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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Mar 24. 2022

머위 밭

오랜 시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탓에 대지는 몹시 메말랐다.

시냇물은 소리를 죽인 채 간신히 흘렀고 곳곳에서 산불 소식이 들려왔다.

물기 없는 봄을 맞는 나무들도 작은 망울을 맺은 꽃들도 활짝 피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물 부족으로 인해 주변으로 순환해야 하는 것들이 조금씩 막히고 정체되다 보니 엄격했던 자연의 질서도 위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뉴스 앵커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코로나 감염 환자 숫자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어쩌다 한차례 기침만 나와도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헐렁해진 마스크를 고쳐 쓰곤 했다. 그렇게 불편하고 부당한 시간들이 쉬임 없이 다가오고 지나가곤 했다. 당장 인적 없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머물 수도 없었다. 무심히 길을 걷다가 마주친 논바닥의 쩍쩍 갈라진 틈새처럼 마음에도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은 누군가의 힘에 떠밀리듯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의기소침해진 생활에 갇히다 보면 마음 저편에서는 내 스스로를 다그치듯  강한 오기가 생겨나곤 했다.


모처럼 찾아온 산에는 새들의 소리로 가득했다. 겨울을 벗어던진 후련함을 만끽하듯 새들은 힘차게 날았고  자유롭게 능선을 드나들며 저마다 소리를 드높였다. 까마귀와 산까치들은 멀리까지 날았고 가까운 숲에서는 박새들의 소리들로 부산했다. 가까운 곳에서 멀어져 가는 소리 또는 먼 곳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로 인해  봄의 소리는 증폭되었지만 산의 고요함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었다.



은행나무 아래에 있는 머위 밭은 벌써 푸르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노란 히어리 꽃도 생강나무 꽃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꽃나무들의 채근에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온 것이었을까? 밭에는 깜짝 놀이하듯 머위들이 모여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같은 머위들이 저마다 동그란 얼굴을 들이밀며 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 아래에는 허물을 벗듯 밀어놓은 은행잎들로 수북했다.

은행잎은 겨울 내내 머위의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었고 이제는 머위를 위한 거름으로 쓰일 참이었다. 새싹을 키우는 과정마다 드러나는 자연의 치밀한 계획과 폭넓은 배려놀랍기만 했다.

 

머위는 봄이면 돋아나는 많은 산나물 중에 유독 내가 좋아하는 나물이었다. 해마다 통부채같은 넓은 잎으로 큰 밭을 덮어버리곤 했는데 한약재로도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고 특유의 쌉싸름한 향이 입맛을 돋우는 최고의 봄나물이었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싹을 틔워 올렸고 그들 사이에 풀 한 포기도 들어설 수 없도록 촘촘히 얼굴을 맞대며 쑥쑥 자랐다. 매년 봄이면 우리 집 반찬으로 쓰기에는 차고도 넘쳐서 나물로 볶고 쌈을 싸고 장아찌까지 담았다. 귀하기도 하지만 양도 풍성해서 머위 밭에 서면 나는 어깨를 활짝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누구든 와서 뜯어가도록 흔쾌히 선심을 쓸 수 있는 고마운 존재가가 되어주었다. 가끔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 산속에 홀로 싹을 피어 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여린 식물이었지만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매번 바구니를 채우며 푸르러 가는 봄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빠지곤 했다.



머위 밭 위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맑은 샘물이 흘러나왔다. 봄이면 개구리들이 찾아와 울었고 목마른 고라니도 산돼지도 가끔 찾아와 목을 축이곤 했다.

샘물은 긴 가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밭을 가로질러 주위를 적셨다. 눅눅해진 땅 위로 자리를 잡은 머위는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고 넓은 밭은 오롯이 그의 세계가 되었다.

산맥을 넘어온 순한 바람이 가끔씩 밭 사이를 드나들고 구름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햇살, 봄을 재촉하는 단비까지 합세하면서 대지는 힘을 얻었다. 기회를 엿보며 망설이던 꽃나무들은 용기를 내어 피기 시작했다.


밭 가운데에서 머위를 뜯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천진무구한 자연의 숨결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언젠가 한 지인이 머위 밭을 보더니 그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제안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 돈이면 지금보다 편한 생활을 할 수도 있겠지만 머위를 생각하자니 그럴 수 없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나를 달려오게 하는, 내 삶의 기쁨을 책임지어 주는 그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연이란 다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줄곧 한 길을 가는 그들의 삶이나 올곧은 품성이 인간의 그것에 비해 훨씬 존귀하고 높아 보였다.

 

쫓기듯 살아가는 삶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믿음직한 자연이 아직 내 곁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염치없지만 자랑스럽다. 이제 곧 사월이 오고 오월이 오면  힘찬 약동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싱싱한 에너지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고 그들이 전해주는 설렘의 시간에 오래 빠져보고 싶다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결국 자연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에 그런 기대가 나를 힘내어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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