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들어요, 두 번째로 맛난 것부터.
소금빵이라는 이름은 브런치 카페를 검색하다 처음 만났다. 친구들과 모처럼 평일 브런치를 해보자며 약속을 잡고 어디를 갈까 검색하다 근처에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가 썩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 카페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가 바로 시오빵이란다. 시오빵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탈리아 느낌이 물씬 난다. 손바닥만한데 개당 3천원 가까이나 한다니 비싸다. 무슨 빵인가 싶어 블로그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금을 뿌려 짭짜름한 맛이 좋단다. 이 빵 때문은 아니었지만 우린 이 카페에서 만났다. 시오빵도 두 개 주문했다. 소금 결정이 너뎃개 가운데에 콕콕 박혀 있다. 한 입 맛보니 소금보다는 버터 맛이 강하다. 버터 맛을 좋아하는데도 이 가게의 문제인지 시오빵의 문제인지 또 찾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시오빵 또는 소금빵이 조금씩 카페나 베이커리에 퍼질 때였다. 썩 익숙하지 않던 소금빵은 코로나가 조금씩 수그러들던 올해 늦봄 친정부모님과 딸아이와 함께 들른 교외 베이커리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저수지 앞의 주택을 개조한 곳으로 잔디밭에 테이블을 설치해 완전 개방하였고 실내보다 야외 테이블이 더 많은 곳이었다. 올해 유치원에 간 딸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녀도 되는 예스키즈존이었고 부모님도 저수지와 그 너머 산을 바라보며 느긋이 커피를 마시거나 한 바퀴 산책하기에도 괜찮았다. 원래는 점심을 먹고 오기 좋지만 사람이 조금이라도 적을 때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일부러 애매할 시간에 들렀다. 베이커리 카페니 빵을 넉넉히 주문해 출출함을 덜기로 했다.
나는 초콜릿이나 사탕, 젤리의 단맛을 좋아하긴 하지만 빵과 음료로 영역을 넓히면 취향이 매우 단호해진다. 단맛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심심한 치아바타나 통식빵을 양껏 담을 수는 없었다. 적당히 부모님과 아이의 눈치를 보며 소시지 패스츄리, 크루아상, 단팥빵 등을 담다가 소금빵을 발견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이름표에 왕관까지 달아 놓았다. 부모님은 짜서 어떻게 먹냐고 바로 외면했고 딸아이는 이때만 해도 크루아상 마니아였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빵 중 하나인 올리브 치아바타와 가늠하다 결국 이 소금빵을 하나만 담았다.
빵을 담고 계산하고 잠깐 기다렸다가 받아 야외 테이블로 나오니 부모님은 일찌감치 전망 좋고 넓은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아 두었다. 테이블은 텅 비었고 세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한 바퀴 산책 중이다. 빵과 커피를 가득 담은 트레이를 두 손에 받쳐 들고 큰 목소리로 모두를 부른다. 빨간머리 앤이 된 것만 같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부터 한 모금 마시고 소금빵을 한 입 우물거리니 절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온 것만 같다. 한 손 만한 소금빵을 네 조각으로 나누니 한 조각만 먹으면 끝이다. 내심 아쉬워하며 친정부모님과 딸아이에게도 한 입씩 권했다. 다들 잠시 우물거리더니 아버지도 내심 아쉬운 얼굴이다. 딸아이는 대놓고 더 없는지 트레이를 들여다보다 친정엄마의 한 조각을 받아 먹고는 잔디밭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에게 하나 더 드시겠냐고 물어봐야 체면을 차리느라 되었다고 한다. 아직 다른 빵들이 수북히 남았지만 다시 안으로 들어가 소금빵 두 개를 더 주문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 빵을 한 조각 우물거리다 멍을 때리며 저수지와 너머 산을 바라보다 딸아이의 부름에 응하여 잔디밭을 같이 거닐다 자리로 돌아오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하다 보니 정오가 지나고 한창 더울 시간이다. 모두 테이블로 돌아온다. 어째 다른 빵들은 손도 대지 않은 듯 그대로인데 소금빵 자리만 없다. 왔다갔다하며 내가 한 입, 멍을 때리다 아버지가 한 입,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허기졌던 딸아이가 한 입, 이건 무슨 맛인가 궁금했던 엄마가 한 입 하다 보니 소금빵이 다시 동났다. 아버지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화장실이라도 가시는가 했더니 웬걸, 소금빵을 두 개 더 사왔다. 우리 가족은 그 자리에서 추가된 두 개의 소금빵을 마저 동내고 남은 빵들은 가게에서 미리 준비해둔 비닐 봉지에 고이 모셔 왔다. 소금빵에 왕관 마크를 붙여놓았던 이 가게의 자신감은 옳았다. 날씨가 더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식당에 들러 차가운 메밀막국수를 한 그릇씩 말았으니 완전히 탄수화물을 폭발시킨 날이었다
친정엄마는 딸아이가 4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 가정보육을 도맡으셨다. 그동안 우리는 친정 바로 옆 아파트에서 지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이사를 갔다. 친정엄마는 차로 15분 거리의 우리 집까지 출퇴근하며 이번에는 아이 등원을 전담했고 가끔 나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하원도 담당했다. 그리고 올해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서 등원은 남편이, 하원은 내가 전담하게 되며 드디어 친정엄마는 아이 보육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와 딸아이는 주말마다 반나절 정도 친정에 들러 놀멍쉬멍 시간을 보내고는 하는데 빈손으로 가기가 괜히 아쉽다. 커피를 사 가기도 하고 과일도 사 갔었는데 반응이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소금빵이었다. 평소 빵이나 떡 같은 부식을 좋아하면서도 당뇨 때문에 절제하던 아버지는 가끔 바게트빵으로 아쉬움을 달랬는데 단맛이 없고 고소한 소금빵이 마음에 쏙 든 눈치였다. 그전까지 크루아상 마니아였던 딸아이는 이때부터 소금빵의 맛에 눈을 떴다.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나는 할아버지와 아직 볼살이 통통한 아이가 나란히 앉아 소금빵을 우물거리는 모습이 나름 귀엽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친정아버지와 딸아이에게 내어 주느라 막상 나는 소금빵을 양껏 먹을 수 없다는 점이지만, 나만 이 소금빵을 좋아했다면 양껏 소금빵을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밥이 지겹다 싶을 때 식빵 한 통만 겨우 사서 오래도록 냉동실에 넣어놓고 먹을 정도로 빵에 돈을 쓰는 것은 인색한데 이 소금빵만은 이래도 적을까? 이 정도도 부족하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음껏 담는다. 친정아버지가 가끔 일이 일찍 끝나 딸아이를 보고 싶다며 우리집에 잠시 오실 때마다 내놓으면 아버지도 이 소금빵만은 거절하지 않고 깨끗이 다 드신다. 딸아이와 살짝 경쟁이 붙는 것이 후일담처럼 귀엽다. 먹기 좋도록 소금빵을 조각조각 자르며 버터가 적은 꽁지와 제일 맛있는 가운뎃조각을 가늠하다 결국 가운뎃조각 한 입을 그들 몰래 먼저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절로 킥킥 웃음이 난다. 많이 드세요, 두 번째로 만난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