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1. 

때는 2004년 여름이었다. 1년여를 만나오던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았다. 우리는 단순히 만나고 있던 사이는 넘어서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서로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제안이 이미 오고 간 사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헤어지자는 한 마디로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기에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오빠랑은 아니야."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이별의 전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잘 만나고 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1년 넘게 해외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이미 말 다 한 거 아닌가? 나만 몰랐고 나만 순진했다. 이별하기 3개월 전 그녀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며 떠났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연락이 끊겼다. 두어 달이 지난 후 말도 안 되게 그녀가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만나러 달려갔지만 나에게 들려온 건 당연하면서도 냉정한 대답이었다. 이 이별이 나에게는 큰 변화가 되었다. 한동안의 방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걱정을 끼친 건 가족이었다. 나와 그녀의 사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던 엄마는 당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었음에도 자식이 아파하는 것을 보며 병이 날 정도로 함께 아파하셨다. 부모님은 그랬다. 나에게 있어 엄마란 존재는 언제나 무섭고 엄하신 분이었고, 당신의 뜻대로 나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 나와 그녀의 사이를 뜯어말릴 때는 도무지 이해도 되지 않고 밉기만 하던 어머니였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가장 아파하는 것 역시 어머니였다.     

아파하는 나에게 변화의 제안을 한 사람 또한 가족이었다. 바로, 두 살 위 누나. 누나는 집안에서 뭐든지 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집안에서는 누나의 말만 잘 들으면 최소한 엄마한테 혼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특히나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엄마는 먼저 대학에 간 누나에게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4년제 대학에 간 것도 말하자면 전부 누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별로 아파하고 있던 가을학기 시작 즈음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누나가 제안을 했다.

"요즘 어학연수 1년은 기본이야.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잘 이야기해 드릴 테니까 너도 어학연수 한번 다녀와."

사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평소 (수학보다는) 영어를 좋아했고, 사실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사를 할 정도의 실력은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어학연수가 나에게 절실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돈이 어디 있어? 누나 미국 갔다 온다고 돈 많이 썼잖아."

"나는 미국으로 가서 돈이 많이 들었는데, 영국은 돈 많이 안 들어. 내 친구가 지금 영국에 가 있거든, 근데 갈 때 100만 원밖에 안 가지고 갔다더라."

"100만 원? 100만 원 가지고 돼?"

"미국은 어학연수 가면 일을 할 수 없거든. 근데 영국은 학생도 일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100만 원 가지고 가서도 살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누나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흘렸다. 사실 아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동이 있지 않았다고 해서 법을 어길 수는 없었다. (누나의 말은 법이었기 때문이다. 가라면 가는 거였다) 일단 누나가 말한 친구라는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낸 메일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일반적인 것이었다. '어학연수를 저렴하게 다녀오고 싶고, 학교도 중간 정도의 평범한 학교였으면 좋겠다. 외국인들 많이 사귀고 싶으니 한국인은 없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 등등 처음 어학연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흔한 질문들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고, 진짜로 가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누나도 다녀왔으니까, 누나가 다녀오라고 하니까 한번 물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며칠이 지나 그분에게서 답장이 왔다. 대답은 솔직히 다소 성의 없어 보였다. 잠시 짬이 나는 동안 일을 해치운 것처럼 아주 간결하고 무성의한 답변이었다.

"먼저 어디서 공부할지 결정하시고요, 그다음엔 돈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머무를 건지도 생각하시고요. 지금 수업이 있어 가봐야 하니 또 궁금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뜬구름 같은 답변이 돌아오니 오히려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런던으로 갈 생각인데요, 저렴한 학교 하나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렴한 학교는 얼마나 하는지……."

두 번째 회신 메일에서 내 안일한 마음가짐과 생각이 모두 그에게 간파당했다. 그는 아주 자세한 정보를 보내 주면서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위험함과 안일함을 냉철하게 비판하였다.     

"런던에 학교는 천차만별입니다. 저도 리즈(Leeds)에 있는지라 제가 추천해 드리기는 어렵겠네요. 한 가지 비밀을 말씀드리자면, 6개월 정도 어학연수 다녀온다고 영어가 눈부시게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저의 예를 들어볼까요? 한국에서 나름 영어 좀 하는 편에 속했습니다. 외국인 친구도 만들고 영어학원 강사도 하곤 했습니다. 어학연수를 와서 시간이 조금 지나자 확실히 실력이 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도 영어는 많이 부족하고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주변에 1년 가까이 공부한 친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고요. 주변에서 다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다녀오고 자연스럽게 영어가 느는 것처럼 보이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할 겁니다. 하지만 1년 다녀온 친구들, 물론 토익 성적은 늘었겠지만 영어 실력은 글쎄요. 제 생각에 어학연수 1년이 영어 실력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철저한 준비 없이 덤비는 어학연수는 이력서에 한 줄 적기 위해 1년 동안 시간만 죽이는 게 아닌가 싶네요. 큰 의지를 가지고 덤벼든 사람들도 6개월 1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죠. 사실 주위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와서 놀다가 가는 사람 부지기수로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덤비면 시간 낭비일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게 나중에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네요.”     

