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상담은 12월 27일에 있었다. 그때 이루어진 상담을 1월 1일 안에 기록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의 인정욕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탐색하는 상담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새로운 기법을 통해 나의 내면을 만나게 했다. 바로 온몸의 감각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명상을 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나의 인정욕구를 느끼는 감각 기관이 어디인지 느껴보라고 했다. 내가 이성을 발휘해서 뭔가를 생각하려고 하면 그 생각은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면서 옆으로 비껴 놓으라고 했다.
"자, 눈을 감고 선생님의 인정욕구가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탐색해 봅니다. 머리, 눈, 코, 입, 귀, 가슴, 배, 손, 손등, 다리, 발, 발등, 등허리... 어느 부분에서 선생님 인정 욕구가 느껴지시나요. 천천히~ 떠오르는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상담사 선생님이 차분한 톤으로 이렇게 신체 기관을 하나하나 언급할 때 나는 계속 심호흡을 하면서 나의 신체 기관을 따라갔다. 최면술을 거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도 들고 어색하고 낯선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매 회기 진지하게 상담에 임하는 자세로 상담사 선생님의 말을 전적으로 따라왔기에 이번 방식도 성공적이기를 바랐다.
조용히 명상을 하다 보니 뭔가 얼굴에서 신호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전파를 쏘아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신호가 잡히다니. 내가 느낌을 만들어내는 건지 진짜로 감각에 정신이 집중된 건지 명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나는 입을 열고 말했다.
"선생님, 저, 눈 아니면 입으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눈과 입 중 어디에서 감각이 더 크게 느껴지시나요~?"
"음... 눈이요. 눈앞에 사진 한 장이 보여요. 제가 작년에 감상문으로 상을 받으면서 찍었던 독사진이에요. 회색 코트를 입고 있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선생님의 눈에 비친 과거의 그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네? 어떻게요?"
"네에~. 선생님의 모습에 어떤 감정이 드세요?"
"자랑스러워요. 대견해요."
"아,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느껴지시는군요~. 그럼 선생님께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세요?"
"음...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는 마."
"아, 네. 선생님.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으시군요. 잘하셨어요.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이렇게 과거의 나와 만나 보니까 어떠냐고 물었다. 예전에 여섯 살의 어린 나와 만난 것도 잘 해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잘한 것 같다면서. 나는 실로 놀라웠다. 감각 기관에 집중을 해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작위적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담 중에 행해진 명상 중 떠오른 이미지는 평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조각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장면 중 하나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 필름처럼 속도감 있게 장면들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혼재된 데이터 안에서 단 하나의 장면 스펙트럼만이 분리된 상태로 튀어 오르는 방식이었다. 그 모습은 연속적인 장면의 하나였지만, 나에겐 순간의 특별함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물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각인된 효과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상담사 선생님께 이런 생각이 들었음을 표현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같은 방식으로 다시 한번 감각을 통해 나의 인정욕구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탐색하길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내가 인정받았다고 느낀 때가 브런치에 입문하게 된 순간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의외의 결과라고 했다. 나의 인정욕구가 어렸을 때의 인정의 결핍에 기인했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불과 2년 전부터 인정욕구가 더 발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렸을 적 부모님께 덜 채워진 인정욕구라면 어린 나를 만나서 애도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인데, 나는 두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의 나를 떠올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 선생님, 그렇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생님은 과거의 인정 결핍이나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게 진짜로 해소가 되신 거네요~~. 아, 이제 이해가 돼요."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의 상담 경험이 더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과거의 내 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요. 과거의 불충분했던 인정 욕구랑 지금 느끼는 인정 욕구는 조금 다른 양상인 것 같아요. 물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그런 명예욕이나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인정욕은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꼭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추진해 가면서 내 한계를 하나씩 깨뜨리면서 목표하는 것을 성취해 나가는 게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거죠. 중요한 건 제가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좋네요. 선생님의 인정욕구는 40대 이후에 새롭게 생긴 거고, 지금은 성취욕으로 발전한 상태네요. 거기에 글쓰기 활동이 크게 작용을 한 거고 글쓰기가 선생님의 인정욕구를 더 키워 줬나 봐요. 글쓰기가 어떻게 선생님께 큰 영향을 준 거예요? 궁금하네요~."
글쓰기를 하지 않는 상담사 선생님은 오히려 나의 글쓰기에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글쓰기 하나로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했다는 것인지를. 물론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면서 힘들 때면 그 힘든 마음을 일기장에 털어놓았다. 일기장은 말없이 내 마음의 찌꺼기들을 받아주는 상담소였고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울면서 일기를 썼고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돼도 짜증을 벅벅 내면서 일기를 썼다. 시어머니의 이중성으로 인한 남편과의 불화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도 일기장에 담았다. 또 많은 계획들과 진행 상황에 대한 기록, 나 자신에 관한 성찰, 그리고 명언에 관한 기록과 하나님을 부르짖는 기도문들도 가끔씩 다시 읽을 때면 새록새록하다. 2021년 12월 29일부터 입성한 브런치 세계는 그런 일기의 연장이자 개인사의 자유로운 기록으로써, 다시 나의 연약한 부분과 모순들, 혹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관한 재조명 등을 가능케 하는 장이 되어 주었다. 나는 상담사 선생님께 브런치를 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고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과 다른 분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의아하다는 듯이 "그렇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브런치에 입성할 때는 책을 한 권 출간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책을 썼느냐 안 썼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사람이냐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제 쓰는 행위 자체로 만족한다. 책을 출간하는 것은 언젠가는 분명히 이루게 되겠지만, 성급한 마음은 집어넣었다. 내가 충분히 여물고 여물었을 때 출간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할까.
이번 상담을 계기로 나의 인정욕구는 브런치가 부팅해 줬고 공모전이 재부팅 해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것들보다 글쓰기를 할 때 스스로를 더 가치 있게 느낀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작가가 되려고 발을 벗고 나설 계제는 아니다. 깜냥도 안 되고 상황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된다. 그냥 단지 내가 놀고 싶을 때 언제든 놀러 와서 얼렁뚱땅이라도 한 편씩 쓰고 가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런치는 나의 인정욕구를 아낌없이 계속 채워 줄 평생의 동반자이며 더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상담소이다. 브런치가 있어 나는 나의 인정욕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