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하고 달콤하며 쫄깃쫄깃한
마침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종종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절친한 A였다. 퇴근하고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묻는다. B가 정말 오랜만에 대구에 왔단다. 나와 A, B, 그리고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C는 모두 고등학교 동창으로 지금까지도 계모임을 통해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20대 중반까지 종종 뭉쳐 신나게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다 B가 해군에 입대하면서 넷이 뭉칠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육아휴직 중에 시간을 내 모처럼 놀러온 것이었다. 퇴근 후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바로 친구들이 모여 있다던 C의 집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재회 인사를 나누고 나니 곧 저녁 시간이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C의 집에는 그녀의 가족이 모두 있어 자리가 조금 불편했고, 외식을 하자니 나도 아이를 데리고 있어 또 불편한데다 B도 8시에는 길을 나서야 한단다. 나는 남편의 퇴근이 늦어 아직 빈 집인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 왔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아이들도 없으니 매운 게 땡긴다며 엽기떡볶이와 이삭토스트를 시켰다.
완전 맛있다. 완전 조합 적절. 매운 거 못 먹어서 맵찔이 다 됐는데 순한 맛 정도는 아직 커버 가능하네. 쿨피스 어딨노? 떡볶이랑 토스트랑 쿨피스 조합 최고.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조금씩 다르게 늘여놓으며 우린 떡볶이 삼매경에 빠졌다. 비록 딸아이가 있긴 하지만 조용히 저쪽에서 혼자 놀고 있으니 우리의 수다는 거리낌이 없었다. 우린 20대 시절 모두 한 번씩은 술 때문에 길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었고 서로의 연애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최근 부활하기 시작한 싸이월드에 그 흔적도 많았다. 아, 맵긴 맵다, 쿨피스 더 없나, 콜라 좀 마실래, 같은 추임새를 곁들여가며 우린 땀을 훔치고 목을 축이며 수다를 쏟아 부었고 플라스틱 떡볶이 그릇(이라기보단 대접)을 정리하며 짧고 굵었던 모임을 마쳤다.
우리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여고 3개, 여중 3개, 합쳐 6개의 여학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학교의 총본산 같은 곳이었다. 본격적인 언덕길이 시작하는 곳부터 학교가 나왔고 우리 학교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으며 학년당 18개반으로 규모도 가장 컸다. 한 학교에 천 명 내외로 잡아도 어림잡아 오천 명 가까운 여학생들이 통학하는 곳으로 학교 주변에 변태와 떡볶이집이 많았다. 학교가 자리잡았을 때부터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었을 노점에 가까운 떡볶이 집에서는 말 그대로 시장 떡볶이와 튀김, 김밥 등을 팔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2~3년전부터 유행했던, 떡볶이와 두툼한 계란 토스트를 함께 파는 <너머떡볶이> 스타일의 분식집도 두어 집이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대구가 원조라는 천천천!세트(떡볶이+만두+오뎅)를 파는 <신천할매떡볶이> 스타일의 분식집도 있었다. 길건너 <99양분식>에서는 그 가게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이 괜찮은 스페셜 떡볶이 세트를 팔았다. 심지어 학교 지하 1층 매점에서도 떡볶이를 팔았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서남시장에서도 <섹시한 떡볶이>라는 노점 떡볶이를 만날 수 있었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이제 전국구 떡볶이가 된 <달고 떡볶이>도 만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국구 떡볶이인 <중앙떡볶이>에 견주어도 처지지 않을 <유명한 떡볶이>(지금은 폐점했다.)