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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r 06. 2024

아무도 보지 않는 양심

자존감 지키기


1. 자기소개서

대학시절 나는 동양철학 한 구절에 매료된다.

莫見乎隱(막현호은)
莫顯乎微(막현호미)
故 君子 愼其獨也 (고 군자 신기독야)

“은밀한 곳보다 눈에 잘 띄는 곳이 없고, 미미한 일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 신중하게 행동한다.”

자기소개서에 넣을 좌우명으로 적당히 있어 보이는 위 말씀을 선택했다. 부모의 그늘 없는 자유로운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철학이었다. 나는 군자도 연예인도 아니지만 나는 홀로 있을 때 삼가기로 하였다.


2. 양심 냉장고

늦은 새벽 4시 집으로 돌아가던 연출자 김영희는 그날따라 유난히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서지 않던 새벽 4시 신호등 걸린 횡단보도를 지나다 깜빡거리는 녹색 신호가 보이자 '평소 같았으면 그냥 뛰어 건넜겠지만 정말, 별 이유 없이 그냥 기다렸다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를 떠올려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 이거다라고 유레카를 외치고 법규 준수에 대한 포맷을 결정했다.(출처 나무위키)

옛날에 양심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신호에 무관심할 만한 야심한 시간대를 골라 안전선 지키기 등 기본적인 교통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 상품으로 냉장고 한 대를 주는 기획이었다. 지금 했다면 나는 냉장고를 한 번쯤 받았을 것이다. 껌을 삼키는 일이 있더라도 땅바닥에 뱉지 않으니까. 무인 스터디 카페에서 프린터 1장을 하더라도 500원짜리 동전을 카페 서랍 안에 꼭 넣어두니까. 물론 신호등은 초록불이 들어올 때까지 꾹 참고 건너니까.


3. 양심의 가책


귤을 한 박스 샀는데 두 박스가 배달되었다. 양심냉장고를 자신하던 나는 두 박스가 왔으니 값을 더 주겠다고 판매자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 제주 출장 중에 시댁에 드릴 귤을 사러 직판장에 갔었다. 맛있는 노지귤을 사려 했지만 철이 지나 하우스 귤밖에 없다고 했다. 선택지가 없으니 하우스 귤을 3만 원에 사고 배달지 주소를 적고 직판장을 나왔다. 전날 마트에서 노지귤 한 봉지를 공짜로 얻어서 그런가 3만원이 비싸게 느껴졌다. 그 하우스 귤이 두 박스가 온 것이다. 나는 괜히 합리화를 했다. '호구잡힌 나를 가여이 여긴 알바생이 한 박스 더 보낸 것인가? 게다가 반은 썩은걸? 산지 직송인데 3만원은 선 넘은 거 같지?' 눈앞의 이익 앞에 나의 양심냉장고는 환수되었다.


4. 양심良心 양심兩心

양심良心(어질 량, 마음 심)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양심兩心(두 량, 마음 심)

두 마음. 겉 다르고 속 다른 마음.

양심을 지키려는 자와 깨려는 자. 두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귤 두 박스가 배송 온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지갑을 주웠다. 지갑을 줍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CCTV를 찾는 일이었다.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숨기고) 집에 올라와 보니 속에는 현금이 29만원이나 있었다. 요즘 세상에 현금이라니. 이것은 행운인가 시험인가? 그래도 1g의 양심이 있어 신분증을 찾아보았다. 명함이 하나 있다. 지갑의 주인은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정이었다. 명함을 보자마자 나는 시험을 정답에 맞게 풀기로 마음먹었다. 지갑을 온전히 돌려주었다. 과정은 부끄럽지만 결과적으론 양심적이게 끝났다. 세상이 양심적으로 살아라고 쓴 시나리오 같았다.


5. 자존감

초록불에 길 건너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당연한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 내 편 1호가 내가 착하게 살길 바라고, 제3자의 시선이 지켜보고 있고, 원수가 혐오할 수도, 경찰에게 잡혀갈지 몰라 두려워하는 아이 때문이다. 내 편 1호와 타인과 원수와 아이는 모두 나다. 나는 나를 본다. 나 자신이 보고 있다. 내면의 악마를 물리친 내가 얼마나 대견한지 토닥이고 있다. 이효리의 말을 빌리자면 남들이 안 알아줘도 내가 기특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나는 자존감을 계속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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