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빠뜨렸지만

by 김혜정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난 주 월요일에는 연재를 빼먹어 버렸다. 그런 나에게 어제는 브런치에서 새로운 알림을 보내 주었다. 자유로운 글쓰기에 약간의 의무감을 부여함으로써 작가로서의 꾸준함과 책임감을 가져 보라는 듯,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라고.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약간 있던 근육까지 흐물렁거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약간 있던 근육을 오랜만에 다시 키우라고 새로운 월요일이 돌아왔고 오늘 오후 수업을 나가기 전까지는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글쓰기는 훈련이라고, 오랜만에 쓰려니 자세를 잡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연재의 성격상 앞의 글에 이어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휘둘렀기 때문이기도 했고, 2주간 있었던 상담 이야기를 하나로 압축하거나 하나씩 밀려 쓰는 것도 마뜩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다다다음 문단을 아까 대충 써놓고 출퇴근을 마친 후 다음의 두 문단을 썼다.


지난 두 주는 대학원에서 있었던 발표 두 건과 과목별 기말고사가 있었던 탓에 진짜 새벽 4시 반에 자는 날이 많았다. 그중에 논문의 형식을 갖추어서 연구 계획서를 논문처럼 써야 하는 기말 보고서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 한 과목만으로도 4일이 걸렸다. 물론 나의 업과 대학원 수업을 병행하면서 남는 자투리 시간을 일자로 쳐서 4일이지마는, 하루 한 시간에서 다섯 시간을 들인 걸 합치면 대략 총 12시간은 걸린 것 같다. 논문을 찾고 정리하고 글을 썼는데 내가 정한 주제에 대한 연구 문제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확신이 3일 차까지도 없었던 탓이다. 표지를 제외하고 5페이지 이상을 쓰는 것이었는데 9페이지가 나왔다.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로 5페이지 이상이 기준인 과목들도 다 9페이지가 나왔다. 질보다는 양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아무튼 1학 차인 나에게는 기말 과제나 발표, 기말고사가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는지 1학 차인 동지분들이라면 아마 격하게 공감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우리 1학 차인 동지분들에겐 사실 없던 동지애가 생겼다. 얼마나 다들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한 학기를 마치면서 하나의 산을 넘은 것 같다. 물론 앞으로는 더 큰 산들이 많겠지만, 이미 넘은 산으로 그 고통과 달콤함을 맛보았으니, 스탠바이는 되었다. 이제는 체력을 좀 더 비축해 두어야 할 때이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케케묵은 감정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는 시간이 뉘엿뉘엿 지는 석양처럼 그렇게 끄트머리만을 남기고 있다. 2023년은 나에게 화려함과 소박함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나는 나의 1년을 총지휘하는 감독이었고 주연 배우였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시작한 보통의 영화가 아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주연 배우가 줄거리를 만들어 가는 그런 영화였다. 어찌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도 닮은 것 같은 그런 거였다. 물론 홍상수 감독이 배우 김민희와 불륜을 저지른 것은 두고두고 봐도 지탄받을 일이고 참으로 이기적인 드라마지만,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풍겼던 특이한 분위기와 연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말하자면,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실루엣은 있지만 각본 없는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순식간에 바꿀 수 없고 이미 지난 과거, 내가 경험한 것들은 어느 정도 나를 규정한다는 것. 과거 속에서 내가 탄생했고, 과거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것. 과거를 쌓아 올려서 지금의 위치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미래는 나를 규정했던 많은 속박들이 나를 계속 규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내가 선택한 순간들에 의해서, 내가 선택하는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서, 내가 선택하는 나의 신념과 의지에 의해서 나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꼭 좋은 변화만 이룰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큰 좌절과 고통을 만날 수도 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가 그냥 툭 던져진 말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 속 인물들처럼 갑작스럽게 누굴 만나기도 하고, 길거리 위에서 낯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감당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자기 자신과 만나면서 불편과 분노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아직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떠한 일이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경험과 행동들이 미래의 발판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하나의 궤로써 통하게 되어 있다.


최근 대학원 개인 상담에서도 다루었고 과제의 주제로도 다루었지만 요즘 많은 시간을 '유능하고 지적이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하느라 썼다. 내가 그동안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이유가 결국은 이것으로 일치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꽤 오랜 기간을 나르시시스트의 감정받이로 사용되었다. 그전엔 잘 몰랐던 것들이 공부를 할수록 책을 읽을수록 논문을 읽을수록 투명해져 갔다. 내가 감정받이로 존재했었다는 걸 깨달은 시점이 다행히 힘든 관계를 끊고 나서여서, 그리고 내 마음이 너무나 평안해진 후여서, 이미 마음을 비우고 난 후여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르시시스트가 어떤 유형이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해방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


*이번 글은 상담 일지로 작성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기록함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작업으로는 어느 글이든 경중이 없다. 후회 없는 글이다. 마감까지 약 8분이 남았다. 마감 시간 있는 진짜 작가의 기분을 약 10% 느껴보는 순간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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