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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Sep 16. 2023

불행 포자

엽편소설





 “영아, 오늘 회식 알지?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와서 밥만 먹고 가라.”


 “됐어요. 소장님은 밥만 먹고 가라 그럴지 몰라도 다른 선배들은 아니잖아. 그때처럼 또 억지로 술 먹일 게 뻔해. 그리고 내일 뒷집 가는 날이니까 일찍 자야지.”


 산 뒤쪽에 있다 하여 뒷집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관리되지 않은지 오래인 듯 콘크리트 벽면 곳곳이 갈라진 채였다. 경차 한 대 댈 수 있을 만한 작은 마당엔 깨진 아스팔트 사이로 민들레와 갯강냉이, 개망초 같은 잡초들이 들쑥날쑥 피어있는 집. 담 너머 커다란 박달나무가 좁은 마당의 반절은 가리고 있어 더욱 음침해 보이는 집.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넝쿨들이 낮은 담에 빽빽이 매달려 있는 집.


 방이 세 개, 욕조 딸린 화장실 한 개,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탁 트인 주방과 폴리싱 타일이 시공된 넓은 거실. 오래된 단층 주택이라 체리색 몰딩과 황갈색 마룻바닥을 세트로 생각했었지만, 최신 트렌드에 맞춰 인테리어 한 듯 벽지고 바닥이고 할 거 없이, 심지어 암막 커튼과 소파, 테이블마저 화이트 톤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청소 업체를 불러 최소한의 청결 유지를 하려는 이상한 집. 웃돈을 얹어 줄 테니 경력자 단 한 명을 보내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할 것. 안방을 건드리지 말 것. 진공청소기, 바닥 왁싱기, 걸레 탈수기 등 여타 소음이 발생하는 물건은 사용 불가.

 열일곱부터 청소일을 시작했으며 평소에도 바닥에 무릎 꿇고 한 땀씩 제 손을 거쳐 광택 나는 바닥을 확인해야 하는, 의욕적인 건지 멍청한 건지 변태적인 건지 모를 집요함과 체력을 갖춘 자. 경력 오 년짜리 애송이를 어디 십 년 이상의 고수들 대신 넣었냐며 소장에게 대거리를 하던 의뢰인에게, 일단 청소하는 거 한번 보시라며 무보수로 50평짜리 의뢰인의 아파트에 보내졌을 때, 거실 청소 후 군소리 없이 오케이 사인과 돈 봉투까지 던져진 청소계의 다크호스. 영은 기이하고도 평온한 정적 속에서 첫 청소를 마치고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잡초들 사이를 지나 기지개를 켰다.




 “아, 뒷집은 안 가도 돼. 의뢰인이 때가 되면 다시 부른다고 당분간은 오지 않아도 된다네.”


 “어느 때? 혹시······. 그 집주인 뒈졌어?”


 소장은 영의 굵직한 팔뚝을 꼬집으며 못 하는 소리가 없다고 핀잔주지만, 죽은 게 아니라면 청소를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영은 호언한다. 한 달 전, 여느 때와 같이 입실하여 커튼을 젖히는데 슬리퍼가 바닥을 끄는 생경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영은 이따금 적막한 집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면 이불 소리, 에어컨 온도 조절을 하는 건지 삑삑거리는 리모컨 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살긴 하는구나, 정도의 감상만 했었는데 보지 말아야 할 정체를 목격한 것처럼 몸이 굳었다. 언제 감은 건지 가닥가닥이 붙어 기름진 머리와 움푹 팬 양 볼, 초점 없이 흐린 눈 밑으로는 시커먼 그늘이 자리 잡고 있는 산송장 같은 사람이, 매우 힘겹게,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말을 떼는 것처럼 혹은 극히 수치스럽다는 듯이 방바닥을 치워달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방을 청소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방바닥을 치워달라니. 좋지 않은 예감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으나 배설물이면 기필코 추가금을 받겠다며 다짐하고 문을 여니 노르스름한 물이 왈칵 쏟아져 있었다. 소변이라기엔 양이 적고 빛깔도 달랐다. 약간의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위액이나 그 비슷한 무언가를 토한 것 같았다. 바구니에 담긴 청소 도구를 가지고 들어가자 좀 전의 수줍었던 모습과 달리 뻔뻔하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꼴이 황당하기도, 잠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통증이 있는 건지, 그렇다면 요양사 없이 외따로 괜찮은 건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두터운 커튼으로 은폐되어 있어 찬바람이 맴도는 방안은 춥고 외로운 동굴 같았다.



