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대화에서 나를 들여다보다.
"왜 그렇게 자기가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해~."
"어? 뭐라고?"
"장모님이 알아서 하시면 될 거를 왜 일일이 자기가 말하고 있냐고."
"내가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나가자."
어제 오후의 하늘은 정말 예뻤다. 어느 곳을 바라보나 희고 흰 구름이 한가득이었다. 흰 구름을 더 희게 만들어주려고 파란 하늘은 기꺼이 배경이 되어 주고, 그 쨍한 하늘을 무대 삼아 흰 구름은 저마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밖은 쨍하고 더웠지만 집안은 시원하고 살랑살랑 바람까지 솔솔 불어와 누워서 잠자기 딱 좋은 날씨였다. 낮잠을 잘까? 아니야. 낮잠 자다가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아까워서 안 돼. 얼른 나가서 날씨를 만끽하자. 동남아 날씨여도 좋아. 지금 이 강렬한 햇볕과 나지막한 바람, 저 하늘 구름 어쩜 좋아. 너무 좋아.
밤에 책을 읽으려면, 낮에 조금이라도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두어야 했다. 전날 밤에 잠을 부족하게 잔 탓에 몸이 찌뿌둥했고 교회에 가서 막판에 눈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온몸이 더 나른해진 참이었다. 아, 자고 싶긴 한데, 나가고도 싶고, 엄마한테 전화도 해야 돼. 지금 안 하면 또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내 마음 무거워져. 안 돼.
뭐부터 해야 할까. 밖에 나가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수다 떠는 게 제일이었다. 내 마음이 시키는 건 외출이었다. 옷도 입었겠다, 눈물에 얼룩진 얼굴, 화장도 고쳤겠다, 그냥 신발 한 켤레만 신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내 발목을 잡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 안에서 나를 통제하는 내 안의 다른 목소리였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니. 빨리 전화 먼저 하고 그러고 나서 나가도 안 늦어.
나보다 훨씬 느긋한 성격인 내 남편은 이미 산책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부할 게 있지만, 이따 와서 해도 된다고 늘 그렇듯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착한 남편이었다. 내 안의 다른 목소리를 거절하지 못한 나는 착한 남편에게 엄마한테 전화만 한 통 하고 나가겠다고 했다. 남편은 시큰둥하게 그러라고 했다.
엥, 엄마가 전화를 안 받네? 앗싸, 그냥 나갈까? 아니면 전화를 다시 해야 되나? 아니야, 엄마는 지금 오빠랑 가구점에 가서 소파랑 침대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몰라. 전화를 안 받는 이유가 있겠지. 그냥 통화 한 셈 치고 30분 정도만 눈 붙이고 나가자. 나 지금 너무 피곤해. 10분만 눈 감고 있어도 간접 수면 효과가 있는 거잖아. 내 안의 목소리는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몸에 들어갔던 힘이 쫘악 빠졌다. 한낮에 이처럼 편안할 수 있을까, 내 몸이 솜털같이 가벼웠다. 창문을 타고 솔바람이 난입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 바람결에 스르륵 몽롱해졌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