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자유를 향하여

by 김혜정


아홉 번째 상담. 2024년 1월 3일



지난번 상담 때, 나의 인정욕구는 과거의 결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성취욕과 관련된다는 결론을 얻고 나서 더 이상 인정욕구를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을 거라 판단하신 상담 선생님은 "그럼 선생님~ 이번 상담에서는 어떤 걸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하고 운을 띄우셨다.


"네에~ 다음에 얘기해 보자고 했던 주제가 있었는데요~. 왜 나는 어떤 상황에서 궁금한 걸 자유롭게 묻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 싶어요."


"아~ 그랬죠~!! 차암~!! 맞아요, 선생님. 선생님 기억력이 엄청 좋으시네요오~."


(원래 나에게 가장 관심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문제인 거니까 기억하는 거라는 건 안물안궁)

상담 선생님은 박수를 다소곳하게 한 번 쫘악 치면서 가지런한 이를 활짝 드러내 보이며 웃으셨다. 언제나 부드럽고 친절한 미소로. 미소보다는 박장대소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나는 그 순간, 선생님처럼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격한 공감과 반응, 끊임없는 질문 세례로 대화를 유지하는 편인 나는 선생님의 그 포근하고 나긋나긋한 음성과 자연스럽고 환한 미소가 곧 그리워질 것 같다.


아무튼 지난 시간에 나는 이런 얘길 했었다.


"저 기말고사 올 A쁠 맞았어요. 하하하.."


"어머나~ 축하드려요. 올 A쁠 맞는 건 쉽지 않은데 평소 성격처럼 적극적으로 공부하셨군요~."


"하하하. 좀 열심히 하긴 했죠. 수업 시간에도 안 빠지고 발표하구요. 상담 대학원이서 그런 건지 여기는 자기 경험을 공개하면서 남들과 생각을 주고받고 발표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더라구요. 교수님들도 학생들 생각을 완전 존중해 주시고 어떤 얘길 해도 수용해 주시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기말고사도 좀 어렵긴 했는데 준비하면서 재밌었어요."


"그러셨군요~. 선생님, 역시 노력한 보람이 있으시겠네요. 장학금도 받으실 테고."


"네? 장학금요?"


"네~ 성적 장학금이 있잖아요. 올 A쁠이면 장학금 다 받지 않나요?"


"아~ 다른 대학원은 다 주나 보네요? 여기는 그렇지는 않구 한 학차 당 1명만 준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보지는 못하구 있어요."


"왜요? 선생님? 왜 못 물어봐요?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요."


"아아... 저는 그런 거 잘 못 물어봐요."


"에에? 정말요? 어머 의외신데요. 선생님은 뭐든지 적극적으로 척척 할 것 같고 궁금한 것도 못 참고 다 물어보실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저도 그런 얘기 종종 들어요. 의외성을 갖고 있다고. 근데 제가 원래 성격이 내향적이었는데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꾼 거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본래 성격이 그래선지 거절도 잘 못하고 물어보는 것도 자유롭게 못하고 그래요."


"어머, 선생님, 이 부분은 한 번 다루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왜 거절을 잘 못하고 질문도 자유롭게 못하는 건지. 어때요?"


"네, 좋아요.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그냥 성격이라고 치긴 그러니까요."






상담 선생님과 이 주제를 파보기로 하고, 나는 어느 정도의 설명을 곁들였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무시를 많이 당했다고 여겼던 거나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했을 때 면박을 당했던 경험들에 대해서.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사회에 나가서도 자유로운 질문을 하려고 하면 위축됐던 주관적 느낌에 대해서. 나는 내가 이해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뭔가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때론 남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장면 전환이 많은 영화를 보면 앞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것들의 바탕에는 어렸을 적 책을 많이 안 읽었다는 점과 애초에 타고난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 깔려 있었지만, 내가 생각할 땐 무엇보다 집에서 무시를 많이 당해서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게 가장 큰 파이였다.


선생님은 지난 시간처럼 명상을 통해 감각적으로, 무시당했던 나의 모습을 만나 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내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선입견 때문인 듯했다. 선생님은 방법을 바꾸어 그러면 빈 종이에 그림을 한 번 그려보라고 했다. 내가 무시당했던 특정 상황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자유롭게 채워도 좋다고. 나는 엄마를 가운데 그리고 왼쪽에는 나를, 오른쪽에는 오빠를 그렸다. 세 사람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엄마의 말풍선에는 이런 말들이 들어갔다.


"혜정이가 어떻게 차를 몰고 종로를 찾아가~. 길을 어떻게 알고~~."


오빠의 말풍선

"혜정이가 종로를 왜 못 가요? 네비 켜고 가면 다 갈 수 있어요."