  물 흡수에 용이한 장모 극세사 걸레로 오물을 흡수하고 따듯한 물에 담가두었던 막 걸레로 잔여물을 훔친다. 단모 극세사 걸레에 중성 세제를 묻혀 혹시 모를 냄새를 제거하고, 다른 물걸레로 세제를 닦아낸 후 마지막은 유리 걸레로 물기 제거. 맘 같아서는 커튼을 젖혀 형광등까지 켠 다음 온 방 안을 청소하고 싶었으나, 이불에 파고들어 웅크린 뒷모습이 그만 나가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작은 오물을 닦는 데 걸레는 다섯 장이 들었다. 어쩐지 정돈된 집 안과 달리 전혀 손을 대지 않은 마당과 집 외관이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시공 중 집주인에게 어떤 병이 생겨 집안만 빠르게 정리하고 마무리되었는지 집안의 타일도 견고해 보이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것이 새것이었으나 파란 하늘과 뇌우처럼, 연못과 고래처럼 어딘가 어우러지지 않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청연시 외곽에 자리한 그곳은 차로 이십여 분이 걸리는 그리 멀지 않은, 그렇다고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근처에는 그리 높지 앉은 동네 산이 우뚝 서 있지만 주변에 손을 놓은 벌판이나 공단 부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등산객이 드나들 만한 산길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다. 슈퍼나 마트 등 여타 편의 시설이 전혀 없는 곳에 집을 산 까닭은 곧 개발될 거라는 거짓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거나 한평생 허허벌판이든 사막이든 제집만 있으면 된다는 헛된 희망과 부동산 업자의 꼬임에 넘어가 덜컥 사버린 몽매 하거나 무모한 젊은이의 집일 것이다. 초행길에는 내비게이션에도 길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고물상이나 폐차장 같은 곳에 잘못 들어갔었는데, 수십 또는 수백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짖어 대 화들짝 놀랐었다. 후끈한 열기가 만연한 여름날에 뜬 장에 갇혀 거품을 무는 개를 흘기며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휑한 경치만큼이나 모질고 슬픈 동네라고 느껴졌다.



 “더 안 좋아져서 입원했다거나 ··· ···. 아니면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을지도 모르지. 여하튼 네가 좋아하는 횟집 갈 거니까 이따 사무실로 와.”


 슬픈 동네에 걸맞은, 어쩌면 갑자기 죽어버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집주인. 영은 머리를 두어 번 털고 일어났다.









 두 발을 땅바닥에 단단히 붙이고 있지만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전봇대가 아롱거린다. 허방에 빠져 찢긴 쓰레기봉투가 내장을 쏟아내듯 내용물이 흩뿌려진 모양새가 구토하는 거대한 머리통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발가락에 힘을 줘 바로 서보려 하지만 자꾸만 세상이 영을 향해 쓰러진다. 그러게, 술은 안 맞는다니깐. 영은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털어보려 고개를 흔든다. 그럴수록 골이 조여 오고 구역질이 올라온다.

 회식 자리에 앉았을 때, 생활 근육으로 잘 다져진 튼튼한 팔뚝이 찰랑거리는 술잔을 코앞에 들이밀었을 때, 딱 한 잔만 먹으라는 선배의 호령에 얼굴을 굳히며 술은 먹지 않겠다고 세 번이나 표명했었다. 산만 한 덩치와 옛날 같았으면 소도 때려잡았을 거라는 커다란 손과 주량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어떤 부분에서 여성성을 들먹거리는지 알 길이 없으나, 장대한 기골의 남성이 계집처럼 술을 뺀다며 채근하는 연장자를 무시하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이다. 아무래도 자리가 껄끄러워 냉수나 벌컥벌컥 마시는데 누군가 물 잔에 맑은 소주와 사이다를 섞어 놓았고, 이미 식도를 타고 넘어간 일부 알코올은 체내에 스며들 수밖에 없었고, 반절은 맞은편에서 끊임없이 술을 종용하던 남성의 얼굴에 뿜을 수밖에 없었고, 고작 그거 마시고 얼굴에 술을 뱉는 패악질을 하냐며 일갈하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이제 분간할 수 없는 것을 뒤로하고 거리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만물이 제멋대로 흔들거리며 영을 압도했고 목구멍이 조여드는 갑갑함에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해댔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주저앉으면 돌림판처럼 뱅글뱅글 도는 하늘이 영을 깔아뭉갤 듯 쪼그라들었다. 눕지도, 앉지도,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하는 영은 두 다리가 달린 순리대로 그저 앞으로 걸어갔다.


