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살찌우는 붕어빵, 계란빵, 국화빵
지난 토요일 저녁 남편과 아이와 함께 마트에 들렀다. 계산을 마치고 옥상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무빙워크에 막 올라타는데 아래쪽 매대에서 오방떡을 판다고 써붙여 놓은 것이 보인다. 오방떡이라니 추억의 이름이다. 이렇게 쌀쌀한 계절이 돌아올 때면 포장마차에서 여러 가지 군것질거리들을 판다. 그중 어린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이 오방떡이었다. 동그랗고 미끈한 겉모습도 마음에 들었고 속에 든 흰 앙꼬도 마찬가지로 깔끔한 단맛을 풍겼었다. 추억을 거듭 되짚어 봐도 그때 이후 오방떡을 본 기억이 없다가 이렇게 재회하니 반갑고 놀랍다. 오방떡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군것질거리치고 지나치게 미끈하게 생긴 탓에 인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외출할 때 걸치는 옷의 개수와 무게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그걸 다 내려놓고 체중계에 올라가도 무게가 날로 무거워지는 걸 보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길거리에 하나 둘 늘어나는 군것질거리 포장마차를 보면서도 겨울을 실감한다. 잘 사먹지도 않는 주제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제일 반갑다. 붕어빵 포장마차는 잉어빵이 등장하며 오히려 귀해졌다. 그러나 붕어빵은 잉어빵보다 어감이 귀엽고 더 통통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오방떡을 좋아했던 나는 붕어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드라마 속 추억은 아니지만 가끔 아버지가 퇴근하시며 붕어빵 한 봉지를 사오시면 설렌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붕어빵은 흐느적거리고 눅눅했다. 분명히 막 받아 넣었을 땐 탱탱하고 바삭하고 따뜻했을 것이다. 흐느적거리고 눅눅한 대신 약간의 온기는 남아 있었다. 한 입 베어무니 눅눅한 살점이 속에 든 팥을 지탱하지 못하고 같이 줄줄 흘러 내린다. 다급하게 입 안에 한가득 밀어 넣지만 우물거리지만 영 이도저도 아니었다. 그 눅눅함이 싫어 이번엔 엄마를 따라 간 시장에서 엄마를 졸라 붕어빵 한 봉투를 샀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봉투를 열어 둔다. 이번엔 눅눅하지 않으나 차갑다. 생선이 들어간 빵도 아닌데 괜히 비린 것 같다. 봉투에 넣고 돌아오는 시간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울 수도 없다. 일단 하나만 손에 쥐고 그 자리에서 먹어 본다. 맛있다. 그런데 손에 기름이 왜 이렇게 많이 묻었지? 붕어빵은 그 자리에서 먹고 처리하는 음식이 아니므로 붕어빵 포장마차에서 내 손의 기름기를 닦아낼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봉투 끝을 쥐고 슥슥 닦아보지만 역시 불편하다. 인간미 넘치는 군것질거리들에게서 역시 깔끔함을 기대하긴 어려운 걸까? 어쨌든 난 붕어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내 얘기일 뿐, 겨울을 상징하는 음식은 역시 붕어빵인 모양이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딸아이를 위해 사계절 이야기가 담긴 4권짜리 그림책을 샀더니 표지가 각각 봄꽃, 여름 과일, 가을 단풍과 견과류, 겨울 붕어빵과 군고구마였다. 아닌게아니라 붕어빵은 친척들도 참 많다. 원조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먹어본 것들만 나열해도 붕어싸만코, 슈크림붕어빵,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냉동 미니붕어빵, 붕어빵 과자까지 참 많고도 많다. 하나같이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붕어싸만코는 아이가 좋아하는 <꽁꽁꽁> 시리즈 신간 그림책인 <꽁꽁꽁 아이스크림>에서도 인기 아이스크림으로 위풍당당한 캐릭터였다.(바밤바와 비비빅은 인기가 없었다.) 붕어빵이라는 이름이 주는 특유의 귀여움과 통통한 생산의 자태가 주는 사랑스러움, 그리고 그 붕어빵 한 봉투를 가슴에 품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설렘 덕분일까.
