마는 술고래 집안에서 술을 제일 적게 마시는 사람이라 두 사람의 주량은 얼추 비슷했다. 나는 그런 엄마와 아빠의 핏줄을 모두 받았다. 주량은 적당했고 집안의 부식은 항상 모자랐으며 엄마가 차려주는 끼니는 늘 조금 넘쳤다. 우리 집에서 성장하는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나는 자연히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고 어릴 적에는 워낙 살집이 좋아 대체로 통통한 아빠의 핏줄들을 닮은 줄 알았는데 클수록 주량이나 하체가 뚱뚱한 체형이나 저혈압 증상 등이 외가의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살집은 그대로였지만.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엄마와 나의 입맛은 치킨으로 통일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야자와 학원을 마치고 10시 가까운 시간이 되어 집으로 귀가해 씻고 나오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출출하지 않냐고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꼬드김에 홀랑 넘어갔고 우리의 야식 메뉴는 언제나 치킨이었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바꾸기도 하고 양념치킨, 후라이드치킨, 간장치킨, 오븐구이치킨 등 치킨에 발린 소스를 바꾸어가며 시킬 수 있었기에 질리지도 않고 언제나 치킨을 시킬 수 있었다. 자연히 아빠와 남동생도 치킨 박스로 몰려왔다. 닭다리는 당연히 나와 남동생 차지였고 엄마는 닭날개가 맛있다며 날개 두 쪽을 차지했다. 아빠는 야식으로 먹는 치킨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가끔 오븐구이치킨에 딸려 오는 떡강정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치킨을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우리는 점당 100원짜리 카드게임(훌라, 포카)을 하거나 고스톱을 치키도 했다. 나와 남동생도 용돈에서 벌금을 내야 하는, 정당하다면 정당한 게임이었고 치킨이 도착할 때쯤이 되면 딱 치킨 한 마리 값만큼 벌금이 모였다. 이면지에 벌금 표를 그리고 계산기를 꺼내 공정하게 벌금을 모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능을 마쳤을 때 우리 가족은 노트 한 권 분량의 벌금표를 모을 수 있었다.
먹을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엄마의 진두지휘로 우리가 처리한 치킨 박스만 해도 족히 100박스는 되지 않을까? 단 것이 당기면 편의점이나 슈퍼에 들러 초콜릿이나 과자 한 두 봉지를 사서 그 자리에서 다 해치우고 집에는 부식을 쌓아 두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배가 고프면 당연히 전화기를 들어 치킨가게에 배달 전화를 넣고 쿠폰을 모은다. 물론 가족들이 둘러앉아 사행성 카드놀이를 즐기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남의 집에 예쁘게 올려져 있던 빵바구니와 과자바구니를 그렇게 부러워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집이 당연히 야식으로 치킨을 즐기고 부식을 멀리하는 줄 알았다. 덕분에 결혼 후 집에 손님도 오지 않았는데 내가 먹으려고 빵을 사러 빵집에 가는 것도 몹시 어색했고 1만원 이상 빵을 사는 것도 어색했으며 빵 한 봉지를 뜯어 그 자리에서 다 먹는 것도 아주 어색했다.
그러나 생활에 젖어드는 것이나 핏줄이 당긴다는 것은 이토록 무서운 일이다. 결혼 생활에 세월이 차츰 쌓이기 시작하며 나는 식빵을 집에 쟁여놓고 필요할 때마다 팬에 구워 잼을 발라 먹게 되었다. 주말마다 계란 토스트를 해 먹고 싱크대 하부장 한 칸에 과자 상자를 두게 되었다. 살림의 본질이 미니멀한 사람이라 빵은 가끔 두어개만 사는데, 사는 족족 (필요할 때 에어프라이어에 데피기 위해) 냉동실로 들어간다. 과자 상자에 쟁이는 과자도 채 5봉지를 넘지 않는다. 그래도 필요할 때마다 냉동실이나 과자 상자를 들락거리며 빵이며 도넛이며 과자를 먹을 때마다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행복에 행복하다. 나는 엄마에게서 금지당한 아빠의 핏줄이 몹시 당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엄마를 따라 치킨을 그렇게 부시다가 이제 탄수화물을 갈아넣고 있다니 최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내가 그분들의 딸이라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처럼 행복했다.
결혼과 함께 헤어졌다고 생각했던 야식 치킨과는 의외로 얼마되지 않아 다시 만났다. 육아를 시작하며 육퇴 후 야식은 습관이 되었고 쟁여둔 부식이 떨어져 배달을 해야 될 때면 남편은 늘 치킨을 원했다. 엄마와 남편이 같은 것이라고는 우연히 성본(性本)밖에 없는데 나는 치킨을 주장하는 남편에게서 나를 꼬드기던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가끔 치킨이 질려서 다른 걸 시키자고 하면 남편은 말로는 알겠다고 하면서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엄마와 남편 사이에 세월이 많이 지나가며 배달 전화는 배달 앱으로 바뀌었고 굳이 쿠폰을 모을 필요도 없으니 다양한 선택에 거침이 없었다. 비록 치킨으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아직 아이가 어려 닭다리를 사이 좋게 나누어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남편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함께 치킨을 먹을 순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내 닭다리!)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편의 옆얼굴이 꼭 그의 뱃살처럼 푸근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뱃살이며 무너진 옆얼굴도 푸근하기는 마찬가지다. 결혼 전 자기 아버지의 입맛에 따라 회와 호식이 간장치킨 말고는 딱히 시켜본 배달 음식이 없었다는 남편은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남편이 카드놀이며 고스톱이며 보드게임 등등 각종 게임에 쥐약이라 조금 잘려나갈 수밖에 없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같이 닭다리를 뜯는 나도 행복한 것은 마찬가지다. 둘 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소화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으니 치킨에게서 행복을 느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행복이 귀해지는 깨달음이다.
사실 나는 치킨을 좋아하긴 했던 걸까? 엄밀히 따지면 조금 아닌 것 같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 평생을 함께 할 그들의 소울푸드가 치킨이라면 그래도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무슨 치킨 시켜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