 휘황한 간판들이 오징어잡이 배처럼 늘어진 거리를 벗어나, 번쩍거리는 낙뢰들이 눈동자를 겨누는 도로를 벗어나 희부연 어둠으로 접어들었다. 가로등 뒤로 어둑시니가 출몰할 때마다 땀에 젖은 티셔츠가 달라붙은 등골이 산산했다. 한밤중에는 처음 와보지만 달에 한 번씩 3번의 왕복을 하다 보니 익숙했다. 달빛이 끝나는 산 아래쪽으로 걸어가면 개 짖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 것이고, 이대로 길 끝을 더듬다 보면 뒷집이 나올 터였다. 단지 울렁거리는 속이, 토악질하고 싶은데 목구멍 언저리에서 울컥울컥 솟아날 듯 말 듯 쏟아지지 않는 불쾌함에 그날의 집주인이 생각났을 뿐이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화장실로 달려가 참을 수 없는 것을 게워 내고 싶었을 텐데 고작 청소부 하나 때문에 방 안에서 쏟아버릴 수밖에 없었을 참담함과 결국 그 청소부를 불러 치워야 하는 수치심과 그럴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그날의 총제적 안쓰러움이 세포에 남아 이곳으로 이끈 까닭이다.


 화다색으로 변한 덩굴 잎들이 발아래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문을 살짝 밀어 여니 경첩을 잃은 문짝처럼 손쉽게도 활짝 벌어졌다. 애초에 문의 존재는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자 함이며 지금 같은 낯선 이의 방문을 막고자 함일 텐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문을 뒤로하고 작은 마당을 성큼성큼, 또는 휘청휘청 걸어 들어갔다. 영은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안이 희끗희끗 비치는 고방 유리로 디자인된 현관문도 이미 때가 타고 벗겨져 있었다. 몇 번을 드나들었던 집이지만 현관문이 이토록 낡았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밀번호 장치가 달리지 않은 열쇠로 개폐하는 예전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청소 날에 맞춰 항상 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오래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새로 인테리어 된 깔끔한 집안과 전혀 돌보지 않는 바깥이, 이 집에 드나드는 누군가가 전혀 없다는 듯 마치 집 안에서 영영 나가지 않는다는 듯한 포부라도 가진 희한한 집이었다.