상당히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이야기였다. 순간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던 어린아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길에 오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 그렇구나. 안 되겠네.' 하고 나가떨어지면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비록 시작의 결심이 확고하거나 굳은 의지가 있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근성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왠지 모를 도전정신과 오기가 생겨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자마자 유학원으로 뛰어가기로 했다. 진지하게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도전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다.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마음속에서 호기심과 설렘이 용솟음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사실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만으로 미래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리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력서에 한 줄 적어 넣을 좋은 스펙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고, 평소에 좋아하던 영어를 좀 더 확실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니 나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런던이라니…… 금발의 미녀들과 함께 멋진 도시를 누빌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잠이 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아마 이날이 내 마음속에서 공식적으로 어학연수를 결심한 날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학교 앞에 있던 유학원을 찾았다. 유학원 직원이었던 여자분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마 이분이 아니었으면 나의 글로벌 경험은 처음부터 시작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 어학연수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가벼운 질문이 오고 갔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과를 졸업하신 선배님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호구조사를 마치고 나니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여러 곳의 학교를 보여주었고, 학교별 특징과 가격도 알려주었다. 사실 학교를 보여주긴 하였지만, 가격 외에 내가 변별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나는 몇 부의 브로셔와 어학연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작은 한 걸음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차근차근 받아온 것들을 살펴보았다. 자료에는 각 학교(어학원을 말한다)의 위치와 편의시설, 학생 수 등의 내용이 영어로 설명되어 있었고, 저마다 왜 이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파하려는 내용의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지에 가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적혀있는 내용들 만으로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때 느낀 거지만 대한민국 인터넷 참 편리하게 잘 되어있다. 해당 학교 이름을 검색하기만 하면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많은 정보가 신빙성이 떨어진다거나 내가 알고 싶은 것과 상관이 없는 내용인 적도 많았지만, 의지가 있으면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그들의 연락처(주로 이메일이었지만)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더 편리해졌을 것이다. 많은 포털 사이트에서 서로 경쟁하듯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고, 수없이 많은 블로거의 글을 통해서 실제 경험 못지않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문제는 의지다. '내가 얼마나 간절한가?'의 여부에 따라 그 많은 정보는 단순한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숨은 진주를 찾은 것처럼 값비싼 꿀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정보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거든 그것부터 알아내야 한다. IT 강국의 위용만큼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내용이든 검색어만 잘 선택하면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사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것이다. 때문에 자료조사에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은 곧 당신의 투자를 의미한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내가 찾는 정보가 없다고, 혹은 찾아도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고 포기해 버린다면 당신이 원하는 정보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최소한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라도 찾아내야 한다. 검색을 통해서 원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면 백이면 백 정보는 나오게 되어 있다. 의지를 가지고 파고들면 다양한 소스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져온 많은 학교의 홍보물은 단순히 나에게 정보의 역할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던 내용의 조각조각을 모아 나만의 자료를 만들어갔다. 각 학교별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었고, 그중 몇 명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인터넷 메신저로 쪽지를 보냈다. 나 또한 후에 유학을 하며 이러한 질문과 쪽지를 많이 받았고, 나름대로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주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문의를 구하는 것이야 말로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모를 정보들을 조각모음 하는 것보다 값진 일이다.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은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시간이 그리 많이 투자되지도 않는다. 당신이 그 일을 망설이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1번 귀찮거나 2번 소용없어 보이거나 3번 불편하거나. 이 세 가지 이유로 당신은 일생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그렇게 얻은 정보들을 자료화했다. 학교 리스트를 만들고 각 학교의 장단점을 적어봤다. 비싼 학교일수록 장점을 많이 적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정보를 노출시켰으니 당연하다.), 그만큼 실제 경험자를 찾기는 어려웠다. 실제 경험자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던 곳은 무언가 더 현실적이고 신뢰가 가는 곳이 되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예산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학교별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갈 수 있는 학교와 갈 수 없는 학교가 구별되었다. 놀랍도록 싼 곳도 있었고, 더 놀랄 만큼 비싼 곳도 있었다. 영국은 그런 곳이었다. 흔히 모두들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가 '집이 잘 살았구나'라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아주 넉넉한 집안의 자재부터 나처럼 단돈 몇 푼 만을 들고 유학을 결심 한 사람들까지...... 런던이라는 도시가 명성 그대로 International City인 만큼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기에 더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야말로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 다른 곳, 마음만 먹으면 아주 부유하게도 혹은 아주 혹독할 만큼 가난하게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그렇다고 정말 여유마저 빼앗기지는 않는 곳, 그곳이 바로 런던이었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학교를 서로 비교하면서 가고 싶은 학교가 추려졌다. 한 곳은, 런던은 아니었고 가격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기숙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다양한 활동들이 보장되며 사진상으로도 아주 번듯한 곳이었다. 마치 궁궐을 연상케 하는 학교 이미지와 해리포터에서나 볼 것 같은 학생들의 옷차림으로 이곳이 아주 고급스럽고 전통이 있는 학교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금액은 일반적인 학교의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또 하나의 학교는 자유로운 학교의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아주 여러 장으로 눈속임을 하기는 했지만 한눈에 봐도 그리 크지 않은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에 담겨 있던 학생들 역시 아주 자유로운 모습이었고, 가격 또한 내가 도전하기에 많은 부담이 되지는 않아 보였다.     

