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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내이팅게일 May 05. 2022

간섭

중재


‘교육을 하려면 간섭이 필요하다. 라틴어 educare는 원래 '휘어진 것을 바로잡다'라는 의미다. 하지만 교육은 늘 이율배반적이다. 이끌어주면서 동시에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며, 간섭하는 동시에 손대지 말아야 하며, 잡아당기는 동시에 풀어주여야 한다. 한쪽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건 잘못이다. 연령과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더 이끌어주고 어떤 경우에는 더 놓아주어야 한다. - 부모의 권위 중에서’


누군가의 삶에 간섭한다는 것, 누군가가 내 삶에 간섭하는 것, 모두 싫다. 나는 나와 세상 사람들 모두 자율성을 존중받는 삶을 원한다. 그래서 소아 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소아정신과의 환경 치료와 지침이 불편하기도 했다. 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만이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삶의 소중함을 얻을 수 있기에 그들의 죽음의 경험 또한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누군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고 통찰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한 개인의 특성과 독창성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어쩌면 모든 것을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이어져 가기도 했다. 어떤 것을 하든지 자신이 선택한 일이며 그렇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회피했다. 도망 다니다 결국 마주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기 위해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선생님들과 나누었다.


‘정신과에서 intervention 이란 말을 중립적인 것처럼 흔히 사용하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간섭, 개입이고 환자입장에서는 절대 중립적이지 않고 불편하다. 자폐를 진단기준 안에 넣지 않고 진화론적 시점에 신경 다양성의 새로운 종으로 보고 ABA치료를 그만둬야 한다. 정신의학은 철학이다. 그렇기에 늘 고민해야 한다. 병내가 하는 정신과 병동의 치료에 대한 고민들이 맞다 아니다의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단 그런 고민 자체가 귀하고 치료적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이 글에는 적지 않은 현대 임상 현장에서의 한계점이나 시스템의 문제 상황 등의 포괄적인 나의 고민을 듣고, 오랜 시간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셨던 선배 간호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문제 상황에 끼어들고 중재를 하는 것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다. 나도 내 생활에 누군가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서 더 환자들이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점들을 공감하며 거부했던 것 같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이런 나의 고민이 헛되지 않고 귀하다는 말씀이 참 감사했다.


정신과에서는 ‘저항’이라는 표현이 있다. 환자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동시에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러한 양가감정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치료의 과정에서 이를 저항하며 현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때 치료자는 저항하는 내담자를 수용해주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저항과 싸워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싸움을 잘 이겨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를 하거나 훈련을 한다. 나 또한 저항하는 상황 혹은 사소한 삶의 패턴들 사이에서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발견하고 개입해야 함을 느꼈다.


과도한 개입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치료자로서 나는 그런 불편함을 비집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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