 현관문도 쉽게 열렸다. 한 달 만에 방문한 집안은 알 수 없는 식물로 가득 차 있었다. 거실에 공기정화 식물이나 관상식물로 한껏 꾸며놓은 집들은 SNS에서 많이 접하긴 했었다. 하지만 바닥을 뚫고 우뚝 선 거대한 모양의 식물은 ··· ···. 집안은 암흑과 같이 어두웠지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에 그것들의 형체를 볼 수 있었다. 마치 흑색으로 퇴색된 나팔꽃이 꽂혀있는 모양이었는데, 지옥에서 온 것 같은 거무죽죽한 색깔과 약간 쪼그라든 형태가 꽃이 아님은 확실했다. 영은 청소가 문제가 아니라 타일을 새로 깔아야 하겠다는 다소 안타까운 마음으로 식물들 사이를 걸었다. 하지만 바닥은 상상한 대로 깨진 타일이 널브러진 것이 아니라 젖은 흙바닥이었다. 영의 허리 부근까지 자란 식물 사이로 천장과 닿을 정도로 키가 큰 놈들도 있었다. 높은 놈들을 향해 고개를 쳐드니 나팔 모양으로 말린, 꽃잎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그곳의 뒷면은 세로로 주름살이 채워져 있었고, 허리 부근까지 자란 식물을 만져보니 얇은 가죽 재질의 부들부들한 촉감이었다. 색깔은 다 타버린 나무 같은 잿빛이었으나 나쁘지 않은 감촉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떤 식물인지 알 것 같았다. 시설에서 도망 나와 열린 봉고차 좌석에 숨어들어 까무룩 잠이 들었던 자신을 주워 온 소장이, 온몸에 노랗고 파랗게 피어난 멍 자국을 보고 유령 신분인 영의 의식주 해결을 도왔을 때, 도통 아파―든 안녕―이든 배고파―든 비명이든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청소일엔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일에 재능까지 보이는 자신에게 바보는 아닌 것 같다며, 뇌 기능에 좋다는 뜬소문만으로 식용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음식들을 억지로 먹였을 때 보았던 버섯을 떠올렸다. 뿔나팔버섯은 악마가 꽃을 만든다면 꼭 이처럼 생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생김새는 형편없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안방에는 영의 걱정대로 사람이 웅크린 모양으로 이불이 볼록 솟아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두꺼운 이불 안쪽에는 녹색 불빛이 아롱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은 침대도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당에 말라비틀어진 덩굴 잎을 보자면 가을이 맞을 성싶은데도 안방은 여전히 여름이었다. 에어컨의 온도가 18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쌩쌩 찬바람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 하던데, 이 사람은 무엇이 아직 타고 있길래 이토록 추운 곳에 웅크리고 있는 건지, 영은 슬며시 이불을 걷어 집주인의 안위만 살펴보자는 요량이었다. 걷은 이불 사이로 집주인의 가닥 진 머리카락과 반듯한 이마가 드러났다. 얼굴에 이상한 게 잔뜩 돋은 채였다. 영은 제멋대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를 틀어막고, 이불을 발끝까지 걷었다. 집주인의 온몸에는 굵고 빨간 털이 돋아나 있는데 끝의 둥근 돌기에서는 초록빛이 발광하기도 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면 고장 난 크리스마스트리 같기도 했고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붙은 모양 같기도 했다. 영은 방바닥에 주저앉아 진귀하거나 신기한 것을 가까이 살펴봤다. 얼굴도 빨간 털로 뒤덮여 있었고 찡그린 미간과 굳게 닫힌 입이 결코 편해 보이진 않았다.

 영은 손가락을 들어 돌기를 살짝 문질렀다. 그때였다. 돌기의 초록빛이 빨간빛과 섞여 빠르게 점멸하더니, 투명하고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마구 흘러내렸다. 뒤이어 집주인이 온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영은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휴대전화의 화면도 알 수 없는 오류 멘트와 통신사 로고가 뒤죽박죽 섞이며 깜박거렸다. 바깥으로 나가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요청해 봤자 이 시간에 사람이 돌아다니거나 거주하는 곳이 아니었다. 영은 침대 위로 올라가 뒤틀리는 집주인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야속하게도 할 수 있는 게 고작 끌어안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차갑고 끈적거리는 몸을 끌어안았다.




 영은 집주인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감았던 눈을 떴다. 집주인의 몸부림은 잦아들었고 온몸을 적신 점액질도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점멸하던 빨간빛도 초록빛으로 바뀌어 은은하게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없었거나, 적어도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던 먹빛 버섯들이 어느새 침대 주위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영은 갑자기 허기가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이 갑자기 찾아와 배를 조여왔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을 수 없는 통증이었다. 영은 급히 제 앞에 있는 뿔나팔버섯을 떼어내 입속으로 욱여넣었다. 손으로 대강 찢어 입속에 집어넣고 꿀꺽꿀꺽 삼켰다. 그 어떤 생크림 케이크보다 부드럽고 갓 구운 소고기처럼 고소했으며 입 안에서 느껴지는 버섯의 향은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그러나 그 어떤 산해진미를 내와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향긋한 냄새였다. 영은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버섯 더미로 주저앉았다가, 폭신한 버섯 위에 쓰러지며 계속해서 그것을 집어삼켰다.









