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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14.

한인회에서의 8개월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한인회 일은 어렵지 않고 불편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천년만년 할 일도 아니었다. 2년 임기인 한인회장도 곧 바뀔 것이니 말이다. 한인회장이 바뀌어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근무는 계속할 수는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런던에 온 이유가 이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비자를 해결해줄 수 있을 만한 기업으로 취업하는 것이 목표였으니 말이다.     

S물산 주재원 출신의 한인회장은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한인회장이라는 직함 덕분에 대한민국 대기업 주재원들과 수시로 접촉할 수 있었다. 인규형은 한인회장의 추천서로 S전자 영국법인에 입사 지원했다. 이전에 한국의 S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 법인 입사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원한 후로 거의 6개월이 지나서야 입사가 가능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인규형은 현지 법인에 취업해 아직도 런던에 머물고 있으니, 어떻게 보더라도 성공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인규형이 현지법인 입사에 성공하게 되자 나 역시 기대가 생겼다. 조심스럽게 한인회장에게 현지 한국 기업의 법인장들에게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지원을 도와주겠노라 약속했다. 울산에 살던 당시 아버지가 H사에서 정년을 맞이하신 만큼 H사가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회사였다. 물론 H사가 아니더라도 국내 대기업에 현지 채용이 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한인회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H사와 S사를 포함해 한국기업 3곳에 각각 추천서를 보냈다.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규형의 케이스처럼 나에게도 불가능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규형의 조언을 받아 이력서를 적고 추천서도 직접 작성했다. 한인회장은 내가 작성한 추천서를 첨삭한 후 인장을 찍고 사인해 주었다. 후에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니, 이참에 대학원 추천서도 함께 받기로 했다.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교 추천서 1부와 학교 외 추천서 1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 채용이 불발되면 미련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리라는 마음의 결정이 있었다.     

각 주재원에게 추천서를 전달한 지 한 달가량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인회장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고, 한인회장은 전화를 넣어 주재원들에게 진행 여부를 물어봐 주었다. 저마다 검토해보겠노라 답한 후 전화를 끊었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속속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보내주신 추천서는 잘 검토해보았습니다. 해당 인력은 우리 회사에 너무도 필요한 인재이긴 하나 현재로서는 채용의 계획이 없어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해당 인력의 역량이면 한국 본사에서도 충분히 채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므로 한국 본사의 채용에 응모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확한 표현은 달랐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현지 채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 채용을 하려면 일단 비자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학생비자를 가지고 있는 나를 그들이 무얼 보고 몇천만 원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하려 하겠는가? 그 때문에 현지 채용은 대부분 현지 교민들, 주로 영주권자나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더구나 나는 이곳에서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겨우 어학연수만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던 인규형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 한국 본사의 채용에도 충분히 합격하리라고 이야기한 것도 그 말을 해석하면 곧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면 한국 본사에 문의하시오.'와 같은 뜻이다. 현지 채용을 하려면 한국 본사들 통해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학교나 학원이라면 단순히 한두 장의 추천서만으로도 진학이 가능할 일이지만, 직장은 입사와 동시에 비용이 들고 채용한 인력이 그 비용을 충당할 만큼의 퍼포먼스를 내야 하는 곳이다. 내가 아무리 자신 있다고 한들(실제로 자신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알 방법은 없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내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다. 해당 회사에 자리가 없었고, 한인회장의 입김이 효과적이지 못했다. 한마디로 운이 없었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실패했던 일들을 돌아보면 항상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바로 '간절함'이었다. 간절하게 현지 채용을 희망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원 진학이라는 탈출구도 준비해 놓았다. 간절함의 정도가 충분치 않았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사실 이렇다 할 성공을 찾기가 더 힘들다. 남들이 보기엔 울산 촌놈이 대기업에 입사해 결혼하고 애도 낳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으니 성공한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나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회사에서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내지도 못했고, 빠른 승진으로 높은 연봉을 달성하지도 못했다.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해외 주재원은 아직 근처에도 못 미쳤다. 상황의 한계, 혹은 능력의 한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바로 간절함이었다.     

간절함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간절함을 스스로 극대화한 사람이야말로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간절함 만으로 수학 100점을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간절함 만으로 연봉 1억을 벌 수는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시기와 우연이 필요한 일도 있다. 간절함 만으로 목표 달성을 논한다면 그건 정말 도둑놈 심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절함 그 자체만이 아니라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이다. 진심으로 간절할 때 자신의 능력이 100%, 아니 그 이상 발휘된다. '나는 간절히 원했는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기억해야 한다. 당신만큼의 간절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간절함이 절실함으로 바뀔 때 당신은 그 목표를 위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다른 주재원들에게 추천서를 보냈다면, 주재원들을 일일이 만나 한 번 더 어필했다면, 대학원이라는 탈출구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취업하겠노라 마음먹었다면 아마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달랐으리라.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스로 간절함이 부족했다. 적지 않은 의심도 있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에게 다른 방법이 없고 그 길만 있었다고 하면, 혹은 그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었다면, 아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사했을 것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두려움과 의구심이 나의 간절함을 절반으로 줄여놓았고, 간절함이 줄어든 나는 기도만 할 뿐 그 어떤 행동으로도 간절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생각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게 하고 결과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유도할 뿐이다. 지나고 나서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또 다른 내일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간절함이 없어 이루지 못한 일에는 반드시 후회가 남는다.     

