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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를 위한 마중물

무슨 일이든 10년의 준비가 필요하다

by 김혜정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인생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0대는 치열하고 부산했다. 9년 간 걸어온 학원 강사의 길을 접고 4년 차이로 아이 둘을 낳았다. 여느 전업 주부들처럼 밤낮없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고 책임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행복이 물밀듯 들어와 온몸을 전율시키다가도 짜증과 답답함에 치를 떠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아무도 아이 키우는 방법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양육의 모든 과정이 바위로 계란 치는 일과 같았다. 아이들이 바위고 내가 계란이었다. 깨지고 부서졌다. 자식 키우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아들들이 사랑스러웠지만 더 낳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엄마한테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오롯이 내 책임이었고 잘 키워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다. 그래서 도서관에 다니면서 양육에 관한 책을 빌려 읽고 티브이를 보며 양육 노하우를 터득했다. 엄마한테도 노하우를 여쭤본 적은 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네는 워낙 순해서 특별히 힘든 것도 없었고 기억도 안 나~” 였으니 책과 티브이에 의존할 수밖에.




30대 중반을 넘어가자 경력이 단절될까 봐 두려웠다. 이렇게 아이만 키우다가는 40대 내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무엇일지 궁리했고 둘째 아들이 2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고 논술 수업을 선택했다. 학원과 달리 원생을 모으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홍보지를 붙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사를 간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나를 믿어 줄 학부모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절감했다. 다행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 그 무렵에 다녔던 재즈 댄스 초급반 동료분들이 나를 믿어 주었다. 그분들의 자녀 다섯 명을 첫 제자로 맞아들였을 때 나는 환호하며 ‘내 인생 제2의 황금기’라는 수식어를 이름표에 붙였다.




2년 후 내 나이 서른여덟에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졌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몸도 녹초가 되었고 정신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큰아들의 감정에 전전긍긍하고 또래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잔디를 깎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아직 어린 둘째는 워낙 순하고 독립적이었지만 작은아들과 놀아주며 엄마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일상도 힘겨웠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다만 교회 유치부 교사로 봉사하는 시간에 두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착하고 순진한 아들을 두었다는 게, 내가 혼자의 힘으로 두 아들을 키우는 게 대견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했다. 몸은 힘들어도 사랑의 힘으로 버텼다.




마흔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그간에 쌓인 양육법에도 지혜가 생기고 자신감도 늘었다. 큰아들이 또래보다 빠르게 사춘기에 들어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이런 경험담을 글로나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40대가 진정한 내 인생의 황금기인 것인가 하는 자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시기가 곧 도래하겠구나 싶고 다가오는 50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임을 직감했다.

늘 앞날을 계획하고 뭔가 사소한 것이라도 실행하며 살아왔던 삶의 방식에 변함은 없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미처럼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40대 초반이었을 때 40대 중반이었던 어떤 지인은 40대를 살고 있는 게 약간은 두렵고 낯설다고 했다.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옆에서 얘기했었다. 난 40대가 된 게 더 좋다고. 오히려 더 편안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단 2~3년이라도 멀리 바라보고 그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다면 인생이 좀 더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20대에 30대를 내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30대를 녹록지 않게 보내고 40대를 살아가는 건 한결 쉬운 일이다. 40대 후반을 지나가는 건 산행에서 내리막길을 가는 것과 같다. 90세까지 산다고 하면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후반기를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부지런히 달려온 발걸음을 가끔씩 뒤돌아보면서 흩어진 추억들은 주워 담고 넘치게 담았던 것들은 덜어내기도 하면서 또 멈추지 말고 걸어가야 한다.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옆도 둘러보려면 또 바쁠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대만큼 불안하거나 조급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발걸음에 여유가 생겼다. 생각에 숨통도 트였다.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니 미니멀한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50대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 한 걸음씩 마중 나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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