 수십 개의 다리가 왔다 갔다 한다. 영은 바닥에 누워 다리들을 구경했다. 커다란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익숙한 검은색 로퍼가 보일 때까지 졸린 눈을 참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검은색 로퍼는 너무나 흔하지만, 엄마의 왼쪽 로퍼엔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찢긴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있었던 까닭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는 자주 늦긴 했지만 불투명한 알루미늄 새시 문에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어른 거릴 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엄마가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은 날이었다. 영이 눈만 꿈뻑이던 반지하 창문으로 수십 개의 발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창문의 쇠창살을 뚫고 발들이 들어오더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영이 뒷걸음을 치자, 커다란 발들이 영을 짓밟을 듯 위에서 아래로 마구 밟아댔다. 영은 거대한 발들 사이를 미끄러지며 뛰기 시작했다. 아까 늦은 출근이라도 하는 듯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던 진홍색 구두가 영을 찍어 버릴 듯 쫓아왔다. 기진맥진해진 영은 제 머리 위에 있는 구두 굽을 확인하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굴렀다.

 이번에는 몸이 끝도 없이 굴러 내려갔다. 몸이 멈추지 않아 굴러 내려가는 것을 그만둘 수도, 바닥을 짚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데굴데굴데굴. 끝없이 굴러가던 영은 물컹한 무언가와 부딪혀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났다. 너무 구른 탓에 어지러웠다. 제대로 다리를 딛고 서기도 전에, 물컹한 것이 영을 세게 튕겨냈다. 이번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손바닥은 곧 터질 것처럼 부어올랐는데, 마치 지방으로 가득한 뱃살처럼 세 겹으로 접혀 있었고, 다섯 손가락은 손바닥에 비해 턱도 없이 얇고 작았다. 영은 자기 몸을 튕겨내는 거대한 손을 피해 지그재그로 뛰어다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거대한 손의 경로를 살펴보며 뛰는 수밖에 없었다. 영이 잽싸게 뛰어가 손의 뒤편에 자리 잡았을 때 손등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십자가 모양의 문신을 보았다.


 보육 시설에 맡겨진 영은 매일 밤 저녁 기도를 한 뒤, 죄를 더 씻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매를 맞았다. 손목의 금색 시계를 풀며 회개의 시간이라고 말하던 남자의 십자가 문신이었다. 영은 십자가 문신을 보다 그만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거대하게 부푼 손바닥과, 어느 순간 손등에서 벗어난 거대한 십자가가 영을 가운데에 두고 빠르게 부딪혀 오고 있었다.







 “뱉어! 얼른 뱉어내요!”


 영은 제 등을 강하게 두드리는 평균 크기의 손바닥을 느낀다. 입을 벌리니 등을 두드리는 손바닥의 박자에 맞춰 스펀지같이 부들부들한 것들이 식도를 타고 마구 쏟아졌다. 그 많던 게 몸속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인지 모르게 계속해서 쏟아냈다.


 “불행을 왜 먹어요. 그러다 큰일 나지, 쯧쯧.”


 영은 끊임없이 나오던 것을 모두 뱉어내고 헛구역질을 두 번이나 더 한 뒤에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초점을 맞추니 파리한 안색의 집주인이 제 앞에 앉아있었다. 아까와 같은 붉은 털이나 발광하는 돌기 따위는 없는 피부였다.


 “어, 아까 분명히 얼굴이 이상한 털 같은 게 돋아 있었는데……. 괜찮아요?”


 “그건 불행 포자를 빨아들이던 유인 수단이었고요. 이제 포자들이 모두 생장해서 피부 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주위에 보이는 버섯들 모두 불행 포자가 생식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당신은 지금 모든 불행을 집어삼킨 거나 다름없어요.”


 “포자요? 불행… 포자는 또 무슨 말이죠?”


 집주인은 뿔나팔버섯 하나를 집어 손가락으로 찢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따금 잘게 찢은 버섯을 입 안에 넣어 오물오물 씹기도 했다.




