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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r 25. 2024

부모와 자식 간의 간극


부모와 자식 간의 간극



어제 얼마나 화창했는지 밖에 나가본 사람은 모두가 알 것이외다. 지난 주중에는 따뜻한 햇볕을 시샘하듯 날까로운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기도 했지만,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그보다 더 다정다감할 수 없을만치 햇살이 제 몸을 풀어 봄이 도래했음을 맘껏 알려 주었더랬다.


낮 최고 기온이 22도까지 치솟을 거라는 기상예보의 도움을 받아 나는 울끈불끈 효심을 발동시켰다. 그리하여 토요일 저녁,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내일 가볍게 나들이나 가보자고 청하였다.


"엄마, 내일 날씨가 무지 좋다는데, 영종도 갈래?"

"어? 영종도?"

"어. 내가 저번에 영종도 굴밥집 가서 굴밥을 먹었는데 맛있더라구. 사람도 엄청 많았어. 엄마도 굴밥 괜찮지? 어때? 같이 갈래?"

"어~ 굴밥도 괜찮긴 한데, 나는 칼국수 먹고 싶어. 저번에 이모가 영종도 가서 칼국수 먹고 왔다고 했는데, 엄청 맛있었대. 난 칼국수 좋아하니까."

"그래? 그럼 해물 칼국수 먹어야겠네. 내가 검색해 볼게."

"그래."

"그럼 아빠 내일 아침에 들어오면 아빠도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봐."

"에이~ 아빠는 안 가."

"모르지. 아빠도 간다고 할 수도 있지. 한 번 물어봐, 그래도."

"아니야. 아빤 가는 거 안 좋아해. 근데 많이 먼 데가 아니어서 갈래나?"

"그럴 수도 있지. 그니까 아빠한테 꼭 물어봐. 알았지?"

"알았어."

"그럼 나 내일 교회 갔다가 1시 조금 넘어서 갈게. 밥 시간 조절해서 적당한 시간에 먹어."

"어, 알았어."


일요일 나들이를 맘 편히 하기 위해 나는 토요일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될 때까지 대학원 과제 2가지를 끝마쳤다. 마지막에 교재를 읽을 땐 약간 졸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습까지 마치자 마음이 개운했다.


일요일 아침, 엄마한테 톡이 와 있었다. 아빠한테 영종도 갈 건지 물었더니 누구하고 가는 거냐고 되묻지도 않고 곧바로 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었다. 엄만 톡 마지막에 "괜히 물어봤나 봐."라고 했지만, 그 속을 누가 모르랴. 엄마는 아빠를 싫어라 싫어라 하면서도 무엇이든지간에 아빠의 동의가 떨어지면 좋아한다. 그것은 필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한 거부감일 뿐. 워낙 아빤 고집이 세고 완고하며 본인의 뜻대로만 하는 분이기 때문에 엄마가 요구하거나 제안하는 것에 대해 본인의 생각이 동하지 않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원하는 것을 쉽게 들어주거나 들어주려고 하는 경우가 엄마 입장에서는 많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엄마는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아빠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오케이를 한 것은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처사였고, 나들이에 동행한다고 해서 그리 기분 나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봄 나들이 삼아 발을 맞춰 걷는 거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도 있을 터였다. 딸내미는 줄타기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그 줄에 균형을 맞추느라 요렇게 신경을 쓰곤 한다.


1시에 친정에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엄마랑 아빠 두 분 다 살짝 업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는 겉옷까지 다 입고 서서 콧노래를 부르고 계셨고, 엄마는 몸배 바지만 아직 벗지 않았을 뿐, 화장도 하고 외출 준비를 끝마친 채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엄마 아빠가 뭘 드시고 싶으신지 다시 한번 물었다. 해산물 중에서 어떤 게 좋은지. 회를 드시고 싶다면 회를 사드리겠노라고. 아빤 아무거나 내가 먹고 싶은 거,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따라가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칼국수를 고집하셨다. 선택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엄마아빠가 사시는 인천 계양구에서 영종도는 훨씬 가깝고 길이 단순했다. 아직 꽃봉오리가 맺히거나 꽃이 핀 곳이 보이지 않아 봄나들이로는 이른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코에 바람이라도 넣으시길 바랐다. 단출하게 셋이 가니 이야기꽃을 피우지는 못하더라도 모처럼 따뜻하고 상쾌한 날씨에 두 분의 주름살이 펴지기를 바랐다.     


