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족을 구원할 차례였소.

by 김혜정


일곱 번째 상담



<전략前略>


상담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선생님 얘기를 주욱 듣다 보니까, 선생님이 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어쩌면 엄마를 치유해 주기 위해서인 거 같아요~~.


아, 그런가요? 엄마를 제가 직접 상담해 줄 수도 있을까요?


그럼요. 충분히 가능하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적극적인 분이니까 상담 공부를 앞으로 더 많이 하게 되면 더 잘 하시게 될 거예요.


네에. 근데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상담 전문가 분께 상담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엄마가 저한테 말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상담 선생님께 말할 때 더 진실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쵸. 그쵸. 그렇긴 하죠. 상담사 분께 받는 게 좋죠. 혹시 선생님이 엄마를 직접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씀드린 거예요.


네, 네. 감사해요. 저를 좋게 봐주셔서요. 저도 이렇게 상담을 받으니까 마음이 정돈되고 편안해지고 개운해져서 좋아요.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남편한테도, 엄마한테도요. 그래서 남편은 방학 때 상담을 받기로 했어요.


오, 진짜요~? 너무 잘하셨어요. 남편 분이 받아 보시겠다고 하던가요?


네. 원래 남편은 상담 자체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가서도 자기를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도 있어서 효과가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이렇게 상담 공부도 하고 있고, 개인 상담도 받고 있고, 그동안 심리나 성격 대인관계 문제에 대해서 얘기도 많이 나누다 보니까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자기도 한 번 받아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단번에 그러겠다고 하더라구요. 대단한 발전이죠.


그러네요.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선생님께 좋은 영향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너무 빨리 대답해서 놀랐을 정도예요. 제가 평상시에 자기는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았으니까 상담이 꼭 필요하다, 상담을 받으면 몰랐던 면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자기 자신도 타인도 잘 이해하게 된다고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그냥 바로 대답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진정성 있는 대답인지 다시 한 번 물어봤는데, 진짜 받아보겠다고 대답한 거라고 하더라구요. 물론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해 보고 싶다거나 큰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그런 포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제가 권하니까 받아보고 싶다고 그래요. 제가 좀 아쉬운 건 제가 권한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하는 거거나, 아니면 상담실 가서도 너무 소극적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건데 그래도 얻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싶어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네, 그럼요. 남편 분에게도 좋으시고 결과적으로 선생님한테도 좋으실 거예요.


맞아요. 우리가 앞으로 잘 지내려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배우자에 대해서도 믿음이 있어야 되잖아요. 여태까지 우린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고 있는데 마음으로 소통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진심이 통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우리는 잘 알잖아요. 우리 남편도 그걸 잘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로 이번 상담 시간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상담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듯하다. 남은 3회기 동안 나는 내면의 욕망을 찾아가기로 했다.)



※서술 방식을 바꾸어 <전략> 내용을 뒷부분으로 배치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


상담사 선생님과 나는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20대에 들면서부터 엄마와 본격적으로 친구처럼 지냈고 엄마를 위한 고민상담소를 집안에 차렸다. 엄마는 자주자주 나의 상담소에 드나들었고 밖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과 고민거리, 혹은 다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나 아빠에 대한 험담을 일상처럼 늘어놓았다. 나는 떠먹여 주는 떡국을 오물오물 씹어 삼키듯이 엄마의 이야기들을 오물오물거렸고, 필요에 따라 떡국에 들어간 다양한 재료에 대하여 신박한 해석이나 평가를 나름대로 내리기도 하였다. 떡국을 먹이면서 나름의 해석과 가치 판단과 시름 해소로 마음이 가벼워진 엄마는 총총걸음으로 나의 상담소를 나갔고 난 그렇게 엄마를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하게 되었다.