 “당신과 나는 비슷한 일을 해요. 청소하는 거죠. 당신은 청소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음식을 사 먹고 생활하죠. 저도 비슷해요. 저는 불행을 먹고살아요. 당신들의 불행은 포자와 같아요. 꿈속에서 무한 증식하죠. 작은 알갱이보다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진 불행들은 당신들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뿌리내려요. 혓바닥에, 팔꿈치에, 무릎 안쪽에 콕 박혀서 당신들의 삶을 아우르죠. 불행 포자가 점점 몸에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 버려요. 혓바닥에 쌓인 불행은 자기도 모르게 모진 말을 내뱉게 만들고요, 무릎 안쪽에 쌓인 불행 포자들은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도망가게 만들어요. 팔꿈치에 쌓인 포자는 스스로 몹쓸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요.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해요. 불행은요, 불행한 사건 자체로 당신들을 변하게 만들지 않아요. 아주 작은 불행 포자가 온몸을 누비며 거뭇하게 물들여서 결국 또다시 불행할까 봐 불안한 불안에 잠식되어 버리는 거예요.”


 집주인은 잘게 자른 버섯 뭉치를 입에 욱여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버섯을 찢었을 뿐인데 방안의 모든 버섯이 찢겨 집주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론 모든 불행을 가져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저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고요. 단 몇 번의 불행이 삶 전체가 되지 않도록, 불행 포자들을 이 집에 빨아들이고 키워서 먹는 식이에요. 지금 이 동네에 불행 포자가 아주 포화 상태거든요.”


 “이 동네는 그쪽 집 말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데요?”


 “ 아래쪽에 있는 개들이요.”




 영은 길을 잘못 들어선 날 마주쳤던 많은 개를 떠올렸다. 개들이 있는 곳은 청연시에서 관리하는 유기 동물 보호소라고 한다. 보호소라니, 동물의 어떤 것을 보호한다는 것일까? 그때 본 개들은 새까맣고 누런 때가 묻어 본연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었고 상품 가치와 쓸모를 잃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유실물로 취급되는 바였다. 유실물이거나 어쩌면 유기물인 이들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눅진 사료를 먹고 오물 묻은 철장에서 불행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사람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이자 사람에 의해 버려진 상품일 터였다. 영은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뉴스가 생각났다. 길 잃은 개들이 계속해서 수용되는 보호소. 이미 보호소는 포화 상태라 보호자를 찾는 공고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 공고 기간을 지키지 않거나 인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개들을 죽여 포댓자루에 뭉텅이로 집어넣는 보호소의 실태가 방영되었는데 급습한 취재진이 사체들로 가득한 포대 자루 안에서 아직 살아남은 개를 꺼내는 장면이 선명했다. 그로 인해 동물 단체에서는 안락사 반대 시위로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를 호소한다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존엄은 죽음의 반대말일까? 살아 숨 쉬는 것만이 존엄을 지키는 일일까? 삶과 고통은 비례하는 것일까? 영은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을 가진 채 물었다.


 “그 안에 있는 이상, 불행 포자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 개들이 불행하지 않을 방법이 있나요?”


 “말씀드린 대로 저는 불행의 근본을 가져가지는 못해요. 다만 불행이 불안을 키우지 않도록 도울 뿐이죠. 나쁜 꿈을 꾸지 않도록, 자꾸 불행을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어느새 영과 집주인은 방이 아닌 거실에 앉아 있었다. 거실을 가득 메우던 버섯들도 절반은 집주인의 입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였던 집주인의 얼굴엔 핏기가 돌아 거무죽죽하던 낯빛이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분홍빛으로 바뀌었으며, 움푹 팬 양 볼은 통통하게 채워져 있었다. 목 끝까지 채워 입은 파자마도 쇄골이 보일 정도로 늘어져 있는 게, 옷이 늘어진 것이라기보다 사람의 몸이 작아진 듯했다. 일정한 속도로 버섯을 먹는 집주인을 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줄어드는 버섯과 함께 집주인의 몸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눈에 힘을 주어 부릅 떠보려 하지만 누가 속눈썹에 추를 달아놓은 듯 자꾸만 눈이 감겼다.








 양광(陽光)이 뭉근하게 내리쬐는 가을 아침은 졸음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영은 얼굴에 내려앉은 햇볕에 이마를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웅크린 채 잠들었는지 온몸이 결다. 오래간만에 꿈에서 엄마를 본 것 같아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술에 취해 기울어졌던 세상은 똑바로 돌아와 있었다.


 술김에 온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말끔히 청소된 걸로 보아 얼마 전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유광의 폴리싱 타일이 시공된 하얀 집은 광활한 얼음 호수와 같았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은 깨끗한 집에서 어쩐지 개운함을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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