해물 칼국수가 요란하게(화려하게) 나오고 배고프신 두 분은 몇 그릇을 비웠다. 내가 찾아간 곳은 해변에 맞닿아 있어서 반쯤 열어 둔 폴딩 도어 바깥까지 날아든 갈매기들의 "끼룩끼룩" 울음소리가 사운드를 채워 주었다. 날씨가 더워져 서빙하시는 분이 폴딩 도어를 활짝 열었다. 2시가 안 된 시간이라 바닷물이 훌쩍 빠져 있었다. 4시 반 이후쯤 되면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철썩거릴 텐데, 점심시간에 맞춰 오느라 미처 썰물일 거라는 예상을 못했다. 통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보이는 카페에 가도 썰물이겠구나 생각하니 가기 전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칼국수를 다 먹으면 카페에 가자고 얘기를 꺼냈다. 삼면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카페라 너무 시원하고 좋은 곳이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나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 두 분은 (어쩌면 우리 셋이 가는 걸 어색해한 것일지도) 카페까지 갈 것 없고 여기서 뽑아 먹는 종이컵 커피도 충분하다고 입을 맞추셨다. 이럴 때만 손발이 척척 맞는 건 뭔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면 기분이 별로인 나는 금세 김이 빠져 버렸다.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와 줄 수는 없는 건지, 보송보송한 건조기만도 못하게 건조하기만 한 부모님이 야속했다.


바다 쪽 난간으로 나가 종이컵 커피를 홀짝이며 아빠의 경비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그곳조차도 따라 나오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가 이제 가자고 부추기느라 아빠와 내 곁으로 왔다. 다시 식당 안을 가로질러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카페를 안 갈 거면 어느 쪽으로 가 볼까? 여기는 선착장이라 해변을 거닐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 있는 산책로를 타고 올라가 볼까, 아니면 해변으로 나갈까? 어디를 가도 같은 바다지만 그래도 더 뻥 뚫려 있는 바다를 보여 주고 또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한다. 헐. 집에 가자고? 집에서 할 일이 많다는 엄마의 말에 나만 놀란 게 아니었다. "아니, 그럼 여기 칼국수만 먹으러 왔나?" 까만 선글라스를 꺼내어 들었던 아빠도 당황스러워 도로 선글라스를 집어넣었다. 엄마는 머리 염색도 해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해변 산책만 하고 가도 늦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엄마는 피곤하다며 집에 가겠다고 또 고집을 피웠다. 작년 당뇨 직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가 최근 당뇨 판정을 받으신 엄마는 식후엔 몸이 너무 무겁고 피곤해서 돌아다니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 가서도 절대 바로 잠을 자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어제 숙제도 다 해 놓고 시간을 비웠다고 말이다.


아빠는 그럼 시간이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럼 엄마 집에 데려다주고 아빠랑 놀자고 했다. 하하하. "나랑 놀자"는 아빠의 귀여운 말에 웃음이 터졌다.

"뭐 하고 싶은데?"

"볼링이나 치자."

우리 큰아들이 친구들이랑 볼링을 자주 치러 다니는데 아주 잘 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신 건지, 갑자기 볼링장을 가자신다. 저번에 큰아들 템포에 맞춰서 네 게임 연속으로 쳤다가 골반 쪽에 석회가 꼈던 아픈 사연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왕 아빠랑 놀기로 마음먹은 거 무를 수도 없었다.


