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회장님이 평생 일군 정원이 있다. 부산 선동에 위치한 화승원. 이곳의 화보집을 만들면서 회장님의 고등학교 은사가 이어령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장님께서 화보집에 들어갈 글을 부탁하게 되셨고, 그 길에 함께 동행하며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사실 글쓰기 흉내에 가까운 나로선 이어령 선생님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이셨다. 이 시대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분이셨으니 회장님께 너무나 고마운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을 통틀어 선생님의 책이란 책은 다 사서 읽고 컬렉트를 하던 나였기에.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화보집 제작을 통해 선생님의 신세계를 만나 뵐 수 있었다.
서울 출장 길에 다시 뵙게 되었던 이어령 선생님
뜻밖에 받게 된 에디팅의 기회
선생님은 회사의 사보에 대해 조언도 해주시고, 발행이 되면 코멘트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히 직접 전화를 주셨다. 당시 선생님은 투병 중이셔서 글쓰기가 힘드신 상황이었다. 책을 내기로 했는데 일정이 많이 다급한 상황이라 책 전체에 대한 에디팅을 부탁한다고. 잘못 들은 건가. 다른 분께 전화를 하신 건 아닌가. 했지만 맞았다. 사보의 글을 봐오셨고, 손을 봐줬으면 한다셨다. 그날이 금요일 오후였고, 토, 일요일을 빼면 출근으로 손 볼 시간이 없어 주말 전부를 원고 에디팅에 쏟았다. 선생님의 글을 짧은 시간에 에디팅 한다는 건 선생님의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닐 만큼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 출판사에서 많은 노력 끝에 책이 나왔고, 그 책을 볼 때마다 더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뿐이다.
고마운 마음을 꼭 돌려주어야 한다는 선생님
수고료를 주지 못했다고 선생님은 두고두고 미안해하셨다. 선생님의 글을 미리 볼 수 있고, 한 줄이라도 에디팅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누차 말씀을 드렸지만 작년 명절, 선생님은 한우를 보내주셨다. 어떻게 고마움을 말씀드려야 할까, 난감한 상황이었고, 꼭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당시 선생님은 병세가 조금씩 깊어지고 계실 때였고 매체에서 뵙는 사진마다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가셨다. 회사 회장님께서 선생님께 진심을 담은 마음을 보내주시고, 늘 안부를 여쭙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작은 용기를 얻었다. 선생님께 체크무늬 남방과 신발을 하나 용기 내어 보내드렸다. 받으시고선 바로 전화를 주셨다. 마음의 빚을 갚느라 작은 걸 보내줬는데 또 마음을 보냈냐고. 안 그래도 살이 빠져 맞는 옷이 없었는데 딱 맞는 옷을 보냈냐고. 고맙게 잘 입겠다고. 받는데 익숙하지 않으신 선생님께 한 소리 들을까 봐 걱정했지만 따뜻한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나 고마운 밤이었다. 나와 같은 남방을 입으실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기쁜 밤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내게 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와도 같은 분이셨다.
마음을 투영해 보내주신 책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고마운 책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선생님은 회장님께 아프신 중에도 정성을 다해 글과 사인을 해 보내주셨다. 회장님의 진심을 누구보다 아셨고, 두 분은 사제지간을 뛰어넘는 따스함을 함께 하셨다. 나 또한 어부지리로 신간에 글과 사인을 보내주셨고, 책을 받은 날은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을 한 장 한 장 아로새기며 읽었다. 돌아가시기 전 신간이었던 선생님의 메멘토 모리(열림원)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적어주셔서 울컥 울어버렸다.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건가.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런 순간이었다.
마지막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인사
마지막 인사, 전에 선생님께서 연락을 따로 주셨다. 유고집으로 출간해야 할 한 책의 에디팅을 부탁하셨다. 직장인인 내게 주말에 서울로 와서 작업을 하며, 도와줬으면 한다셨다.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내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그 무렵 선생님은 회장님의 안부를 물으시며 다시 전화를 주셨다. 병세가 너무 깊어졌고, 이제는 글을 쓸 수 없고 구술로 기록을 남기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시다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된다고, 건강하셔야 한다고,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고, 선생님을 너무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이런 말들은 꺼내지도 못하고 고맙다고, 회장님께 안부를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선생님은 소천하셨다. 그 모습도, 그 목소리도 다시 뵐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졌다. 회장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지경이셨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때 서울로 찾아뵙지도 못했다. 찾아뵙지 못한 마음이 더 아린 그런 날들이었다.
마지막 그 너머까지 보내주신 마음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영인문학관에서 선생님의 새로운 신간을 보내주셨다.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열림원), 선생님의 유고 시집이었다. 아직도 여물지 않은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가 또 훅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은 정말,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우리와의 동행을 기뻐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걱정하시는구나. TV 다큐에서 마주한 선생님의 장면을 마주하며 그만 또 울어버렸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책 중에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책이 기억난다. 암투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따님인 이민아 목사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책이었다. 한 챕터를 읽고 너무 펑펑 울어서 다음 페이지를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직도 책장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보내주신 유고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4장의 시를 읽으며 또다시 펑펑 울게 되었다. 역시 따님에게 보내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시였다.
멘토를 만들거나, 멘토가 되기를
직장생활 중에 어렵거나 기쁘거나 그 자리에 늘 함께하는 멘토가 있다면 참 행복한 일이다. 그 멘토는 꼭 직장 내의 선배가 아니어도 좋다. 업무적이거나, 업무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분이라면, 그분을 멘토로 삼고 함께 길을 걸어가면 된다. 연차가 많이 쌓였다면 이젠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도 좋다. 멘토였던 분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다.
회장님 덕분에 이어령 선생님이라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 그 고마운 마음을 이젠 직장 내에 많은 친구들과 함께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가고 싶다. 지금 직장 안에 서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어께에 기댈 멘토, 멘티가 있는가? 있다면 더 가깝게, 없다면 지금 당장 인생을 함께 걸어 갈 멘토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멘토가 되자. 직장인의 멘토, 멘티는 달라도 좀 남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