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살이를 시작하고 종종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알아채게 된다. 그중 하나가 더 이상 데크에서 제비 똥이 발견되지 않을 때이다. 이는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신호이다.
작년에 왔던 제비가 뷰맛집이라고 소문이라도 낸 건지 올해는 더 많은 녀석들이 몰려왔다. 때문에 나는 많게는 하루 다섯 번이나 물청소를 해야 했다. 그래도 매번 이쁘다, 이쁘다 하며 반겨줬는데, 이 녀석들!!
“가면서 뭐 잊은 거 없니? 예를 들면, 박 씨라든가, 박 씨라든가…“
아쉽지만 올해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박 씨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박 씨 대신 소식이 날아왔다. 급작스럽게 남편의 이직이 결정된 것이다. 이것은 흥부의 박 씨일까? 놀부의 박 씨일까? 심어 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고 어느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는 시간이 흐르고 박을 갈라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한 선택이 최고였다고 믿으며 오늘 내 앞에 놓인 박 씨를 심고 정성껏 가꾸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이미 결정된 일의 ‘실(失)’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박이 열릴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러니까 여보, 일단 기뻐하자. 그리고 잘 키워보자. 사실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 당신의 행복이다. 그저 당신이 좀 더 즐거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면 굳이 갈라보지 않아도 나에겐 대박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