두 학교의 장단점을 나열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어느 정도 결정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됐건 나의 현재 수준은 집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엄마부터 설득해 보기로 했다. 나의 어학연수 건과 관련해서는 누나가 실권자이니 누나부터 공략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만, 한 명이라도 내 편을 만들고 누나를 공략하면 설득력이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를 불러 앉히고는 가고 싶은 학교에 대해 천천히 설명했다.     

"엄마, 이 학교는 이런 프로그램이고, 이 정도 기간에 이런 곳에서 살고 이런 사람들이 주로 있고 부가 활동으로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데요."

금액을 제외한 모든 좋은 내용을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학교에는 부설 체육시설과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바닷가 인근에 있어 윈드서핑과 수영도 즐길 수 있는 아주 호화로운 학교였다. 하지만 이러한 부대시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를 설득하면서 호화로운 조건이라니... 설득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얼만데?"

단칼에 논점을 뒤집으셨다. 엄마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내가 여유롭게 공부를 하느냐가 아니었다. 딸을 미국으로 어학연수 보내고 나서 얻은 경험으로 엄마는 이미 그러한 부수적인 조건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쯤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6개월에 천만 원 조금 넘어요."

"그래? 너무 비싼데... 누나한테 물어볼게."     

당시 1년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6개월에 학비로만 천만 원이면 상당히 비싼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국 물가를 고려하면 그리 비싼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학교 이야기로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중 누나가 집으로 들어왔고, 누나와 함께 토의가 시작되었다.

"얼마? 2천만 원? 야! 나도 1년 동안 2천만 원 안 쓰고 왔는데 네가 지금 학비로만 2천만 원을 쓰겠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 나조차도 그다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1년 학비로만 2천만 원이라니, 대학원을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금이 나라는 놈에게 필요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 학교의 좋은 점을 더 집요하게 어필했다.

"생각해 봐. 내가 그냥 아무 학교나 가서 아무렇게나 배우고 아무렇게나 돌아와서 아무 효과가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안 그래? 이왕 가는 거 제대로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효과를 봐야 좋은 거 아니겠어? 그리고 영국으로 가는데 물가 정도는 고려해 줘야지! 미국이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얼핏 내 주장에 넘어올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한 발짝씩 물러나 실제로 내가 주장하던 학교가 선택되지는 않았다. 이유인즉슨 나에게는 또 다른 노림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주장하던 학교는 애초에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아니었다. 사실 기숙 학원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위치적으로도 상당히 외진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해 심지어 매우 지루하다는 평이 더러 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Fun이 인생의 8할을 차지하는 나에게 있어 이 학교는 100점 만점에 50점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이 학교에 가도록 도와달라고 주장한 것은 상대적으로 다음 학교가 훨씬 더 좋아 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사실 첫 번째 학교가 아주 비싸긴 했지만, 정말 내가 가고자 했던 학교 역시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부터 가고 싶은 학교의 가격을 이야기했다면 아마 내가 선택해야 할 학교는 최저 금액 수준이었을 것이다. 금액이 저렴한 학교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마지노선을 정해둔 나였기에 나름대로 목적을 두고 설득을 진행했다. 내 이 사소한 전략은 그대로 적중하였고, 다음 학교를 이야기하면서는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학교 또한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엄마와 누나는 천사와 같이 착한 가격에 프로그램마저 탄탄한 곳으로 이 학교를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두 번째 학교가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과정 중에 시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Speaking 중심의 수업과 시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조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이전 01화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