결과적으로 현지 채용은 불발되었고 대학원 입학 일정상 4월까지는 원서 지원을 해야 했는데, 어느덧 시간은 2월을 향해가고 있었기에 이내 대학원 준비에 들어갔다. 바쁜 연말이 지나고 한인회에서도 여유가 생기자 인터넷으로 런던에 소재한 대학들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한인회에서 익힌 엑셀을 활용해 각 대학을 리스트업했고 운영 중인 학과, 입학금, 기숙사비, 입학 조건 등을 정리했다. 엑셀을 많이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노트에 적고 지우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게 된 것만으로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각 학교의 컨디션과 위치를 확인하며 대략적 평균치가 구해졌다. 국내에서의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기 때문에 관련 학과인 국제관계학이나 국제정치학과에 집중했다. 관련 학과가 아니면 추가로 시험을 봐야 할 수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수업을 더 들어야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학교 선택의 조건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당연히 비용과 영어성적이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평균 학비는 한국 돈으로 약 2,500만 원 수준이었으며, 영어점수는 IELTS 기준 최소 6.5점 이상은 되어야 어떻게든 입학이 가능했다. 정규 대학원 진학을 위한 영어성적은 기본 7.0점으로 까다로운 점수였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국제 학생들을 위해 Pre-sessional이라는 선입학제도를 통해서 6.5점의 점수로도 입학이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학교 추천서 1부와 직장 추천서 1부가 필요한 것 또한 공통의 사항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학교들을 제외하고 입학이 가능한 학교들을 리스트업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엉터리 학교들이 런던에도 널리고 널렸다. British Council(영국 교육부) 인증을 받은 학교 중에서도 단순히 졸업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엉터리 학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추려진 학교의 리스트를 바탕으로 우선 가족들과 상의해야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략 이 정도의 금액인데 지원이 가능할지 확인해보았다. 관점에 따라 큰돈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나였기에 이 정도 금액도 가계에 많은 부담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의외로 흔쾌히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사실 대학원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부터 말씀드린 금액보다는 더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신 듯했다. 마침 아버지께서 정년퇴직 후 인도네시아로 근무하러 가시게 되는 바람에 여유자금이 조금 생긴 것도 한몫하게 되었다. 생활비까지 지원받게 되면 공부하기에는 편할지 모르지만, 금액적으로는 두 배 가까이 불어나기 때문에 학비만 지원받기로 하고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하겠노라 약속했다.     

일단 비용이 해결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자 적정한 금액 내에서 가장 좋은 학교를 선택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가장 좋은 학교를 선택하는 것, 말하자면 가장 잘된 선택을 하는 것.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의외로 대학원 진학의 목표는 확실했다. 학위 취득. 무엇이 더 있겠는가? 그럼 학위 취득을 하려는 목표는? 바로 취업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사람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한때는 NGO에 소속되어 사회 환경 개선의 원대한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학을 고민하면서 느낀 것은 나에게 원대한 학문적 꿈이나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 차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NGO 활동을 하기에는 나 자신의 개인적 이기심이 전혀 없지 않았다. 조금은 더 편한 환경에서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 하고 있었다. 박사과정으로 학문을 정진하여 대학교수나 관련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그렇게 지루한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대학교수는 지루한 삶을 의미했다.)      

목적을 확실히 정해두는 것이 결정을 쉽게 한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목적 자체를 졸업 후 취업으로 두었기 때문에 학교를 결정하는 것이 아주 수월해졌다. 첫 번째는 인지도였다. 진학이 가능한 학교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학교를 고르면 되는 것이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졸업 후 서울에 돌아와서도 느낀 거지만 영국의 우수 대학들이라 하더라도 관련 분야가 아니면 대학 이름만으로는 어떤 대학인지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과 우주공학으로 아주 유명한 셰필드라는 대학이 있다. 영국에서는 포항공대만큼 유명한 대학이고 이 대학을 진학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셰필드 대학을 들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영국의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처럼 학교 이름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력 과목에 있어서 우수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련 분야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서리(Surrey)대학은 호텔경영과 기계과가 유명하고 킹스턴(Kingston)대학은 디자인이 아주 유명해서 한국의 홍익대학교와 제휴를 맺어 교환학생을 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 모두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그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라도 나는 더 인지도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 전공인 정치외교학이나 국제관계학 역시 그 기원을 영국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학교가 많았다. 런던정경대(LSE)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정치/경제 대학이고, 웨일스의 카디프 대학은 국제관계학과가 시작된 학교로 평가받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은 내가 진학하기에 허들이 너무 높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학교를 고르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취업에 당연히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였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대학이 런던대였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있지 않은 유능한 대학을 선택하는 것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만약 당신이 영국 대학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런던대 출신의 남자와 워릭대 출신의 남자 중 한 명을 채용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두 학교 모두 훌륭한 학교임에는 틀림없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나라면 워릭대를 채용한다.)     

