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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15.

한국으로 들어와 준비를 시작했다. 들어온 시점은 졸업식이 막 끝난 후인 2월 말경이었다. 약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교수님들의 추천서를 받아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선은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출력했다. 고향에 계시던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계셨기에 당시 고향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인 집에서 2주간 아무런 간섭 없이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텅 빈 집에서 1주일가량 시차 적응을 핑계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맞으면 옛 친구들을 만나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취업한 친구들은 나를 한량이라 부르며 부러워했지만, 사실 무엇 하나 이룬 것 없는 나는 그들의 생각만큼 고민이 없지 않았다. 저마다 각자의 현실이 가장 비극인 듯했다. 나로서는 취업한 친구들이, 그들에게는 아직도 공부 중인 내가 서로 부러울 따름이다. 당시에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에 취업해 금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사원이 되고도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지금은 그래도 공부할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친구들은 이미 이와 같은 부러움을 느꼈으리라.     

시차 적응을 얼추 마치자 본격적으로 대학원에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시작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는 모두 학교 내에 설치된 무인발급기로 발급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 입학에 필수적이었던 2장의 추천서만큼은 교수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요청해야 했다. 미국 정치학 전공 교수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평소 아주 엄하고 날카로우신 교수님이셨지만, 동시에 항상 의욕적이고 질문이 많던 나를 예뻐해 주시던 교수님이시기도 했다.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추천서를 써 주시겠다 하셨고, 다른 한 분의 교수님 또한 나를 지지하며 기꺼이 추천서를 작성해 주셨다. 사실 다녔던 대학에서 추천서를 받는 일은 아주 문제 학생으로 찍히지 않은 이상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그리고 추천서가 해결되자 입학을 위한 준비는 이제 영어성적만이 남아있었다. 사실상 가장 큰 벽이었다.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1년 반이나 됐지만, 시험 경험은 단 한 번이었고, 그나마도 대학원을 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을 받았다. 1년 동안 신선놀음만 하던 내가 시험에 자신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진짜 영어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영어시험이 한국에서 응시했을 때 점수가 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적 평가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채점자들은 응시자들의 수준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의 응시생들끼리 경쟁하면 해외에서 체류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조금은 유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IELTS 시험은 시험 일정이 맞지 않았다. TOEIC이나 TOEFL은 영국 대학에 진학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시험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 시험을 준비하기를 권한다. 시험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그 유형으로 인해 점수가 달라지니 말이다.     

한국에서 약 보름의 시간 동안 필요한 서류와 생필품을 구입한 뒤 다시 영국으로 향했다. 영국으로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퀸메리대의 입학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입학에 필요한 영어성적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에서 알려준 점수와 동일한 7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다시 메일을 보내 Pre-sessional 코스에 관해 물었다. 조금이라도 낮은 점수가 유리했다. 인터넷에서 알려준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학과의 입학정원 상황에 따라 Pre-sessional입과가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담당자는 전공 교수들에게 확인하여 답을 주기로 하였다.     

답변을 듣는 것과 관계없이 영어시험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일정 수준의 기본 실력이 시험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시험을 위한 공부는 별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시험이기 때문에 기출문제가 무엇이냐, 감독관이 누구이냐 혹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면서 시험은 결국 유형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바 있다. 해당하는 시험에 대한 준비는 결국 그 시험을 많이 치러본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많은 모의고사를 치렀던 것 같다. 누가 더 많이 풀어보았는지, 누가 더 그 질문에 익숙한지, 누가 더 그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가 시험의 성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절대적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시험이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영국으로 들어온 후 문을 걸어 잠갔다. 전화기도 꺼놓았다. 그 좋아하던 온라인 게임도 끊었다. 2월 말부터 시험성적을 제출할 수 있는 5월 말까지 오롯이 시험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그사이 내가 치를 수 있는 시험은 고작 두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그나마 준비했던 대학원도 날아갈 판이었다. 당연히 핀치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집중해야 했다. 말 그대로 두문불출이었다. 한편으로 Pre-sessional을 위한 점수가 전혀 불가능한 점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무한정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영어시험에 올인하기로 한 이상 대충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첫 번째 시험에 원하는 점수를 받아야 다음 시험에 부담이 없을 것이다.     

시험용 실전 교제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IELTS는 Listening, Reading, Writing, 그리고 Speaking 총 4가지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당시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Reading과 Writing이었다. Writing이 약한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동일한 일일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포함해 10여 년 이상 영어라는 과목을 공부하지만 제대로 된 writing 연습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Reading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학창 시절에는 Reading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토익 시험을 치르면서 다년간 실력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고3 때 이미 토익은 65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이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IELTS는 그 수준이 달랐다. 한국에서의 언어영역에 해당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언어영역이 쉽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있던가? 한국말이지만 쉽지 않다. 더구나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어휘만 학습되어있던 나에게 IELTS의 Reading은 넘을 수 없는 산과도 같았다.     