오방떡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고 붕어빵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던 내가 겨울철 포장마차를 찾아 매서운 눈알을 굴리게 된 것은 등장부터 혁신적이었던 계란빵 덕분이었다. 일단 계란빵은 붕어빵이 개당 2, 3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개당 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등장했다. 그전까지 계란빵이라고 해 봐야 졸업한 고등학교 앞에서 팔던 바나나빵만 만나왔던 나는 계란빵의 실체보다 이름만 먼저 듣고는 오방떡 모양의 바나나빵 주제에 뭐가 그렇게 비쌀까, 콧김을 뿡뿡 뿜은 건 아니었지만 괜히 밉살스러워 했다. 그러나 먹는 것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얼리어답터였기에 굳이 포장마차를 찾아가 천 원치(두 개) 사 먹어 보았다. 지폐를 냈는데 두 개밖에 안 준다니! 서럽고 원통해하며 한 입 먹어 보는데 놀라웠다. 계란후라이의 고소함과 겨울빵 특유의 따뜻함과 달콤함이 절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었으며 내가 사랑했던 미끈한 오방떡의 자태를 그대로 닮아 있으면서도 사이즈가 더 컸다.(당연하지. 계란 하나를 품에 안고 있어야 하니까) 탱글하고 꼬숩한 계란 흰자는 한 입 물어도 속엣것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서로를 꽉 잡아 주었다. 그러나 더 서럽고 원통한 것은 나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입사한 후였으며 나의 생활반경 근처에 계란빵을 파는 포장마차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계란빵과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먹어본 것이 채 10개도 되지 못했다. 본격적인 주부의 삶을 걸으며 요리에 좀 익숙해지기 무섭게 나는 집에서 계란빵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오븐도 빵틀도 없었던 그 도전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으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계란빵의 완벽한 자태와 맛에 이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계란빵을 파는 곳을 직접 찾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면 닿는 OO대학교 앞의 큰 포장마차에서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계란빵을 쌓아 놓고 팔았을텐데! 이제는 직접 계란빵 파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 사이 계란값이 너무너무 많이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계란빵을 파는 포장마차는 급격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여유 넘치는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망설임 없이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일까. 탄식하고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다.
11월 초에 3학년 기말고사를 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동아리 야외 체험활동에 나섰다. 가을 날씨도 단풍도 절정인 계절에 학교 근처 수목원에 국화 축제가 열러서 관람하기로 했다. 수목원 앞은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고 때를 맞춰 포장마차들이 즐비하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닭꼬치며 솜사탕에 눈독을 들인다. 좋은 목을 차지하지 못하고 끝으로 밀려난 작은 포장마차가 하나 보인다. 국화빵을 팔고 있었다. 물어보니 10개에 3천원이란다. 내가 인솔해 데려온 아이들이 딱 아홉 명, 잘 되었다. 한 봉지를 사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니 아이들의 표정이 민들레처럼 순해진다. 저마다 감사하다며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입을 오물거리는데 국화처럼 예쁜 열여섯 살 청소년들의 얼굴이 꼭 여섯살 애기단풍처럼 귀엽다. 개당 3백원짜리 어른의 인심을 보이고 3백만원짜리 감사함을 받은 것 같아 민망하고 뿌듯하다. 계란빵은 양껏 사먹지 못한 회한을 국화빵으로 대신 푼다. 눅눅한 붕어빵 한 봉지를 사 들고 퇴근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눈썹을 휘날리듯 퇴근길을 달려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길에 호두과자 포장마차가 보였다. 잠시 차를 세우고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렸다. 호두랑 땅콩 중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땅콩을 택했다. 아이를 다시 카시트에 앉히고 땅콩빵 한 봉지를 쥐어준다. 일주일 전에 집 앞 과일가게에서 공동구매 주문을 받던 앙버터호두과자가 드디어 도착했단다. 이번엔 그 호두과자 한 상자를 받아 온다.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명은 땅콩빵을, 한 명은 앙버터호두과자를 오물거리며 저마다 흐뭇해한다. 심신이 오물오물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