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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08. 2023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질까?

매사에 걱정이 많은 범불안장애

근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매달렸던 프로젝트가 가을로 연기됐다.

연기됐다는 얘기를 전달받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허탈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만들어가던 프로젝트였는데 연기가 됨에 따라 갑자기 스케줄이 뒤죽박죽 돼버렸다.

'앞으로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면서 걱정들이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머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져?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베트의 속담이 있다.

걱정만 다고 걱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겠지.

걱정한다고 없어질 걱정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걱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걱정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걱정할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나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지금 내가 하는 걱정으로 걱정이 없어진다면 좋겠지만 이미 연기하기로 결정이 됐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내가 걱정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리학에서는 지나치게 매사에 걱정 근심이 많은 심리장애를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라고 한다.

그런데 불안과 걱정은 매우 매우 흔한 심리적인 문제이고 지극히 정상적이다.

학계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범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 번 생각을 해보자.

"내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걱정이 돼? 안돼?"

"내일 취업 면접이 있다면 불안 해? 안 해?

발밑에 뱀이나 독거미가 있다면 불안과 걱정을 뛰어넘어 공포감마저 들 수도 있다.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고 있다면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걱정을 안 하고 천하태평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이고 발전이 없다.

또한 뱀이나 거미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소중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되면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고, 면접을 앞두고 불안하면 시뮬레이션을 하며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한다. 그러면 보다 나도 모르는 새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불안이나 걱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발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범불안장애는 정상적인 걱정과 병리적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증상이 애매모호하고,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비교적 미약하다. 

 사소한 걱정으로 인해 죽을 것 같거나 일을 망쳐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불안장애나 특정공포증 같은 다른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보다 병원을 찾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불안이나 걱정, 공포 등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고 힘들어하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다.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는 데 있음으로 해서 고통스럽고 힘들어하는 존재의 고통(pain of presence)과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해결하고 싶지만 해결하지 못해 괴롭고 힘든 부재의 고통(pain absence)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고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불안이나 우울, 분노, 수치심, 죄책감 같은 정서적 고통으로 부적응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 등 역기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결국은 대인관계에 마찰이 생기거나 갈등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신체적인 고통이 함께 따라온다.

그러니 결국은 정서적으로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다.


부재의 고통 같은 경우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개에게 한 번 물린 후에는 개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버렸다.

개가 있음으로 인해 존재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밖에 외출을 하다가 개에게 물릴까 봐 외출 자체를 꺼리고 두문불출 집에만 있게 다.

외출을 해야 하는데 개를 만날까 봐 나갈 수가 없다.

나가서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부재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있어서 괴로운 것과 없어서 괴로운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

그렇다면 존재의 고통과 부재의 고통 중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와 마주칠까 봐 걱정하는 존재의 고통이 아니라 그 걱정을 견뎌내는 힘이 부족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부재의 고통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걱정이나 불안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며 시시때때로 찾아와 정서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런데 정상적인 범주의 걱정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병리적인 걱정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 뭘까?

바로 걱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아이코~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네. 내가 걱정을 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면서 걱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범주이다.

반면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처음에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시작했었는데 나중에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병리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늦은 시간인데 진즉에 귀가했어야 할 딸이 집에 안 들어오면 부모로서 당연히 걱정을 한다.

"오늘따라 늦네. 무슨 일이 있나?"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걱정을 하다가

"집에 오면 배가 고플 텐데 오자마자 빨리 밥을 먹을 수 있게 찌개를 덥혀 놔야겠다." 하고 주방에 가서 가스불을 켠다.

그러다가 현관문을 열고 딸이 들어서며

"아~ 배고파. 차가 밀려서 늦었어요. 엄마, 빨리  밥 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걱정은 끝난다.

이경우에는 정상적인 걱정이다.


그런데 병리적인 걱정이란 딸이 늦으니

"무슨 일 있는 것 아냐?"

"오다가 교통사고라도 났나?" 하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모습이 뇌리를 스치면서 불길한 생각에 안절부절못한다.

"혹시 불량배에게 험한 꼴이라도 당한 건 아니야?" 머릿속에서 스토커에게 폭행을 당해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던 며칠 전의 뉴스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 딸도 그렇게 당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숨이 안 쉬어지고,  이럴 때가 아니라며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옷도 제대로 못 걸치고 뛰쳐나간다면 심각한 수준이다.

매사에 모든 상황을 파국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정작 차가 려서 늦은 딸은 배고프다고 천하태평인데 기다리는 엄마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너무 힘들고 괴롭다.

막상 무사한 딸을 보면 안심을 해야 하는데도 "지금 배고프다는 말이 나오냐?"화가 나서 대뜸 소리부터 치게 된다. 사실 딸에 대한 화보다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 자신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딸은 아무 잘못이 없다. 자기 자신이 온갖 걱정과 불안 때문에 지옥 끝까지 갔다 온 까닭에 괜스레 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 된다면 병리적인 것이다.


정상적인 걱정은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거나, 어떤 자극으로 인해 걱정을 하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저절로 걱정이 끝난다.

두통이 있거나 복통이 있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가슴이 답답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상적인 걱정을 하는 경우 때로는 술이나 담배 같은 약물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이 일정 부분 문제해결을 돕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나 흡연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매번 알코올이나 니코틴 등 약물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면 걱정이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병원에 가지 않고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불안이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약간은 집중을 해야 풀 수 있는 덧셈, 뺄셈 같은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구구단의 높은 단을 9X9=81, 9X8=72 하며 뒤에서부터 외우거나. 100에서 6씩을 빼 나가거나 하는 것들이다.


과거 즐거웠던 기억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거나,  퍼즐게임이나 운동게임 같은 신체활동을 하는 것도움이 된다.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일들을 이 기회에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에 프로젝트가 연기됐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드라이브하고 싶다." 생각이 격하게 들었다.

평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이 드라이브였기 때문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났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뭐다? 자동차와 동차리모컨이다.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이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있다면 걱정을 하고 또 해라.

하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면 나만의 트레스해소법을 찾아서 풀어버리자.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든지,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든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걸으며 운동을 하든지, 나에게 맞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서 해보자.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드라이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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