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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22. 2023

언제 밥 한 번 먹자

말로라도 빚을 지지 마세요

'실수도 실력이고 빚도 자산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일까? 한 번 따져보자.

실수의 사전적 의미는 조심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수도 실력이라는 말에서의 실수는 잘 알고 있음에도 착각이나 부주의로 인해 잘못된 결과를 낳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잘 알고 있음에도'이다.

알고 있음에도 덤벙대거나 부주의해서 발생한 결과가 실수라면 이전에 실력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또한 빚도 자산이라는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돈을 꿔주지 않는다.

'은행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라는 말도 있듯이 담보 물건이 있어야 은행에서는 대출을 해 준다.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는다면 비교적 이율도 낮고 그나마 다행이다.

제1, 제2 금융권은 물론이거니와 대부업체인 제3 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을 받을 상황이 안된다면 어쩔 수 없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사채를 써야 한다.


사채라 이자가 높다고 아무 장치도 없이 돈을 거저 꿔줄까?

사채업자의 클리셰처럼 우리가 미디어에서 많이 본 바 있는 신체포기각서라도 써야 돈을 꿔준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출중한 실력이나 대성할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돈을 꿔준다.

그러니 자산이 있어야 빚을 질 수 있다는 말 역시 맞는 말이다.

결국 결과적으로 실수도 실력이고 빚도 자산이라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말로 지는 빚은 어떨까?

'언제 밥 한 번 먹자.', '시간 나면 전화할게.', '나중에 만나서 회포를 풀자.' 같은 말들 말이다.

일전에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이란 프로그램에 배우 임시완이 출연했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를 들으며 '어쩜 저리도 나랑 비슷할까'라는 생각을 다.


작품을 같이 한 선배들이 "언제 밥 한 번 먹자", "나중에 술 한잔 하자", "집에 한 번 놀러 와"라는 말을 듣고 선배님 집을 방문했다가 머쓱해졌단다.

그런 말을 한 선배들은 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배우 임시완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밥 먹으러, 술 먹으러, 명절에 인사차 집을 방문한 것이다.


MC들은 임시완의 눈치 없음을 탓하고 웃어넘기는 에피소드로 활용했지만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마냥 기분 좋게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그대로 믿은 임시완이 웃음거리가 될 만큼 정말 잘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는 누군가의 노력과 시도가 있어야 오는 때이다

물론 통상적이고 사회적 언어로써 헤어지면서 그냥 뒤돌아서 가기 뭐 하니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얘기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 '언제'는 누군가의 노력과 적극적인 시도가 있지 않으면 절대로 오지 않는 때이다.


아마도 그 선배들도 사회적 언어로써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믿은 임시완이 선배님의 '언제''둘 다 촬영이 없는 다음 주 어느 날'로 해석하고 방문한 것을 굳이 웃음거리로 삼아 탓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누군가 눈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임시완 본인은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본인만의 신념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듯이.


임시완이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인사치레로 가볍게 흘려버릴 말이 아니라 '약속은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니 기억했다가 날 잡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라고 입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임시완의 경우에는 하늘 같은 선배님의 말씀이므로 더욱더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을 것이다.


다만 임시완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임시완은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주의자이고 나는 그런 경우 속으로만 생각을 곱씹을 뿐이다.

"밥 먹자고 했는데 왜 연락이 없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하는데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나?" 

"그냥 인사치레로 한 번 해 본 말이었나?" 등등등.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결국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일견 피곤하게 산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언제라는 시간을 만들어 꼭 밥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한다.

그 말을 내가 먼저 했을 때는 반드시 밥을 먹고 밥값은 내가 낸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과 약속을 했을 때는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말빚' 즉 말로 하는 빚을 지고 싶지 않고, 약속은 소중하고 지켜야 한다는 기준과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출금 납부, 거래처와의 약속 등 비교적 약속을 어겼을 때 큰 손해가 발생하거나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 상대적으로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과의 약속 등 큰 약속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어지간해서 어기지 않는다.


하지만 '날 잡아서 한 번 만나자.', '다음 달쯤 서로 시간 맞춰 한 번 보자', '바쁜 일 끝나면 내가 연락할게' 같은 작은 약속, 사소한 약속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의외로 사소한 약속에 대한 대처 방안을 보며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사소한 약속일지라도 반복적으로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생기지 않아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반대로 말해서 작은 약속을 잊지 않고 소중히 생각해 지킨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간다.

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믿을 수 있다는 굳은 신뢰감이 생기는 것이다.


'내일 전화할게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한 마디에 이제나 전화가 오려나, 저제나 전화가 오려나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하루종일 전화기를 쳐다보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이 되면 저 사람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그 말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마치 이솝 우화의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말이다.



믿음은 의외로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생긴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은행빚을 지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아파트를 살 때도 은행의 대출을 받았고, 전원주택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더러는 집을 매매할 때 대출을 끼고 있는 경우에 매매가 잘 된다는 부동산 중개사의 말 때문에 적은 금액이라도 대출을 남겨 둔 적도 있다.

또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아서 재산을 늘린다는 말도 들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부를 늘리는 재주도 없거니와 항상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대출은 남겨 둔 상태로 살아왔다.


그래서 빚을 지지 않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재도 열심히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 가고 있으니 머지않아 대출금을 모두 갚을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은행빚은 있을지라도 적어도 말빚만은 지지 않고 살 자신이 있다.

왜냐면 사소한 약속도, 아주 작은 약속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말빚도 빚이다.

말빚을 지지 않으려면 '나중에, 언제, 시간 되면, 조만간' 같은 애매모호한 말은 하지 말고

"다음 주 수요일쯤 만나자. 시간은 추후에 서로 조정하자."

"바쁜 프로젝트가 다음 달 초에 끝나니까 중순쯤 날짜를 한 번 맞춰보자."와 같이 어느 정도 조율 가능한 여유를 두고 얘기를 한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작은 약속이 모여서 굳건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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