영국의 대학 시스템은 한국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한국의 대학 시스템은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들여와 University 즉 종합대학과 College 즉 단과대학(전문대학)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영국의 대학은 이러한 종합대와 단과대의 성격이 아닌 연합대의 성격을 띤 곳이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옥스퍼드대학 또한 연합대학인데, 총 40여 개의 대학들이 모여 옥스퍼드대학교를 이루고 있다. 해리포터의 촬영지로 유명하면서 13명의 영국 총리를 비롯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많은 인재을 배출한 Christ Church College(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 역시 옥스퍼드 대학의 일부이다. 옥스포드 도시에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와 같은 대학이 약 40여 개 존재하고 그중 어느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옥스퍼드 대학으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중 어느 대학도 입학과 졸업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런던대는 런던정경대와 킹스컬리지를 포함하여 총 47개의 대학과 대학원으로 이루어진 연합대학이다. 런던대 소속 학교들은 대부분 등록금 상한제의 영향을 받고 있어 학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영국의 유명 일간지인 Guardian의 대학별 순위에도 높이 랭크되어 있어 인지도 면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학교이다. 런던대에 진학하기로 결심이 서자 학교별 금액을 정리했다. 앞서 말한 등록금 상한제로 그 차이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학교별로 학비의 차이는 존재했고, 학교별로 운영 중인 학과가 달랐기 때문에 비교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리된 리스트 중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들을 골라 직접 가보기로 했다. 집과의 거리도 생각해봐야 할 일이었고, 다니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느껴보면 생각이 정리되리라 판단했다. 킹스턴 대학에 다니던 친구를 따라서 영국의 대학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곳과 비교하여 분위기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판단해보고 싶었다.     

우선은 로열홀로웨이대학을 방문했다. 학교는 런던 외곽에 있어, 기차로 통학을 해야 하거나 근처로 집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통학이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지속해서 통학하기엔 그 거리가 가깝지만은 않았다. 기숙사가 제공되긴 했지만, 금액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근처에서 아르바이트할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반면 학교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한국의 고려대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런던 외곽에 있어 도시의 소음이나 방해도 없이 고즈넉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덕분에 학생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흐르고 있었고, 학교 이곳저곳의 공원 들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출된 사진으로 보던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다. 자유로우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이 이 학교의 트레이드 마크인 듯했다. 입학상담창구에서 전체적 비용과 커리큘럼, 입학 조건, 생활환경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친절하게 설명해준 여직원 덕분에 학교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높아졌다. 집과의 거리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입학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음은 퀸메리대였다. 런던 동쪽 2존에 위치하여 센트럴로의 접근성이 좋았던 퀸메리대는 통학에 약 1시간 정도 소요되기는 하였지만 집을 옮기거나 이사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퀸메리대가 위치한 마일앤드라는 지역은 흑인들과 인디언(인도계)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 학교 안과 학교 밖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학교 안은 로열홀로웨이대와 마찬가지로 기풍 있고 멋스러운 옥타곤 건물을 중심으로 현대식 건물들이 여러 곳에 포진하고 있어 평온하고 여유로웠지만, 학교 밖으로 나오면 도시의 소음과 어지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이러한 도시의 복잡함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버스로도 지하철로도 접근성이 좋아 통학이 용이할 것 같았고, 학교로 들어서면 공간을 이동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 SOAS대나 골드스미스대학 등의 런던대를 포함하여 집에서 가까운 킹스턴대와 아주 다른 도시인 브라이턴대 등 몇몇 학교를 더 둘러보았지만, 비용이나 커리큘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런던대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로열홀로웨이대와 퀸메리대로 선택이 좁혀졌다.     

이제 두 학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학교를 선택해야 했다. 에그햄(Egham)에 위치한 로열홀로웨이대에서 런던 외곽의 조용한 여유를 즐길 것이냐, 아니면 마일앤드의 복잡함 속에 홀로 고요한 퀸메리대에서 다양한 런던 라이프를 즐길 것이냐의 차이였다.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런던 외곽의,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여유로움과 환경친화적 학교생활이 아주 매력적이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다이나믹한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나의 천성 때문에 센트럴에서 가까운, 그래서 아주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퀸메리대가 나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로열홀로웨이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이사를 하거나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시간적, 비용적 노력이 두렵기도 했다. 결국 퀸메리대로의 진학을 확정 짓게 되었고 퀸메리대 진학을 위해 한국의 대학 졸업증명서와 교수님 추천서, 그리고 영어 성적 확보만이 남아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당연히 빨리 끝낼 수 있는 것부터였다. 한국에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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