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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내이팅게일 May 12. 2022

애착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 [당신이 옳다] 중에서’


나는 자주 엄마와 누나의 묘한 감정의 기류들 사이에서 불편했다. 내가 보기엔 모녀 지간에 애착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전에 엄마에게 [칭찬의 기술]이라는 책을 건네고는 저항하던 엄마의 모습에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절에 돌아오는 차에서 운을 띄었다. 나는 엄마와 누나의 사이가 아빠와 나처럼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엄마는 세월이 지나서 인지, 본인도 답답해서 인지 저항하지 않고 무엇 때문인지를 물었다. 나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활개 치는 우리 집안의 대화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그리고 누나와 대화를 할 때는 좀 더 감정적인 공감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50년을 넘게 살아온 엄마의 말 그릇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냐만은 그래도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끔은 투덜거리는 누나를 보듬어 달라고 했다. “외로웠겠다.”, “힘들었겠네.”, “오늘도 수고했어.”와 같은 말들을 두고 엄마는 말을 아끼거나 가르침을 주기 바빴다. 세상에는 많은 채널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 충분히 설명해준다. 30년을 넘게 살아온 우리가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모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따뜻한 엄마의 품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책임감과 당위적 사고들의 근원지를 찾기도 하고 누나의 불안과 부담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번 상담을 받았던 내용이 기억이 났다.


상담을 통해 ‘나는 왜 이렇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유치원 때부터 나를 누나에게 맡겼다. 누나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기도 했고, 누나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모든 생활을 누나와 함께 하다 보니 한 살 차이인 누나에게 내가 귀찮은 짐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존재가 ‘짐짝’이 되어버린 순간,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의 생존 수단은 누나와 누나 친구들에게 밉보이지 않는 것이지 않았을까. 어린 누나에게 나란 존재는 참으로 무거운 짐이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저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싶었을 텐데 동생이라는 하나의 임무를 데리고 다니며 누나도 꽤나 아등바등 살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응석을 부릴 수 없었고, 겁쟁이 꼬맹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나이에 비해 성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게 어른 아이가 되어갔다.


엄마에게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리고 엄마의 품에서 보호받았어야 했을 그때에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했던 누나의 삶이 너무 안쓰럽다고. 애쓰고 살았을 지난날을, 힘겹게 보낸 오늘 날을 토닥여 주기를 바랐다. 엄마는 이제 와서 뭘 어떡하라는 듯이 “지금 다 커버렸는데 뭘..”이라고 말했지만 부모는 평생 자식에게 미안해하며 산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가 좋은 안전 기지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당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응원한다. - [말그릇] 중에서’

 

엄마를 너무 다그친 것만 같아서 말을 더했다. 나와 누나는 엄마의 버팀목 속에서 안정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엄마는 누구보다 누나와 나를 사랑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엄마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기에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듬어 주고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그런 상황 속에서 항상 힘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어느새 내 얼굴은 눈물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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