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글은 대체 뭘까. 직무에 따라 물론 글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겐 글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렵거나, 귀찮거나, 반갑거나, 나와는 무슨 상관?이라는 몇 가지의 상황들로 정리될 수 있을 거 같다. 사실 글을 못 써도 직장생활이 딱히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글을 잘 쓰면 직장생활이 조금 더 의미 있어진다. 하다못해 기안을 올리는데도 업무 목적에 대해 좀 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 수 있고 회의록, 보고서, 기획서 등 사내 문서에 있어 보다 짜임새 있고, 크리에이티브하게 플래닝, 메이킹할 수 있다. 꼰대 과장님 선에서 다 커트되는데요? 하면 물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말이다.
어떤 글이든 스토리텔링으로, 스토리두잉으로.
굳이 꼭 그 보고서가 줄을 타듯 위로 술술 풀려서 패스되는 게 다 능사는 아니다. 그만큼 찾아보고, 알아보고, 고민하고, 기획, 라이팅 해서 만든 보고서라면 그만큼 한 뼘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니까. 자신의 아카이빙에 그대로 저장해, 언젠가 다른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히든 자료로 비축해 두면 된다. 회사의 글은 스토리텔링으로, 그 스토리를 퇴근 후, 주말엔 자신을 위해 스토리두잉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직장생활의 좋은 점들은 직장에서 머물게 하지 말고 그 부분을 뚝 떼어내 생활 속으로 연장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니까. 직장인들의 또 하나의 부캐 속으로.
지금도 어색한 시인이라는 이름
결론적으로 처음 출간한 시집은 망했다. 그것도 아주 폭망. 대학시절부터 군 시절,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광고회사 시절의 시들을 엮어 만들어 펴낸 ‘모르는 사람이 결혼하는 예식장에서’는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책으로 먼지 가득 출판사 창고에 처박혔다. 그것도 하필 출간한 날이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던 날. 지금 열어봐도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한 편 한 편 촌스럽기 짝이 없는 단상들로 꽉 채운 시집이다. 그렇게 첫 책은 망했지만 글 쓰는 직업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2002년에 펴 낸 폭망한 시집의 실체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병이던 군 시절, 국방부와 언론사에서 주최했던 문예대상 시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국방부에서 시상식이 진행되었고 당시 생각보다 큰 상금이었다. 그것도 한참 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중에 외출을 허가받아 잠시 다녀왔다. ‘예, 저 지금 여기 있습니다’라는 제목이었고, 길디 긴 장편 시였다. 그 후로도 군인이었던 당시, 글로 몇 차례 상을 받게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더 치열하게 글을 썼던 덕이다.
카피라이터, 그리고 네이미스트
광고홍보학과를 갔던 건 순전히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거 말고는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고, 무조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네이밍까지 해야 하는 네이미스트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돌아서면 일, 눈을 뜨면 일, 하늘 잠시 보고 오면 일, 일에 숨 막혔지만 카피를 쓸 수 있어, 광고를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의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했다. 기업 홍보팀에서의 이름은 생각보다 많다. 홍보도, 광고도, 언론도, 사보도 심지어 사회공헌까지 국내외 60개 계열사의 홍보를 팀장인 나와 1명의 팀원이 담당하다 보니 매일이 전쟁터다. 여전히 나는 기업에서도 카피라이터, 네이미스트라는 나만의 프라이드로 업무에 임한다. 퇴근 후, 주말의 부캐가 아니라 부캐를 업무로 끌어들여 업무력을 더한다. 부캐와 본캐의 시너지, 역할을 넘나드는 행복한 순간순간이다.
기고를 통한 칼럼니스트
간간히 칼럼 기고 요청이 온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기고의 컨텐츠가 맞을 때 진행하게 되는데 생각을 담은 기고는 생각보다 재밌다. 최근 신발 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자영업자에게 힘이 되는 칼럼 두 가지를 기고했는데 주말을 활용해 글을 써 기고하고, 그 글이 매체를 통해 공유되는 과정 자체가 카피라이터 시절만큼이나 짜릿하다. 기고의 기회가 있다면 주저 말고 꼭 진행해 보기를 권한다. 쓰고, 또 쓰고, 다듬고, 또 다듬어 생각을 전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글 쓰는 직장인의 가장 선순환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인드프리 인터뷰
작가라는 부캐를 가진 수많은 직장인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송희구 과장은 12년째 LS ELECTRIC에서 자동화 사업부 고압 인버터 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직장인이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쓰기 시작해서 7시 반에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글이 한 카페에 소개되면서 일파만파 관심을 받게 되고, 출간까지 하게 된 케이스다. 비단 송과장 뿐 아니라 부동산, 경제, 인문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직장인 작가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특히 브런치를 통한 직장인 작가들의 입문도 상당하다. 어렵게만 느낄 게 아니라 멀다고만 미룰 게 아니라 오늘 당장, 바로 시작해 볼 수 있는 직장인의 부캐 도전이다.
부산 대표잡지 '다시부산' 기고
인생의 고비고비, 습작의 기억
자율학습으로 저녁 내내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던 고등학교 시절 노트엔 한 편, 두 편 시가 쌓였다. 대학에 가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 그리고 군대에 가서 습작 노트는 노트채로 쌓여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름 시를 골라 나만의 작은 시집을 만들었다. 돌아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런 수준의 묶음 말이다. 일기도 잘 쓰지 않는데 습작이라니. 오히려 일기를 습작처럼 써 내려갔던 그런 시기였다. 하루에 한 줄, 한 달에 한 편, 이런 자신만의 약속이 필요하다. 만족스럽지 못한 글이라도 그 미션을 꾸준히 수행하며 일정 기간을 지나다 보면 한 뼘 더 자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게다. 오늘, 지금 바로, 수첩을 꺼내 한 줄을, 키보드에 손을 올려 한 줄을, 나의 이야기로 채워보자. 그리고 한 달 후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 인생 이야기를 담고, 들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