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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Jun 22. 2023

영면의 밤

엽편소설

-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이 있나요? 


 건우의 낮은 음성이 귓바퀴를 간지럽힌다. 배경 음악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생의 마지막으로 제격인 웅장함이다.

 영면의 밤 하루 전, 건우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라고 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파가니니. 나는 영혼과 맞바꿀 재능 따위는 없지만, 영혼을 판 건 사실이니 미묘한 동질감에 그의 곡을 선택했다. 연주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시아의 부드럽고 작은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 


 


 어느새 창밖 하늘은 음울한 회색을 머금었다. 새벽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창문엔 암막 커튼이 피부마냥 붙어있었다. 아침에 들이닥치는 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아팠던 까닭이다. 밤에 잠을 잃은 지 몇 달째. 창 밖을 볼 수 없으면 영원히 멈춘 시계 속에 갇힌 느낌이다. 시간의 흐름을 알아야 했기에 암막 커튼을 걷어버렸다. 밤은 길고 짙다. 오늘도 어찌어찌 버텨냈지만 쓰러지듯 잠들어 하루를 망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 할머니, 나 왔어. 시아. 


  요양원은 달콤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 할머니는 오늘도 말이 없다. 엄마에게, 나에게, 이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곳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텅 빈 눈동자 안에 불꽃이 사그라든 그을음만이 가득한 것 같다. 치매는 최근의 기억부터 갉아먹는다는데, 그가 있는 세계는 어디일까? 행복한 시간이 필름 영화처럼 반복되는 걸까? 불행했던 과거에 침잠해 있는 걸까? 


 - 오시는데 춥지는 않으셨어요? 어제는 커스터드 과자를 세 개나 드셨어요. 요즘 입맛이 도시나 봐요. 


  키가 크고 다부진 남자가 휠체어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할머니의 손을 주무른다. 20대 초중반. 서글서글한 인상. 할머니가 그를 보며 미소 짓는다. 꺼진 안광이 서서히 빛을 낸다. 거무죽죽한 얼굴에 홍조가 번진다. 아무래도 가장 빛나고 말랑말랑하던 소녀의 시간 속에 있나 보다.

 요양원에 오기 전 할머니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갑작스레 진행된 치매는 일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뇌 속에 들어찬 병은 할머니를 매일 밤 비명을 지르며 집을 뛰쳐나가게 했다. 몹쓸 과거인지 망상인지 알 수 없다. 그는 밤마다 떨었으며 이불을 죄 꺼내 놓고 장에 들어가 숨었고, 이따금 창문을 깨고 어딘가로 도망쳤다. 


 - 허이구야, 건우 네가 주니 드시는 거지. 우리가 주면 아무것도 안 드셔. 그렇지? 


  긴 소파에 앉아 멍하니 티브이 보는 노인 옆에서 과일을 깎던 이모뻘의 요양사가 툴툴거린다. 


 - 건우 같은 애들이 오고 나서 우리는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애들 말을 어찌나 잘 들으시는지 할머님, 할아버님들하고 사투할 필요도 없지, 목욕할 때도 건장한 청년들이 도와주지. 노인 정책이 많이 좋아졌어. 참, 김 할머님은 영면의 밤이 곧 다가온다지? 


  노인 정책. 영면의 밤. 일순간 엄마와 이모가 침울해진다. 고령화되는 사회와 불어나는 의료비, 줄어드는 요양사로 노인을 감당할 수 없어진 국가는 새로운 정책을 고안했다. 만 80세가 넘으면 영면의 밤을 미리 신청할 수 있다. 병의 증상이 발현되거나 사회에 일원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즉각 실행한다는 취지이다. 여기서 증상과 상태란 치료가 어려운―알코올성 치매, 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이나 우울증 등 정신 질환도 포함된다― 병을 일컫는다. 우울증은 정신 질환이라고 하기 어려우며 신경증 정도지만, 솔직히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근 한 달 동안 기분이 가라앉아 밥만 축냈어요.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사유서만 제출하여도 영면의 밤이 승인된다. 그와 더불어 사회복지사 전공과목에 영면 치료사 실습이 필수가 되었다. 요양원에는 각 대학에서 실습 나온 영면 치료사들이 넘쳐난다. 영면의 밤이란 안락사를 일컫는데 당최 어떤 치료를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심리학과 격의 광범위한 상담 이론을 이수한다고 하니 마음의 안정을 치료라 하는 건가 보다. 


  정책이 실행되는 첫날, 할머니는 80세가 넘었었고, 새벽같이 일어나 주민 센터에 가셨다. 센터의 오픈 시간은 오전 9시. 할머니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존엄을 위한 안락사를 실행한다고 해놓고―몸과 마음이 낡아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존엄이 훼손되었다고 표현했다―그 대상을 노인으로만 한정 짓는 것인지. 마음이 고통스러워 삶을 힘겹게, 겨우,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많을 거다. 고통은 주관적인 거다. 젊은이는 튼튼하고 탄탄하니 회복성이 고무공의 탄력과 비슷할 거로 생각하는 걸까? 이미 타개할 수 있을 만한 근육이 끊어지고 늘어졌다는 것을 맨눈으로 볼 수가 없는데도? 