독재 권력을 가진 아빠와 그 권력을 수용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나약하게 드러내는 엄마 사이의 냉전은 갈수록 파국으로 치달았고, 엄마 아빠의 사이가 멀어질수록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더 득달같이 매달렸다. 나는 아빠가 밉고 엄마가 가여웠지만 엄마를 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연약하게 휘둘리는 모습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셔서 119에 실려가거나 오그라드는 손발과 혀를 다시 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주물러야 할 때, 엄마가 술을 마신 것 같으니 얼른 가보라는 친척들의 전화를 받고 멀리서 속을 태우며 출동해야 했을 때, 나는 도대체 왜 집안의 상담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 경찰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서둘렀다. 빨리 독립해야 했다. 그게 내가 사는 길이었으니까. (물론 결혼하고 나서도 새로운 아수라가 펼쳐지라는 건 그때 전혀 몰랐지만.)


언젠가 브런치에 쓴 얘긴데, 7년 전쯤 우리 고모는 나한테 물었었다. 넌 왜 그렇게 엄마한테 집착을 하냐고. 이제 애들도 낳고 살고 있고 엄마도 잘 지내고 있는데 뭘 그렇게 엄마를 걱정하냐고. 보신각 종이 내 머리를 딩~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고 반문했지만 난 그 이후로 그 말을 곱씹게 되었었다. 나는 못 느껴도 제3자의 눈에는 그런 게 보이는구나. 내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혀도 할 말을 잃었다. 딸이 엄마를 걱정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 정상이 아닌 건가? 다른 사람들은 그럼 엄마를 모른 척한다는 건가? 멘붕이 왔었다. 그럼 보통의 모녀지간이라는 거는 어떤 건데!!!


작년 이맘때, 엄마의 이혼 소동이 있었을 무렵 고모하고 통화를 오래 했었다. 고모는 내가 지나치게 엄마를 걱정한다고 했다. 어쩌면 엄마가 이렇게 나약하게 된 건 내가 너무 엄마를 어린애처럼 보호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무슨 일만 있으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누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의지했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이혼 문제를 나에게 자꾸 들이밀 때마다 어르고 달래서 엄마의 마음을 돌려놔 주곤 했던 것이 어쩌면 엄마를 더 나약하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태세가 역전되었다. 고모는 지금 나보다 더 우선순위로 엄마와 가깝게 지내면서 엄마를 걱정하고 보호한다. 내 짐이 가벼워진 건 아마도 고모가 그 짐을 대신 지고 있기 때문일 거다. 고모를 힘들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나는 작년에 엄마에게 엄마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종용했다. 그 때문에 엄마는 고모한테 더 의지를 많이 했을 거고, 내가 그랬듯이 고모도 지금 엄마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이야기를 듣고 상담사 선생님은 보통 엄마들은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나를 의지했던 것 같으냐고 물으셨다.


엄마는 부모님께 진정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고 일곱 명의 동생들을 업어서 키워야 했다. 자유와 방종은 허락되지 않고 의무와 족쇄만 있었던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살가운 칭찬이나 관심 따윈 기대할 수조차 없고 독재하는 아버지와 순종적인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 했다. 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을 겨를이 없었다.


온전하고 충분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도 사랑과 애정을 충분히 줄 수 없다. 본인의 결핍된 사랑과 애정을 채우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고 그 부족한 사랑을 남편이나 자식들, 혹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갈구며 시간을 허비한다. 나의 엄마도 그렇다. 불안정한 애착을 극복하지 못해 마음 둘 곳을 모른 채 칠십여 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엄마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여전히 의식 안에 다 자라지 못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내면 아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상담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 내면 아이를 위로해 주는 애도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엄마는 딱 1년이 된 오늘, 작년 이맘때 했던 고민을 다시 하고 있었다. 아빠랑 떨어져서 혼자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또다시 반복되는 말을 꺼냈다. 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상담을 권했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아빠와 이혼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내면을 목도하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생이라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스스로 수용하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견고히 하는 과정이다. 엄마에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애도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담사 선생님 말씀처럼 나는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상담 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 나의 자기 치유가 어느 정도 끝났다면 이제는 가족을 한 명 한 명 구원할 때인가 보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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