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우씨 Jan 03. 2022

1

따뜻한 숫자들 - 첫 번째 숫자

오늘, 1의 기분은 좋지 않다.


스스로가 너무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숫자들 2나 3, 15나 37은

자기들끼리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으며 떠들지만

1은 자신의 작음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다.


“엄마, 나는 왜 1이야? 나는 왜 1로 태어났어요?”


1의 질문이 던져진 어느 날 밤

엄마 0은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이제 이 아이에게

숫자의 세계가 내포하는 냉혹함을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 이 날이 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이를 줄은 몰랐다.


“너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란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숫자보다도

나는 작은 걸요.

친구들은 다 저보다 많거나 높다구요.”


0은 차분한 어조로

1의 놀라운 비밀에 대해 말해주기로 한다.

지금껏 수도 없이 혼자 연습해 왔음에도

어쩐지 중요한 부분들을 놓친 듯한 아찔한 느낌을

마음 한 편에 껴안은 채로.


*


세상이 시작될 때, 이곳엔 아무 것도 없었어.

어떤 숫자들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미지의 공포, 출구를 찾지 못한 호기심으로 뒤덮인 벌판 같은 거였어.


그때 네가 태어난 거야.

1

모든 것의 시작, 또한 모든 것의 끝.


숫자는 끝도 없이 커지거나 부풀어 오를 수 있지만

이 세상의 아무리 커다란 숫자도

나눠 보면 결국엔

수많은 너로 이뤄져 있을 뿐이란다.

세계의 모든 수들이 너보다 크지만

그 어떤 큰 숫자도 너 없인 성립할 수 없는 거야.


밤마다 하늘로 떠오르는

수많은 별들을 세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월 바다의 파도를 맞으며

작아져온 모래알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여름이면 끝없이 쏟아지는 장맛비의 방울들을

두 손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달빛이 닿는 마지막 경계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너부터 시작해야 해. 알겠니?

모든 것의 시작은 너야, 1.

너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란다.


태양과 달은 하나뿐이지만

아무도 그걸 작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너는 유일한 거란다.



프로젝트 《따뜻한 숫자들》은

언뜻 차가워 보이는 우리 주변의 숫자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림 ⓒ백삼 작가(@wet_meonji)

글 ⓒ원우씨(@wonwoop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