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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03. 2022

부부싸움 I

내 브런치 절대 읽지 마

평소 글을 쓸 때 누군가에게 읽어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하지는 않는 편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쭈욱~ 쓴 뒤 폴더에 저장을 해 뒀다가 몇 번의 수정 보완을 거쳐 글을 마무리한다. 나의 이런 루틴은 브런치라고 다르지 않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의 두 번째 책이자 단독 출간작인 부모교육 지침서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의 경우에는 브런치와는 조금 달랐다. 상담과 자유학기제 수업 중 경험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발달과정이나 심리 이론적인 부분을 적용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면이 있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자녀교육의 팁이나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머릿속의 생각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십 번의 수정 보완을 하고 교정을 거쳐서 탄생했다.

그러나 브런치는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와는 다르게 나의 경험이나 요즘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심리적, 신체적, 정서적인 변화에 대해 적고자 하는 글이기에 나만의 글쓰기 루틴에 더더욱 충실하다. 


그런데 남편과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글은 상황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혹시 나의 기억에 왜곡이 있을 수도 있고 남편과 나의 기억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내 루틴대로 글을 쓰고 발행을 하기 직전에 크로스체크를 하고자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한다. 


이런 건 너무 흔하지 않아?

지금까지 5편의 글 중 남편과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글은 둘. 

첫 번째 글 ‘60은 처음인지라’와 이전 글인 ‘당신에게 운전을 배운다면 내가 당신 딸이다.두 편이다.

이전 글을 작성해 놓고 ‘발행하기’를 클릭하기 전 남편에게 읽어 보라고 노트북을 넘겼다. 그런데 남편은 겨우 제목과 부제목 정도 읽었을까? 정말 단 몇 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대뜸


“이런 글은 많잖아. 이런 주제는 너무 흔하지 않아?”


하고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멘트를 날린다. 


‘몇 줄 읽지도 않고 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지?’ 

내 글이 흔해빠진 그렇고 그런 글인 것처럼 손쉽게 얘기하는 남편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 

글 한 편이 나오기까지의 내 노고를 폄하하는 것 같아 몹시 언짢아져 남편에게 대갚음을 했다.




“당신, 딸랑 몇 줄 읽고 전체를 다 본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되는 것 아냐?. 

그리고 어차피 글의 주제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새로운 주제가 화수분처럼 샘솟는 게 아니야.

같은 주제로도 경험치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경험을 덧입히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을 해서 전혀 다른 글이 탄생하는 거야.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 그렇게 많을까?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일, 천지가 개벽하는 일, 난생처음 겪는 일, 듣도 보도 못한 금시초문, 미증유의 일이 흔하게 일어날까?


요즘처럼 생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코로나 상황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거잖아. 늘 있던 일이라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미리미리 대처를 했겠지


예전에 다른 사람이 경험했던 일들은 나도 경험할 수도 있고 같은 주제로 글을 쓸 수도 있어. 

주제를 코로나로 했다고 모두 똑같은 글은 아니잖아. 

세계 인구 80억 명의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코로나에 대한 나만의 색다른 글이 될 수 있어. 


아무리 같은 주제로 글을 썼다 해도 나의 경험, 나의 느낌, 나의 표현으로 풀어쓴다면 그 글은 예전에 본 적 없는 나만의 글이 돼. 그것이 나의 스토리가 되고 나의 스토리들이 쌓이면 나의 히스토리가 되는 거야.”


“아니, 누가 뭐래” 


“당신은 항상 그렇더라, 좋은 말, 긍정적인 말, 힘을 주는 말, 인정해 주는 말을 하는 법이 없어. 

어떻게 해서든 트집 잡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 같아. 


내가 글을 한 편 쓰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 줄 알아? 

안다면 당신은 이렇게 쉽게 말을 못 할 거야.

먼저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에 대해 며칠을 고민해. 


그리고 일단 주제가 정해졌으면 글을 쓰면서 보다 적합한 단어나 문구로 쓰기 위해, 식상하지 않은 단어나 표현을 하기 위해, 오류를 줄이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몇 번을 확인하고, 미심쩍은 부분은 사전도 찾아보면서 고민 고민을 하면서 글을 쓴단 말이야."

"일단 글을 써 놓고도 오탈자는 없는지, 더 좋은 표현은 없는지, 문장은 매끄럽게 연결이 잘 되는지 적어도 열 번쯤은 썼다가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한 편의 글이 나와. 

그런데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쓴 글을 단 몇 줄 읽고 다 아는 양 판단하고, 트집부터 잡으려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모든 작가분들의 작업 패턴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신은 좋은 점, 잘한 점에 대해서는 절대 말을 안 하고 못 하고 나쁜 것만 굳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으려고 한 단 말이야. 당신은 매사에 늘 그런 식이야."


“아니...”


“내가 전에 당신에게 운전을 배우면서 다시는 당신에게 운전을 배우면 당신 딸이라고 한 뒤 당신에게 운전을 배웠어, 안 배웠어?”


“안 배웠지”


“그래,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내가 다시는 당신에게 내 글을 보여주지 않을 거야. 당신도 앞으로 브런치에서 내 글을 찾아서 읽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마. 절대로!!!”


나는 입에 성능 좋은 모터를 달아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따다다다다다 거리며 언젠가는 한 번쯤 말하리라 벼르고 있었던 남편의 나쁜 버릇까지 들먹이며 울분을 토해 냈지만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남편은 ‘이런 글 많잖아. 이런 주제는 너무 흔하지 않아?’라는 두 마디를 한 대가로 지난 일까지 소환당한 채 일방적인 나의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나는 남편의 손에 들려 있는 노트북을 빼앗아 기억의 오류가 있거나 말거나 ‘저장하기’를 눌렀다.




내가 남편에게 화가 났던 부분은 제목과 부제목 정도만 읽고 지레짐작해서 말을 한 것 때문이었다.

만약 끝까지 다 읽어보고 난 뒤에 비판을 하거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면 너그럽게 수용을 했을 것이며, 굳이 지난 일들까지 소환해서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본디 글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다음부터는 독자의 몫이다. 

독자는 글을 읽고 난 뒤 얼마든지 비판이나 지적을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과 읽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 있으니까. 

비판이나 지적을 독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다름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해야 하는 것 역시 성숙한 작가의 덕목이다. 


내 글이 그렇게 형편이 없나?

그런데 남편은 몇 줄 읽지도 않고 제목부터 태클을 거니까 그만 뚜껑이 열리고 지난날 남편이 했던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좌르륵 펼쳐졌다. 

'맞아, 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었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리고 마치 래퍼 '아웃사이더'가 속사포 랩을 하듯이 남편이 미처 다 소화시키지 못할 만큼 단숨에 말을 와르르 쏟아냈던 것이다.


그러고도 한동안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거리다가 현타가 왔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는 글을 쓰지 못하나? 능력도 없는데 괜히 브런치를 시작한 건가’ 하는 소심한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내 글에 대해 자책을 하면서 선뜻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부부싸움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부 싸움한 것을 동네방네 알리는 게 뭐 자랑스럽고 즐거운 일일까 싶지만 부부싸움을 커밍아웃하는 것은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글을 써 작가의 서랍에 저장을 해놓고도 몇 날 며칠을 망설이며 고심하다가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분~ 우리 부부 싸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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