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다이어트의 공통점
“이번주엔 어느 산 갈까?”
“지금 청계산 예쁘다던데 콜?”
“ㄱ”
관악산 연주대 등산 이후로 세희와 함께 매주 등산을 했다. 연주대 정상이 너무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주된 목적은 다이어트였다.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까. 세희와 나는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 대신 산으로 향했다.
전지현, 이효리도 사랑하는 등산은 최고의 다이어트 운동이다. 일반적으로 60kg 성인을 기준으로 등산을 1시간 했을 때 약 500kcal를 소모할 수 있다고 한다. 2시간동안 등산을 하면 약 1000kcal를 태울 수 있는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이다.
심지어 유산소 운동만 되게? 오르막길을 오를 때 하체에 계속 자극을 주니 근력 운동도 된다. 게다가 다른 유산소 운동에 비해 지속 시간도 길다. 런닝머신이나 싸이클은 30분을 타고 나면 금세 지루해지지만 등산은 한번 산을 올랐다 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으니 최소 1시간은 운동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등산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의 색에 감탄하고 중간중간 숨을 돌릴 땐 파란 하늘에 서울 시내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풍경이 계속 바뀌는 재미가 있으니 지루할 틈새가 없다.
등산 후에 고칼로리 안주에 술 한잔만 아니라면(사실 이게 가장 어려운 일) 등산은 다이어트에 최적화된 운동인 것이다. 주말마다 최소 2~3시간 등산을 하고 등산 도시락은 닭가슴살소세지로, 뒤풀이는 술 없이 건강식으로 대체한 결과 매달 지방만 2kg씩 빠졌다. 물론 PT를 병행했지만 등산이 지방 태우는 데 좋은 부스터가 되어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나는 평생 술 마시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그냥 술 그 자체가 좋다. 맛있기도 하고 음식의 맛도 살려주며 취할 때 평소와 다르게 풀어지는 그 기분도 사랑한다.
하지만 직장인 연차가 쌓여가고 주 3~4회 과음하는 생활을 몇년 째 지속하자 어느 순간 몸무게가 브레이크 고장난 차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살이 쪄서 새 옷을 사러갈 때마다 ‘아 살 빼야하는데’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술을 참는 것이 더 괴로웠으므로 과음-숙취-반성하며 런닝머신-과음의 무한루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차, PT 선생님이 아주 솔깃한 제안을 했다. 평생 술 마시며 유지 가능한 몸을 만들어주겠다고. 술과 다이어트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눈이 반짝 뜨이는 제안이었다.
작년 10월에 시작한 다이어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 8개월동안 61kg에서 52kg로, 체지방만 7kg가 빠졌다. 작아서 못 입던 옷들은 이제 헐렁해졌고, 원하는 옷 핏이 나오니 쇼핑하는 재미도 생겼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더부룩한 느낌도 없고 건강하게 먹으니 하루종일 몸이 가볍다는 것 등 다이어트로 얻은 장점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가장 좋았다. 매달 바뀌는 몸무게를 보며 나는 노력한만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의사가 다이어트에 대해 쓴 트위터를 보고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그 트윗 글의 1번은 이렇다.
‘다이어트는 식단이나 운동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 중에 가장 큰 성취감이 다이어트에서 온다. 공부나 일은 성과가 장기적이지만 다이어트는 즉각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영역이다.’
생각해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성취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시험이나 과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 자리에 앉아 엉덩이 힘으로 지루한 시간을 참아내는 건 괴로웠지만 성적이 올랐을 때의 그 짜릿함은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주었다.
반면 살면서 노력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일은 많지 않다. 회사에선 전력을 다해 일을 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고, 인간관계로 말할 것 같으면…사람의 마음은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직하게 적용되는 영역은 운동과 다이어트 뿐인 것이다.
등산에 빠지게 된 것도 성취감 때문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땐 문자 그대로 죽을 것 같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가쁘고 다리 근육은 찢어질 것 같다. 내가 왜 누워서 숨만 쉬기도 바쁜 주말에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와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나 싶다. 너무 힘들어서 더 못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포기하고 집에 갈까, 생각한다.
그 모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올랐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이 발 끝에서부터 가득 차오른다. 마치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토너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이 차올라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들에게 쏟는 다정함과 너그러움의 절반을 나에게 쏟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스펙이 딸려서 원하던 걸 이루지 못했다고 너무 손쉽게 스스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나 자신이므로.
한창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와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머리맡에 붙여놓고 주문처럼 외던 말은 ‘작은 성취를 쌓아 우울에서 빠져나오자’ 였다.
등산, 다이어트, 요리, 청소 .. 본인에게 성취감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매일 하나씩 작은 성취들을 쌓아올리다보니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 나와 나를 좀 더 아낄 수 있게 됐다.
혹시 뭘해도 재미없고 무력한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왔다면? 등산이나 다이어트를 시작해보길 추천. 건강도 챙기고 우울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인생 권태기 극복 꿀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