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엄마, 우리 동네 옆에 택지 개발이 시작된대. 총 6900세대에 초등학교, 중학교도 들어서고, 대학교도 생길 수도 있대.”
내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그래서. 왜, 뭐, 거길 사겠다고?”
엄마의 딱딱한 목소리, 그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걱정이 깔렸다.
나는 다급히 덧붙였다.
“아니~ 아직 결정한 건 아니고 그냥 알아보겠다는 거야. 엄마가 청약통장 해지 고민했잖아. 엄마도 그거 써보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 모델하우스 오픈하면 한 번 구경은 가 봐. 근데 엄청 비싸겠지. 나는 돈도 없는데.”
엄마랑 같이 모델하우스를 구경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최근에 사직하시고 남아도는 게 여유 시간이니, 기분 전환도 할 겸 모시고 와서 구경도 하고 밥도 같이 사 먹고 해야지. 벌써 흐뭇했다. 그런데 곧 이어진 한 마디. 내 속을 긁었다.
“근데, 넌 뭘 하든지 간에 앞뒤를 안 보고 그냥 덤비잖아. 불안해. 불안. 오빠는 뭘 해도 하나하나 차분하고 꼼꼼하게 다 알아보고 해서 걱정이 없는데 넌..."
흐뭇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고 구경도 하고 의논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와의 대화 끝에는 답답함이나 옥죄임 같은 결과물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내 편에선 기분 좋게 시작하더라도 대화는 자꾸 갈림길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엄마의 말들은 마치 내 존재에 대한 평가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을 들으면 불안해졌고, 나는 자신 있었지만 엄마의 말을 들으면 있던 자신감도 어디론가 도망질을 쳤다.
"니가 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냐."
"헛똑똑이지. 헛똑똑이."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남편 복 없는 사람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작아지고 더 작아졌다.
'난 잘하지 못하는구나. 좀 더 잘 해내야 하는데. 더 성숙해져야 돼. 엄마 마음에 들려면 난 훨씬 더 노력해야 돼.'
엄마의 기준이 내 기준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서툰 아이, 부족한 아이였다. 집 밖에선 그렇지 않았지만 집에선 그랬다.
내 그릇은 그리 작지는 않았다. 나는 사회에 나오면서 누구의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내 힘으로 인생을 일구었다. 어려움이 있어도 혼자 해결했다. 부지런히, 끈기 있게 살았다. 내 그릇은 집에선 간장종지였지만, 밖에선 대접그릇 라면그릇은 되었다. 난 내 한계의 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성장했다.
나를 힘들게 한 건 나의 한계라기보다는 엄마의 부정적인 말들이었다. 머릿속에 박혀 있다가 이따금씩 건드리면 툭 불거져 나오는 말들.
“평수 작은 집 되면 엄마 줘.”
5년 전, 청약 결과를 기다리던 날 엄마가 나한테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몰랐다.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진심은 아니겠지 했다가 나중엔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엄마의 남은 여생 소원이 깨끗한 새 집에서 살아보는 거였고, 그 청약 버튼이 엄마에겐 절실한 기회였다는 걸 아니까. 엄마의 지금은, 오래된 집을 거금을 들여 리모델링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엄마는 솔직하고, 순수하고, 그래서 때로는 잔인할 만큼 직선적인 사람이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의 모든 빛깔을 다 보여줘야 마음이 편한 사람. 물론 나도 그런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힘들었다. 힘들어서 바꾸려고 노력했고, 인식하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많은 부분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그런 엄마를 탓하지 않는다. 엄마의 본질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엄마의 불안에 내가 매번 휘둘리지 않도록 거리를 두려 할 뿐이다. 그 심리적 거리두기는 냉정한 단절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엄마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 여행을 떠난다.
불안과 기대, 사랑과 상처가 엉켜 있는 그 오래된 길을 따라,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자, 나 자신을 다시 껴안기 위한 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