 


 그로부터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치매가 시작되었다. 오늘 본 할머니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봄날 하늘에서 쏟아지는 옅은 색깔의 꽃잎들이 흐드러진 미소였으며 노랗고 보송보송한 복숭아에 물든 홍조가 피어있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죽고 싶을까? 건우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을까? 이제야 행복을 발견했는데 죽어야 한다니? 아, 내가 할머니 대신 죽고 할머니가 내 인생을 살면 참 좋을 텐데.    


 


 ● 


 


  식도가 타들어 가는 것 같다. 할머니와 내 새끼손가락에 빨간 명주실을 묶어 연결하고 보라색 액체를 마셨다. 할머니는 단 한 방울이면 된다. 백태가 가득한 혓바닥에 손가락으로 액체를 찍어 올리고 턱을 쥐어 닫았다. 동시에 나는 100ml가량의 액체를 목구멍 뒤로 흘려보냈다. 단 한 방울이니 할머니는 고통스럽지 않겠지? 


 



● 



 


 온몸이 바스러질 것 같다. 허리고 목이고 무릎이고 온전한 곳이 없다. 좁은 침대에 할머니는, 아니 내 얼굴을 한 할머니는, 아니 새로운 시아는 아직 자고 있다. 얼마만의 깊은 잠인지. 거뭇하던 눈 밑이 화사해진 것 같다. 거칠하던 피부에도 기름이 돈다. 시아는 모든 기억과 함께 깨어날까? 아니면 멈춰버린 어린 기억 속에 있을까? 


 - 할머님, 일어나셨어요? 손주분이 일찍 왔나요? 면회 시간은 아직인데 어떻게 들어왔지. 


  잠든 시아를 내려다보는 건우가 갸우뚱 고개를 젓는다. 앙상한 손을 뻗어 시아의 머리를 넘겼다. 시아야, 건우가 왔어. 젊은 건우. 젊어진 시아. 온 마음을 다해 전한다. 귓가를 지나는 거친 피부에 시아가 움찔하더니 눈꺼풀이 천천히 열린다. 제발, 기억하지 않기를. 나와 엄마와 이모와 80년의 무거운 삶을 기억하지 않기를. 


 - 으음. 내가 언제 여기 왔지? 할머니, 이거 꿈이야? 


  이상한 일이다. 서로의 영혼이 바뀌는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영혼인 시아는 나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 할머니는 내 기억으로 살아가는 걸까? 내가 보라색 액체 대부분을 마신 것이, 나와 할머니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다는 뜻일까? 할머니는 새로 직조된 행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 


 


 할머니와 몸이 바뀐 지 나흘이 지났다. 여전히 잠들지 못한다. 이전에는 형체 없는 불안과 지독한 상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은 그것에 더해 할머니의 과거가 나를 짓누른다. 첫사랑과의 이별. 부유하던 집안의 몰락. 이른 결혼. 엄마와 이모가 어린 아기일 때 징병 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죽음. 문을 걸어 잠그고 공장에 출근하던 날들. 방치된 아기들. 공부하고 싶다던 이모를 빗자루로 마구 때리고 울음을 늘키던 밤. 죄책감. 아픔. 슬픔. 미안함. 각가지 감정들 속에 언뜻 떠오르는 이모의 미소나 개울가에서 물장난 치는 엄마의 포동포동한 엉덩이에 미소 짓기도 한다. 엄마와 이모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다. 붉고 거뭇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참새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시아와 건우가 작게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 


 


 까무룩 잠이 들었다. 죽을 때가 되니 드디어 잠을 자나 보다. 꿈을 꿨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나눈 대화였다. 나에게 보라색 액체를 준 이다. 


 - 원해? 


- 네? 무엇을요? 


-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들. 진정으로 원하면 바꿀 수 있다. 


- ..... 대가는 무엇인데요? 


- 당연히 네 영혼이지. 


- 할머니에게 가는 피해는 없나요? 목소리를 잃는다든지, 사랑이 이루어지면 죽는다든지.  


- 고작 네가 생각한 비극이 그것이냐? 나는 악마가 아니야. 네 고통과 영혼을 가져가는 수집가일 뿐이지. 


- 그럼, 천사 아닌가요? 


- 그런데 고통 안에는 분명한 행복도 같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 너는 고통과 행복을 모두 져버리는 거야. 


 


 악마의 모습을 한 천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겠다고 구두 약속을 하고 액체를 받아 나왔다. 악마의 모습을 한 천사의 표정이 어땠더라. 꿈의 장면을 되돌려 두 손가락으로 확대했다. 꿈이니 가능한 것이다. 악마의 모습을 한 천사의 짙은 눈썹이 팔(八) 자를 그리고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이 움찔거렸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 


 


-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이 있나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아의 부드러운 손을 매만지며 영면에 잠기고 있다. 약으로 인한 환상인지, 시아의 미래가 그려진다. 건우와 연애를 시작한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아파한다. 웃음이 끊기지 않는 날도 있다. 건우와 헤어진다. 직장을 잃는다. 엄마가 쓰러진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또다시 몇 달째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통에 몸부림친다. 꾸역꾸역 살아간다. 움이 트는 어느 봄날,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잠을 잔다. 시나브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다. 아파하고, 좌절하고, 울고, 다시 웃고, 일어서고, 회복한다. 왜인지 눈물이 난다. 이제는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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