다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달렸다. 영종도는 최근에 세 번 갔는데 갈 때마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파아란 하늘이 날 반겼고 둥둥 떠다니는 하얗고 뽀얀 구름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는 내 모든 고민을 다 가져가 버렸고 손톱에 낀 때까지도 다 쏙 빠질 것만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음식점도 카페도 가는 곳마다 특색이 있었고 걷는 길마다 새로웠다. 가장 최근엔 작은 아들과 둘이 갔었는데 카페에서 글도 쓰고 깜깜한 밤엔 바닷가에서 폭죽놀이도 했다. 집을 떠난 어디든 우리에겐, 나에겐 힐링이 되고 영감이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 힐링의 시간을 부모님과도 나누려고 하는 거였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부모님은 어디를 보나 어디를 가나 감흥이 별로 없으셨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저 사진처럼 보이는 듯했다. 내 기대와는 한참 달랐지만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엄마에게는 바닷가가 새롭지 않고 해물이 새롭지 않았을 뿐이니까. 여행이나 나들이보다 집에서 tv 보기를 더 좋아하는 아빠에게도 영종도 나들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아빠가 나중에 나에게 해 준 말씀에 의하면, 나이가 들면 감흥이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부모님의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해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지만, 어쩌겠는가. 성향이 다르고 나잇대가 다른 걸. 부모님의 마음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엄마를 집 앞에 내려 드리고 볼링을 치러 가려는 찰나, 볼링을 치려면 손톱을 바짝 깎아야 안 아프게 칠 수 있다면서 집에 들어가서 손톱 좀 깎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빤 "그러면 볼링을 좀 친다는 얘긴데 그럼 나랑은 게임이 안 되지. 난 완전 초짠데~" 하셨다. 그러면서 "그럼 당구나 치러 가자."고 하셨다. "그래, 나 당구도 좋아해. 특히 포켓볼은 좀 잘 쳐!" "그래에? 나는 포켓볼은 안 쳐 봐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내가 4구는 가르쳐 줄게. 당구장 가자!" 요즘 당구장을 집처럼 드나드는 아빠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하여 아빠와 나는 주차를 하고 집 인근에 있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대학 다닐 때, 남자 동기들한테 배워서 어느 정도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으므로 아빠의 기초 이론 수업은 빠른 속도로 입력이 되었다. 시네루, 얇게, 두껍게, 끌어치기, 원쿠션(아빤 왕쿠션이라고 했다), 투쿠션, 쓰리쿠션, 벌점과 점수 계산법 등. 처음엔 아빠의 이론 설명으로 나 혼자 연습 게임을 하고 쉬운 공부터 어려운 공까지 약간의 훈련을 받았다. 아빤 내 기본자세가 무척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가 코칭을 해주지 않아도 딱딱 맞추었을 때는 "오~ 잘 치네!! 자질이 있어. 발전 가능성이 아주 많아!!"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본격적인 게임으로 돌입했다. 아빠는 10점, 나는 5점을 내기로 하고, 치는 기회는 아빠가 한 번 치면 나는 두 번 치는 것으로 아빠가 정했다. 아빤 알았을까? 아빠가 벌점을 자꾸자꾸 내게 될 줄을. 첫 번째 게임에서 내가 이긴 후 두 번째 게임에서 아빤 줄줄이 벌점만을 가져갔다. 아빠가 채워야 할 점수는 점점 늘어갔다. 갑자기 아빠의 코칭이 사라지고 가끔은 내가 치는 동안 아빤 스크린으로 아빠의 vcr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빠가 화가 난 건 아닐까 살짝 걱정스러웠지만, 아빤 "너 시켜주려고 온 거니까, 너 하고 싶은 만큼 해~" 하면서 두 게임이 끝난 후에도 내 의사를 물었다. 1시간 반이 지나기도 했고 아빠의 연속되는 실점으로 행여 아빠가 지칠까 하여 끝내기로 했다. 나란히 세면대에 서서 꺼메진 손을 닦으며, 아빠가 잘 가르쳐 줘서 제대로 배웠고 재밌게 잘 쳤다며 나는 형식적이나마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돈만 있으면 참 좋은 세상이야~"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와의 사이에 냉기가 흐를 게 뻔할 걸 아는 아빠는 공원에 가서 좀 더 걷고 들어가겠노라 했다. 건널목을 건너며 아빠는 "오늘 고마웠다!!" 하고 크게 말했다. 공중에 손을 흔들며 아빠와 헤어지고 등을 지고 걸어가는데, 목이 꽉 메어 왔다. 눈물이 솟구쳤다. 최근 꿈에 본 아빠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다. 꿈에서 아빠는 안방에서 갑자기 나오더니 "아빠 이제 들어가서 잘게~!!"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고집스럽고 완고한 독불장군 아빠, 이기적이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아빠였지만, 어제의 아빠는 또 다른 아빠였다. 딸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딸에게 고마운 마음도 표현하는 자상한 아빠였다. 어제의 아빠는 순하고 편한 아빠였다. 이런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실까 봐 두렵다. 그래서 오늘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 될까 봐, 오늘 본 모습이 마지막이 될까 봐 눈물이 난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고,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정에 들어가니 엄마가 자고 있었다. 엄마 그렇게 자꾸 자면 안 된다고 불러내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자꾸 잠이 쏟아진다는 엄마, 과수면증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인터넷을 뒤져 보고 뇌 mri를 찍어 보는 게 어떨까 이야기했다. (오늘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혈당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전화해서 약에만 의지하면 안 되고 음식을 철저히 조절하시라고 주지시켰다. 그리고 혈당 측정기를 주문했다.) 아빠가 그 사이에 들어오시고 잠깐 더 대화를 한 후에 엄마가 싸주신 김치를 들고 나왔다. 배웅을 또 나오시겠다는 아빠한테 엄마는 쓰레기를 들려주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한테 톡이 왔다. 오늘 고마웠다고. 다음엔 엄마가 맛있는 밥 사주겠다고.


부모님의 남은 여생 가운에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자주 생각해 본다. 뭘까. 뭐겠는가. 엄마는 어제 칼국수를 먹으면서 얘기했다. 인천공항에 한 번도 못 가봤다고. 그리고 고모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혜정이가 바쁘지 않으면 엄마 데리고 여행 다닐 텐데, 혜정이가 바빠서 그렇다고. 엄마가 원하는 건 해외여행이었다. 하나를 알았다. 아빠는 요즘 당구를 좋아한다. 나랑 친 당구는 재미없으셨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구비 지원? 아빤 뭘 하고 싶으냐고 물을 때 늘 도리도리를 하는 분이다. 그런데 어제는 예상보다 나들이를 좋아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님이 원하는 걸 해 드리는 거다. 그게 무엇이든간에.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드리기 위해서. 부모님이 병원 신세 안 지고 건강한 여생을 보내게 하기 위해선 자식의 발품이 필요하다. 우린 좀 더 살 날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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