엄마의 보청기를 제작한 종로지사의 AS 방문일을 앞둔 어느날, 엄마가 오빠랑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아마 그곳에 같이 가자고 엄마가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엄마는 종로는 병원이 있는 목동보다도 엄청 많이 먼 곳이니 혜정이는 길을 못 찾아갈 거라고 단언했고 오빠는 네비가 있는데 왜 못 가느냐고 대꾸했다고 했다. 오빠의 대꾸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당한 말씀이었건만, 엄마는 어안이 벙벙했다고 했다. "혜정이가 그 먼 길을 갈 수 있다고? 길 못 찾고 뺑뺑 돌면 어떡해~ 약속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빠한테 했던 말들을 고대로 나에게 전했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눈밑이 떨렸던가? 엄마는 나를 어느 정도까지 무능력자로 취급하는 것일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말풍선에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머뭇거렸다. 뭐라고 딱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령 나를 더 이상 무시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지, 나도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지, 아니면 엄마한테 진심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하고 싶은지, 무슨 말이든지 솔직하게 떠오르는 말을 써보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힌트 삼아 이렇게 적었다.


"엄마, 나를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꽤 잘하고 있다고."


곧이어 선생님은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을 적어보라고 했다. 여기서도 조금 꾸물거렸다. 왜냐하면 어차피 엄마는 이런 말을 나한테 해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다 하더라도 해보라고 했다. 백지에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는 행위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고 또한 실제로 하거나 듣지 못한 말이라 해도 적은 것을 다시 보면서 기시감을 얻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에 애써 용기를 냈다.


"혜정아, 너는 내 생각보다 대단한 아이였구나. 너를 너답게 보지 못하고 여태까지 무시하는 말을 하고 마음에 상처 준 거 정말 미안하다."


나는 엄마의 사과를 원했다. 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엄마가 진심으로 깨닫고 사과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선생님은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예전에 카톡으로 두어 번 "사랑해. 우리 딸~" 하고 엄마가 톡을 보냈지만 그 멘트에 행복감을 느끼지는 못했던 까닭이었다.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엔 너무 많은 물음표가 붙어있는 것 같다. 근데 그중에 하나의 에피소드.


엄마랑 같이 있을 때 작은아들한테 전화가 왔고 짧게 통화했다. 통화 끝에 아들이 습관처럼 "사랑해, 엄마~"하고 말했다. 폰에서 새어 나오는 이 말을 코옆에서 들은 엄마는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눈썹을 모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휴, 징그러워~. 무슨 그런 말을 해~" 나는 무척 놀랐다. 손자의 사랑한다는 말이 징그럽다니. 어떻게 징그럽게 들을 수 있지. 옛날 분들은 다 그런 걸까. 우리 세대와 윗 세대 사이가 그런 걸까. 우리집만 그런 걸까. 아무리 세대나 분위기 탓이라 해도 손자의 사랑 표현을 징그럽다고 이해하는 엄마는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반감이 들었다. 생전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듣고 자라서 내 자식들에게는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 주고 그래서 사랑이 사랑인 줄, 자기가 사랑받는 아이인 줄,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왔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나인데, 차라리 부러워는 못할 망정 징그러워가 뭔가. 사랑한다는 말이 징그러운 단어였던가.


애석했다. 사랑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 아니 사랑은 원할 때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주고받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 엄마가 애석했다. 여과하지 못한 감정을,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바르는 진흙팩처럼 얼굴에 목소리에 묻혀내는 엄마가 애석했다.


나는 이참에 엄마에게 수없이 들었던 부정적인 단어들과 무시하는 말들을 싸그리 백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나에게 상처를 입혔던 말들은 엄마를 온전히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므로.




내가 거절을 잘 못했던 건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고,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건 내 감정이 부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버리는 데 대한 무의미함과 민망함에 있었다. 내 감정이 어떤 모양이건 간에 누군가에서 충분히 수되고 또 충분히 피드백 되었다면 내 질문이 혹시 남에게 이상하게(혹은 우스꽝스럽게) 들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내 감정이 거부당할까 봐, 나 자체가 거부당할까 봐 전전긍긍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지만 말이다.)


며칠 후,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상담 대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내가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더 세련된 방법으로 질문을 했다. 띠리링~ "안녕하세요. 혹시 성적 장학금 대상자 발표일이 따로 있나요?" 내가 생각해 낸 참신한 질문이었다. 교학처 직원분은 또한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네에~ 2월 5일 경이 등록금 납부일인데요. 홈페이지에 등록금 안내랑 같이 성적 장학금 수령자에게는 안내가 뜰 거예요~. 아마 1월 말 쯤이 될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세상은 사실 나에게 지대한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행여나 꼴불견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될까 봐 속으로 신경을 썼다. 등록금 자체보다 1등인지 아닌지가 궁금한 거라는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게 싫어서 꼭꼭 묻어 두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나 다시 태어난다. 어제는 경제적 자유를 향하여, 오늘은 질문의 자유를 향하여~!!! 세상을 향해 외쳐 본다. 자유는 내 거닷!!!


니맘대로 하세요~.




P.S. 상담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상담 선생님은 숙제를 주셨다. 오늘 다 하지 못한 말,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말풍선을 글로 한번 적어오면 좋겠다고. 형식은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상처받았던 기억들을 모조리 털어냈으면 좋겠다는 의도는 들어 있었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갔을 때,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상처받았던 말이나 상황을 써야 되는 것이었는데 글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걸 여기에 복붙하고 싶은데 너무 길어서 다음 글로 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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