심지어 더 터무니없이 나를 좌절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토익시험의 Reading은 조금 연습만 하면 시간이 많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IELTS는 시간이 말 그대로 턱없이 부족했다. 지문을 찬찬히 읽으면 대부분 풀이가 가능한 문제들일지 모르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언어영역 시험에서 지문을 찬찬히 읽은 적이 없는 것처럼 IELTS의 Reading 또한 찬찬히 읽어서는 절반의 문제를 풀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IELTS의 Reading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스킬이 필요하다. 첫 IELTS 시험을 준비하면서 다녔던 학원에서는 짧은 과정 덕분에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스킬을 가르쳐주었다. 실제 영어 실력이 향상되려면 장기간의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몇 가지 스킬만 잘 습득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스킬을 알려주겠다.     

리딩 시험의 지문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이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문제 파악하기이다. 리딩 시험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지문에서 얻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험이 시작된다. 지문을 받자마자 첫 문장에 매료되어서 지문을 쭉 읽어버리면 이미 시간은 한참 지난 후이고 정작 필요한 답은 얻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지문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 지문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 문제를 파악할 때에는 지문에서 핵심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들에 동그라미를 쳐서, 지문을 한참 읽는 도중 문제로 돌아가 무얼 찾아야 하는지 다시 살펴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 속에 포함된 의문사에 먼저 동그라미를 친 후 의문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동그라미 친다. 예를 들어,

"What time was the meeting arranged?"

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먼저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곳은 앞서 말한 것처럼 What time의 What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험의 특성상 혼돈을 주고 그 혼돈 가운데서 제대로 된 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지문에는 시간과 관련된 내용이 여러 번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meeting arranged에도 동그라미를 쳐 미팅이 구성된 시간을 집중적으로 찾아야 한다. 제시된 문제가 길면 길수록 이 방법이 효과적이다. 질문을 독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를 하나의 지문을 통해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보통 직접적 의문사가 있는, 말하자면 단순한 문제부터 먼저 푸는 것이 좋다.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의 내용이나 흐름을 파악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체 내용을 고민하느라 쉬운 문제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파악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리딩에 들어간다. Reading에 필요한 스킬은 세 가지다. 스캔하기(Scanning), 건너뛰기(Skimming), 자세히 읽기(Detail Reading). 먼저 문제와 연관이 있는 단어를 빠르게 스캔한다. 문장을 읽거나 내용을 파악하는 대신 연관되는 단어만을 빠르게 훑어 내려간다. 찾은 단어는 마찬가지로 동그라미를 쳐서 표시해 둔다. 문제가 여러 개일 때는 네모나 세모 등 문제에 따라 다른 도형으로 표시를 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대한 빨리 스캔을 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스캔이 끝나면 건너뛰기에 들어간다. 스캔한 단어들의 문장을 읽어보고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면 건너뛴다. 위에서 예시로 든 단순한 질문이라면 대부분 이 과정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된다. 이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자세히 읽기를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자세히 읽기를 하더라도 모든 지문을 자세히 읽을 필요는 없다. 이미 스캐닝과 스키밍을 통해서 파악된 내용으로 필요한 단락을 파악하고 앞뒤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읽는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답을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이미 단순한 문제는 모두 풀었기 때문에 한 문제를 놓친다 해도 해당 지문에서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전체를 자세히 읽어도 문제를 틀릴 확률이 얼마든지 있다. 지문의 전체 흐름에 관한 문제일수록 이러한 경우가 많은데, 우선은 풀 수 있는 문제를 먼저 풀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 문제를 푸는 것이 시간 관리상 효과적일 수 있다. 지문에 파묻혀있을 때는 아무리 읽어도 보이지 않던 것이 돌아와 다시 읽으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딩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본인만의 타임라인을 만들어 놓고 시간 안에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뒤로 갈수록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지지만, 뒷부분에도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쓸데없는 집착으로 더 큰 것을 놓치지 않도록 하자.     

스킬은 훈련을 통해 정진된다. 스킬의 방법 즉, 요령은 알려줄 수 있지만, 결국 해보지 않으면 스킬은 늘지 않는다. 무한정 연습에 돌입한다. 모의고사 문제지를 사서 수도 없이 풀어본다. 문제를 푸는 동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시간 관리의 싸움이기 때문에 조금의 흐트러짐만 있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엄마도 아빠도 여자친구도 방해할 수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전화기는 꺼두는 것이 좋고 쓸데없는데 관심을 쏟는 일이 없도록 인터넷 접속조차 불가능하게 하면 더 좋다. 장소는 독서실이나 도서관을 추천한다. 다행히 런던에는 훌륭하면서도 접근이 용이한 도서관이 널려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던 도서관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자주 이용했다던 도서관이다. 런던 중심에 위치하여 있음에도 아주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모든 방해가 차단되던 곳이었다. 심지어 전화도 잘 터지지 않아 본의 아니게 잠수를 타게 되니 말이다. 이처럼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 놓으면 마음을 잡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첫 번째 시험이 있는 4월 초까지 시험에 집중했다. 당시에는 IELTS 점수에 필사적이었다.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모든 계획과 희망이 없어질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좋아하던 게임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 다녀오면서 자연스럽게 한인회 일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따로 하지 않았다. 더러 늦잠을 자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드는 시간까지 오직 시험 준비였다. 하루에 최소 2회의 모의고사를 치렀고, 약하다고 생각되는 Reading과 Writing은 하루 4회 이상 연습했다. 실전 시험이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4시경에 마치는 일정임을 고려하면 하루 2회의 모의고사는 사실상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는 심정으로 준비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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