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Dec 27. 2021

브런치가 내게 준 직함, 작가

작가의 탄생

글을 쓰는, 책을 쓰는 교사. 어린 시절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옆반 담임 선생님을 보면서 두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나 싶다. 교사가 되면 '현모양처'라는 나의 꿈(늘 우리 엄마는 내 꿈을 부끄러워했지만)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가정을 따뜻하게 돌보면서도 제자들을 훌륭하게 길러내는 삶. 그리고 남을 울리고 웃기는 글까지도 뚝딱 잘 써내는 그런 삶. 애당초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막상 마흔한 살이 된 지금 현실의 나는 내 가정만을 근근이 돌보고 있다. 그마저도 따뜻하게 해내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가족 소개 수업이 있다고 인쇄물을 가져왔다. 동생, 엄마, 고모부, 삼촌을 쓰고 싶다고 했다. 고모부는 골프를 잘하고, 곰팀을 좋아하고, 삼촌은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적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뭘 잘하지?라고 물으니 ''요리? 청소? 빨래?''라고 대답했다. 아... 난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구나. 나는 전업주부이니 사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 맞다. 그럼에도 그 일들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그걸 내 특기로, 자랑거리로 삼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슬프기도 하고 묘한 마음에 샐쭉해져서 "엄마 빼!"라고 해버렸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잘했던가. 지금은 안 보는(혹은 못 보는?) 친구가 "너의 편지는 늘 흐름이 있어! 술술 잘 읽혀!"라고 이야기했던 기억. 그리고 종종 들었던 글에 대한 칭찬(사실 돌아보면 어지간한 아이들은 대체로 들었을 법한)으로 인해 그나마 잘하는 것이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끄적이기로 했다. 그런 내게 브런치가 '작가'라는 직함을 선물해주었다. 멍석을 깔아주었으니 한번 굴러볼까?


교사로 살던 10년의 시간을 추억하며 잊지 못하고, 어쩐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나라도 위로하려고 이렇게 시작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