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꽤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장녀라는 막강한 완장을 차고 4명의 졸병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둘째와 셋째는 컴퓨터만 내어준다면 내가 시키는 일들을 다했고, 넷째는 바나나킥 두 조각에 만족하며 과자 심부름 담당이 되었다. 어리디 어린 막내는 그저 자신의 임무가 주어질 때까지 자라기만 하였다. 명령만 할 줄 알던 나는 사랑이란 걸 모르고 유년기를 보내었다. 대가없는 사랑을 몰라서였는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오랜 기간 불안정했다.
결혼 전까지는 생일선물의 가격표나 먼저 사과하는 횟수로 사랑의 크기를 계산했었다. 그러다가 버림받을 거란 불안이 커질때쯤 이별을 고하곤 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나는 애착유형은 불안-회피형이리라 짐작한다. 지금도 그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는지 입으로는 사랑타령을 하면서 속으로는 남편의 미운 짓만 골라내고 있다.
내 침대 위에 올려놓은 남편의 검은 옷가지들이 거슬린다. 남편 침대에 벗어 두라고 부탁까지 했으니 한 번의 실수도 봐주지 않을 요량이다. 나는 남편의 검은 허물들을 건너편 침대로 던져버린다. 어떤 날은 남편이 운전을 하면서 조는 게 보기 싫다. 주말이라 12시간 넘게 잤으면서 10분 운전을 하는데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산책하러 간 공원에서 내 발걸음을 따라오지 못하고 하품 소리만 뒤따라온다. 나는 하품 소리도 닿기 싫어 일부러 속도를 높였다. 남편은 뒤로 멀어졌고, 나는 냉정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걸으면서 미래의 남편을 미워했다. ‘어떻게 임산부를 태우고 졸 수가 있어.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야! 저 잠만보는 육아할 때도 저럴 거야!! 이 발걸음도 못 쫓아올 체력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려는 거야?!!’ 속마음들이 만약에 있을 남편을 공격한다. 한참 걸어 반환점을 돌 때쯤 타인을 부정하는 나를 알아차린다. 고약한 버릇을 도리질로 물리치곤 각진 마음을 다시 둥글게 둥글게 가다듬는다. 몸을 돌려 다시 남편에게 돌아갔다. 저 멀리 햇빛에 맥없이 구부러진 남편이 보인다. 먼 길 달아난 나에게 화 한 푼 내지 않는 남편이 반갑다. 아직 사랑하는 것 같아 안심한다.
우리 부부는 매일 사랑해라고 말한다. 나는 가끔 변칙을 주기 위해 왜?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코 고는 척을 하며 대답을 피한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냥 사랑한다. 가끔 나의 뒤통수를 쓰다듬는 손길과 내 침대 속으로 들어와 끌어안을 때 촉감이나, 내가 빨래를 망쳐 울고 있을 때 줄어든 마틴 김 티셔츠를 본인이 입어 늘려주며 나를 웃기는 소리나, 내 생일 때 반차 쓰고 3시간 동안 만든 풍선 꽃다발로 사랑을 느낀다. 매일 하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어쩌다 한번 있는 감각 때문에 그냥 사랑한다. 남편은 숫자가 아닌 그 만의 모양으로 나를 사랑한다. 나는 세아릴 수 없는 사랑에 안정된다. 오늘은 팔짱을 꼭 끼고 나란히 걸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