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Panic Disorder)가 연예인병이라는 수식어가 된 지는 몇 년 된 것 같다.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고생을 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특히 김구라는 공황장애 전도사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공황장애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의 공황장애 발병률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못 느꼈지만 요즘은 넘쳐나는 의학지식 때문에 공황장애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돼서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공황장애인가 봐."라고 가볍게 얘기하기보다는 좀 더 의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정말 공황장애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공황장애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우며 끔찍한 병이기 때문이다.
아~ 난 연예인도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연예인도 아닌데 왜 공황장애에 걸렸을까? 물론 나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좀 더 전문적으로 얘기를 한다면 공황장애 이전 단계인 공황발작(Panic Attack)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공황장애는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경험하는 경우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공황발작의 상위 개념의 질병이다.
두 번의 공황발작을 겪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공황발작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두 번의 공황발작만으로도 이미 나는 공황장애의 끔찍함을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공황장애 전 단계인 공황발작은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 걸까?
미국정신의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공인한 국제 질병분류체계진단 편람이 DSM-5(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정신병을 진단하는 기준이 되는 통계편람인 DSM-5에 의하면 공황발작은 갑작스럽게 엄습하는 강력한 불안과 더불어 13개의 증상 중에서 4개 이상의 증상이 나타나야 비로소 공황발작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13개의 증상을 살펴보면
1.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2. 진땀을 흘린다
3. 손발이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4. 숨이 가빠지거나 답답하고 숨을 쉴 수 없게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6. 가슴이 조여들거나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진다.
7. 속이 메스껍거나 거북해 토할 것 같은 구토감을 느낀다.
8. 어지럽고 몽롱하며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9. 오한이 나거나 몸이 화끈거리고 달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10. 손발이 마비된 것처럼 둔해지거나 찌릿찌릿 저린 느낌이 든다.
11.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자신과 주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12. 자기 통제력을 잃거나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공포스럽다.
13. 이러다가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낀다.
이상 13가지 중 4개 이상의 중상이 나타나야 공황발작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중 한 두 가지의 증상만으로도 죽을 만큼 충분히 고통스러운 느낌이 든다.
나는 첫 공황발작이 왔을 때 전철 안에 있었고 공황발작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중 7가지의 증상이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나타났다.
금방 미쳐버릴 것 같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질식할 것처럼 숨을 쉴 수없어서 전철 안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죽는구나, 내가 길거리에서 객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공황 발작이 온 이유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원인은 노안으로 인해 렌즈삽입 시술을 한 것이 이유였다.
그로 인해 "만약에 잘못된다면 어떻게 하지. 다시는 앞을 볼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결국 공황장애는 불안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시술이 잘못되어 렌즈가 나의 각막과 유착이 된다면, 만약에 내가 빼고 싶다고 해서 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평생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고, 미칠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감이 밀려온 것이다.
그렇게 첫 공황발작을 시술을 마치고 감염방지를 위해 시술한 눈을 붕대로 단단히 고정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겪었던 것이다.
나는 숨이 안 쉬어지면서도 다행히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지는 않은 채 다음 역에서 황급히 내렸다.
만약에 머릿속에 든 생각대로 행동을 했다면 세간에 전철 노출녀로 동영상이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숨이 안 쉬어져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빠르게 숨을 몰아쉬면서 10분 정도 지나자 죽을 것 같은 마음이 서서히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의 나는 숨을 쉬지 못해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는 죽음을 앞에 있는 작고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공황발작으로 죽지는 않지만 죽을 만큼 힘들다
두 번째의 공황발작은 집에서 겪었다.
여느 때처럼 소파에 누워 있다가 역시 "만약에 내 눈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이라는 같은 생각을 했고 다시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당장에 119를 불러야 할 것처럼 숨이 안 쉬어져서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와 숨을 짧게 끊어 연거푸 몰아쉬었다.
하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이미 나는 공황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좋아진다는 것 역시 지난번의 경험과 이상심리학을 공부한 탓에 알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금방 숨이 넘어갈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본 아이들은 당장 119를 부른다는 것을 만류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증상이 잦아들고,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렌즈 삽입술을 그렇게 썩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번 모두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같은 증상을 겪게 된 것이다.
시술한 것을 후회하고 가능하다면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을 만큼 맘에 들지 않지만 더 이상 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공황발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미 나는 두 번의 극한 경험으로 공황발작이란 놈을 완벽하게 파악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몇 번 더 공황발작을 겪었다면 공황장애로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할 수도 있었다.
강박증도 그렇고 공황발작도 그렇고 이런 일을 내가 직접 경험할 때마다 심리학 전공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장애는 별난 사람들이 겪는 질병이 아니다. 점점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살다 보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정신장애를 겪을 수 있는 흔한 병이 돼버렸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증상일 수도 있고, 만성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인해서 병원 응급실 근처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증상이 나타나 119를 부르면 119가 도착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기 이전에 발작 증세가 사라진다.
대개 10분에서 15분 이내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증상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이 가까워지면서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에 증상이 급격히 좋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황발작은 불안할 때 느껴지는 신체적인 감각을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고 파국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함으로 인해 유발된다.
즉 별것 아닌 신체감각에 대해 일시적으로 왔다가 조금 있으면 사라지는 신체적 이상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이고 과장스럽게, 치명적인 재앙이 온 것으로 잘못된 해석을 함으로써 엄청난 불안과 고통, 공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생기지도 않은 일에 미리 예기불안을 함으로써 또 그런 공황발작을 경험할까 봐 항상 불안해한다.
나는 원인을 알고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황발작은 없었지만 공황발작이 반복되거나 공황장애로 이어질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금방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만일을 위해 공황장애 약을 상시 준비하고 있으면 부적처럼 마음이 든든하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다 공황장애 약이 떨어졌을 경우 공황장애가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공황 장애가 올지도 모른다. 결국은 불안의 문제인 것이고, 어차피 10여분이 지나면 괜찮아질 텐데 말이다.
공황장애는 만성화되기 쉬운 질병이고, 만성환자는 대다수 우울증을 경험한다.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힘든 질병이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서 뭐 하나 하며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와의 상담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들어보니 결국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거잖아."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원인도 알고, 경험도 했고, 학문적 지식도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한번 경험을 하고 나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당장 응급실 옆으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삿짐을 쌀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는 그런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