도 <달고 떡볶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분식집이 있었기에 우린 야자와 함께했던 고등학교 3년동안 질리지도 않고 하교길에, 야자 시작 전 석식 시간에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떡볶이를 닮은 매콤달콤하고 쫄깃쫄깃한 수다를 곁들일 수 있어서 우리는 아침 7시에 시작하는 마이너스 1교시부터 야자 후반전이 끝나는 10시까지 이어지는 학교에서의 강행군을 즐겁게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여자들끼리만 뭉쳐 다니며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심취해 있었던 떡볶이 사랑은 대학에 입학하며 잠시옅어지는 듯했다. 대학에서 만나는 새로운 음식(보다는 안주)들과 가까이 지내느라 한동안 떡볶이와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졸업 및 고시생 생활에 가까워질수록 떡볶이와도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늘 같이 다니는 여자 동기들과 뭉치며 대학교 근처의 값싸고 양도 많고 심지어 밥도 볶아 먹을 수 있는 <라볶이 세상>이라는 가게를 알게 된 덕분이었다. (이 가게는 우리 집 근처의 다른 대학가에 분점도 있었다. 대학생에게 안성맞춤인 분식집이었나보다.) 학교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시간조차 아까울 때면 강의실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기도 했다. 도서관에 처박혀 끼니 때 말고도 공부만 하던 고시생 시절에도 나만을 위한 오늘의 특별한 기쁨은 학식 메뉴의 떡볶이였다. 매콤달콤하고 쫄깃쫄깃한 떡을 씹다 양배추도 조금 아삭거리고, 어묵도 집어먹은 후 식당을 나와 바깥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히는 것으로 나만의 특별한 안식을 얻고 다시 공부에 매진했었다. 덕분에 임용 고시생 생활은 재수까지만 하고 마칠 수 있었지만 떡볶이 중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교직은 소문처럼 여초사회였고 교무실에서 가끔 시험, 입시, 생활기록부 정리 등 힘든 시즌을 치를 때마다 간식을 시켜 먹을 때면 어김없이 떡볶이 세트가 등장했다. 일이 쌓이거나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퇴근길에 떡볶이 세트를 주문해 집에 오자마자 떡볶이 한 접시를 저녁 대신으로 때우며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 때도 많았다. 머리와 마음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몸은 멀쩡하고 주머니는 가벼운 10대, 20대 시절을 버티게 한 음식이 바로 떡볶이였던 것이다.
평생을 찰싹 달라붙어 함께할 줄만 알았던 떡볶이와는 서른을 전후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뒤늦게 연애를 시작한 나는 그때쯤 독서나 영화, 문화센터 수업 등 다른 취미를 제쳐두고 한창 연애에 매진했는데, 이것이 결국 결혼으로 이어지며 떡볶이와는 이별에 가까운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특히 매운 것을 먹으면 목 위로 땀이 많이 솟아 오르는 나에게 떡볶이는 남자친구와 함께 하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했다. 이에 고춧가루가 잘 끼고 좁은 가게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 먹을 수밖에 없는 분식집 특성상 떡볶이로 한 끼를 먹고 나오면 온 몸에 음식 냄새가 배기 때문이기도 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떡볶이는 파스타, 닭발과 함께 여자 3대 소울푸드 중 하나라나? (남자 3대 소울푸드는 국밥, 제육, 돈까스란다.) 더 뒤늦게 알게 된 정보 - 동료 남선생님의 말씀 - 에 의하면 떡볶이는 술안주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남녀가 함께 하기 어려운 음식이란다. 연애, 결혼, 가족의 삶으로 서서히 인생의 장르를 바꾸며 나도 떡볶이와 그렇게 멀어졌던 것이다.
오늘도 늦게 퇴근한다는 남편의 저녁 식사는 제쳐두고 나와 딸아이를 위해 뭘 차리면 좋을까 하다가 마침 냉동실에 처박힌 떡국떡을 보니 반갑다. 간장과 참기름, 올리고당을 두르고 설탕과 통깨를 뿌려 1차로 아이가 만들 간장떡볶이부터 만든 후 한 접시 던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아낌없이 뿌려 내가 먹을 떡볶이를 한 접시 만든다. 아직 빨간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아이도 간장떡볶이는 그럭저럭 잘 먹는데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쉽다. 나의 빨간 떡볶이를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자기도 유치원에서 빨간 떡볶이를 한 번 먹어 보았는데 겨우 두 개만 먹고 물을 두 컵을 마셨단다. 그래, 아직 다섯 살이면 떡볶이의 세계로, 그렇게 여자의 세계로 들어오기엔 너무 어리지. 아직 때묻지 않고 순한 아이의 얼굴이 그녀가 오물거리고 있는 옅은 간장떡볶이와 참 닮았다. 연신 맺히는 땀을 닦으며 빨간 떡볶이를 우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