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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Oct 13. 2020

출근 전 등산의 매력에 대하여

살기 위해 산 타고 출근한다

아침 8시. 익숙한 아이폰 알람이 울린다. 오분만 더 잘까, 고민하는 찰나 머리에 단 한 문장이 떠오른다.


"살아야 한다."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인, 전날 밤의 내가 준비해둔 운동복과 출근 가방을 챙겨 곧장 산으로 향한다. 출근 전, 집 근처 안산 등산로를 통과해 3호선 독립문역으로 걸어갈 계획이다. 집에서 안산 정상까지 1시간, 하산하는데 30분, 지하철로 20분. 도어투도어로 대강 2시간이 걸리는 출근길이다. 출근은 11시만 하면 되니 늦어도 8시반에 집에서 출발하면 등산을 하고 출근을 할 수 있다.

나의 흔한 출근길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평균 취침 시간은 2~3시,늦게 잠들다보니 당연하게(?) 아침 잠이 많다. 올빼미형 인간이 소중한 아침 잠을 1시간이나 포기하면서 산으로 향하는 까닭은 하나. 정말로 살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아니, 나를 살리기 위해 향했다.



 나는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소위 말하는 기분파다. 아침엔 대체로 여러가지 이유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데 주로 일에 대한 압박감, 연락이 오지 않는 썸남(연애 중일 땐 남자친구), 비가 와서, 피곤해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럴 땐 침대에서 나갈 힘 조차 없어져 가만히 누워 스스로의 기분과 싸운다. 그러다가 출근 시간 마지노선이 되어서야 택시를 타고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짜증을 안고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출근 전 등산을 하기 전까지는.


출근길 등산을 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회사에서는 일주일간 재택근무 기간 그리고 2주동안 유,무급 휴가 기간을 가졌다.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사람이 없는 평일 오전시간대에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걷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뒷산인 안산이 있었다. 동네에 산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등산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던 산이었다. 평일 아침의 안산은 한적했다. 정상인 안산봉수대까지 가는 30분동안 사람을 한두명 정도 마주쳤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동안 헬스장과 클라이밍 짐을 대신 매일 안산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집에 갇혀 있다가 아침에 2시간 정도 바깥 공기, 그것도 산 공기를 마시니 말 그대로 살 것 같았다. 아침에 상쾌하게 등산을 하고 일을 시작하니 몸도 활성화된 상태라 업무에도 훨씬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좋아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고도 등산을 하고 출근을 했던 것이다.


나의 출근길 등산 코스는 이렇다. 나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출발한다. 이 코스로 가면 안산의 자랑,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따라 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도심에 이런 메타세콰이어 숲이 있다고?! 하고 놀랐을 정도로 안산에는 길쭉길쭉한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숲길이 두 곳이나 있다. 숲속무대- 무악정- 봉수대 – 약선약수터 - 독립문역 코스 혹은 시간이 좀 빠듯할 땐 숲속무대 데크길 – 무악정 – 독립문역으로 가면 1시간만에 등산을 끝낼 수 있다.


늦잠을 자거나 일이 너무 바빠서 등산을 못 간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퇴근 후 헬스장을 가거나 따릉이를 타도 그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원인 모를 우울로 괴로워하다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웃는 순간이 산에 있을 때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앙상했던 겨울 산이 봄을 맞고선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분명 지난 주만 해도 한창이던 진달래가 다 지고 지금은 이름 모를 자잘한 흰꽃들이 그 자리를 채운 걸 보고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아, 숲에서는 계절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구나. 계절의 변화를 내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무가 내는 습기 머금은 공기를 힘껏 들어마시고또 웃는다. 숨이 가빠지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서 몸이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도대체 이전에는 어떤 몸 상태로 일을 했던거지?) 제주도 숲에서 보았던 나무를 발견하고선 제주도에 온 것 같다고 혼자 신기해한다. 여행자의 심정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 출근길이 가벼워졌다.


 여전히 나는 기분에 휘둘리는 인간이다. 어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붙잡고 낑낑대다 잠들었고 눈 뜨자마자 자괴감이 찾아왔다. 기분은 장마철 날씨처럼 쉽게 흐려졌다 맑아졌다를 반복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분이 좋아지는지 아주 확실한 방법을 알기에, 나는 아침 잠 한시간을 포기하고 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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