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해방감

by 김혜정

사진 : 내가 읽을 책들



11월 29일 수요일. 다섯 번째 상담




그런데요, 선생님~ 선생님은 어떤 감정을 억압하려고 했던 걸까요?


네? 제가요? 어떤 감정을요?


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주려고 애쓰셨잖아요. 그게 즐겁기만 한 게 아니고 선생님한테 힘든 일이었잖아요.


그쵸.


그때 선생님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감정을 억압하고 누르셨던 거예요. 그게 어떤 감정이었을지 저는 궁금하거든요.


아, 그런가요? 음.. 제 마음속엔.. 미움이 들어왔던 거 같아요.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점점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는 상대방이 미워졌어요.


미움이 생기셨군요~. 그럼 그 미움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미움을 해소하려고 노력을 하셨나요, 아니면 그냥 두셨나요?


기도를 했어요. 미움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죠.


기도를 했더니 미움이 사라지던가요?


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정화가 됐어요. 아! 그리고, 글을 썼어요. 내 마음에 고백하듯 글을 쓰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선생님은 신앙과 글쓰기로 마음을 다잡아오신 거군요~.


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그렇다면요, 선생님. 그 미움의 감정은 왜 들었던 걸까요?


저를 힘들게 하니까 그랬겠죠?


그럼 미움이라는 감정 말고 다른 감정은 없으셨나요?


움.. 죄책감? 죄책감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죄를 짓는 거니까요. 그 죄를 씻어버리기 위해서 다시 기도를 했고 도덕심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아~ 선생님은 미움과 도덕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셨군요.

왜 갈등했을까요? 단순한 미움이나 도덕적 감정이 아닌,

그 기저에 있던 마음은 뭐였을까요?


그 안에 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선생님, 억울함이 아니었을까요?


에? 억울함이요..?


네~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른 사람들에게 애쓰면서 억울한 감정을 느끼셨던 거 같아요.


아아~~ 생각해 보니, 그랬을 수 있겠네요.


선생님은 그들에게 어떤 것을 바랐을까요? 짜로 받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짜로요~~? 움.. 이해받고 싶었죠. 나 그대로를 수용해 주는 그런 거요?


아~ 선생님은 이해를 받고 싶으셨군요. 그런데 그들은 선생님을 이해하고 수용해 주었나요?


아니요. 자기 얘기만 하느라고 바빴죠. 대화라는 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건데 제가 아무리 제 생각을 얘기해도 튕겨나갈 뿐, 소통이 되지 않으니까 심적으로 어려움이 커져갔어요.


그렇죠. 선생님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정작 선생님은 이해받지 못하니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선생님은 선생님 그대로의 모습 자체를 이해받는 게 중요한 분인데 말이에요.


네, 맞아요. 저는 친구를 사귈 때도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인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요.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말이 통하고 소통이 되는 사람라면 평생 친구로 삼고 싶어요.


그렇죠. 선생님께는 그게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예전에 그 언니분하고 있었던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도 마음속에 억울함이 크셨던 거예요.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까 상실감이 엄청 크게 느껴지신 거예요.


아~ 맞아요. 상실감이 컸죠. 다른 사람들조차 수박의 겉만 보고 속사정은 모르면서 저를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 때, 이해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컸구요. 그 관계들을 끊었을 때는 상당한 상실감이 느껴지더라구요. 1년 정도 숙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치유를 하니까 다행히 상실감은 사라졌어요. 지금은 미움도 없고 편안하고 좋아요.


그렇게 스스로 자기 치유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대단하시네요~. 선생님, 근데 그 언니분과 관계를 끊으면서 상실감을 크게 느끼셨던 만큼, 사실 그 언니하고 힘든 관계를 유지했던 이유는 뭔지 아세요?


글쎄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남 얘기 잘 들어주던 게 습관이 됐고, 지금도 논술 학생들ㆍ학부모님들 고민 들어주고 해결해 주면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 연장선으로 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저는 조금 다르게 봐요. 선생님.


어떻게요?


선생님은 그분과 지내는 동안 강한 애착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애착이고 사랑이었던 거죠.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었고 믿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일방적인 관계가 되고 결국 관계를 끊었으니까 애착 대상도 사라진 거예요. 애착 대상이 사라지니까 상실감이 컸던 거구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알게 됐을 땐 좋았거든요. 인성도 좋다고 생각했구요. 누구나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과하게 대하지 않으니까요. 그 모임 자체도 그렇고 서로 친해지면서 애착을 많이 느꼈어요. 그때가 제가 굉장히 힘든 때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를 정리하는 데 고민도 많이 했고 사실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더 떠오르네요. 저도 그 생각 하긴 했거든요. 내가 이렇게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게 소중하면 참고 이어가야 하는 거 아닐까.


선생님은 그걸 소중한 관계라고 생각하셨지만,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애착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른 관계에서 애착이 형성되면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가 수용되고 이해받은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걸 받으려면 뭔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면, 그게 좋은 관계인 걸까요?


아, 그러네요. 저도 아무런 노력 없이도 편안한 그런 사람만 만나고 싶어요. 이젠요. 그리고 실제로도 이제 그렇게 살고 있어요. 모든 사람한테 다 맞추려고 애쓰지도 않고 싫으면 싫다고 거절도 하구요. 이제 인간관계가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게 된 것 같아요. 스스로 묶고 있던 밧줄을 순식간에 풀어낸 기분, 해방감이 들어요.


다행이에요. 선생님. 이제 엄마하고의 관계 얘기를 들어볼까요?




상담사 선생님은 대인 관계의 문제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은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애착 유형이 4가지가 있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난 안정 애착일 거라고 장담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는 거다. 왜냐. 안정 애착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기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돼 있고,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알며 대인관계도 원만한 유형이니까. 그냥 사랑 많이 받은 티가 철철 흘러넘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콕 짚어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난 그날 비로소 알게 됐다. 내가 불안정 애착 유형이었다는 것을.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했던 건, 렸을 때 그대로의 모습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 애정이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정과 사랑을 채우기 위해 난 40년을 넘게 노력해 왔고, 구멍 나서 줄줄 새는 바가지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인정 욕구를 발산했던 것이다. 그랬구나. 그놈의 인정욕구. 인정욕구가 애정 결핍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걸까 모르고 있었던 걸까. (나는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4단계 존중의 욕구로만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의 인정 욕구는 현재 성취 욕구로 발전되어 있다. 그 근원이 애정 결핍에 있다손 치더라도, 난 지금은 멈출 생각이 없다. 애정 결핍을 알았다는 건 나에겐 위안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덧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내가 못나지는 것도 아니다.. 그놈의 애정이 결핍되었다 해도 그건 지난날이다. 지금의 나는 자식들한테 받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밧데리가 채워졌다. 줄줄 새는 바가지가 아니라 아예 화수분이다!! 하하. 상담은 내 결핍의 근원을 깨닫게 해 주었고 나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마치...


이것으로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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