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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술이 빠져서 쓰나 Ep5)

Ep5)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정상에서 맥주

by 인 더 술 독

'개안하다'는 표현은 언제 쓰이는가?

나는 보통 알프스의 설경을 보면 '개안하는'느낌이 든다.

높으면 높을수록 날씨 상관없이(내가 가는 날에 날씨가 늘 좋았던 탓일지도 모르지만)

청명하다 못해 투명한 것만 같은 푸른 하늘과

눈이 부시게 하얀 눈이 덮여있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자연의 바위 그자체인 봉우리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매일 작은 화면에 갇혀 살던 눈이 아주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2023년 겨울엔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서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트래킹 하는 길에 그 기분을 처음 느꼈다.

만년설이 반겨주는 스위스란 과연 어느 누가 가더라도

눈이 '개안하는'기분을 느낌에는 당연할 것이다.


나는 총 3번의 알프스 산맥 방문을 했고,

모두 다른 도시로부터 시작된 방문이었다.

22년 여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운터스베르크,

23년 겨울에는 스위스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24년 겨울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티롤으로 방문을 했다.

그 중 오늘은 24년의 인스부르크 에서의 경험이다.


KakaoTalk_20241017_193443766_05.jpg 인스부르크 의회 앞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일할 맛 날것이다.


겨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하얀 눈이 더 하얗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마 풍경을 가리는 가로수의 잎이 하나도 없어 색이 대비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정은 당연히 하염없이 오르는 일이었다.

케이블카, 퓨니큘라 등 이것 저것 타고 올라가다 보면

알프스산맥 중턱에 턱하니 올라와 있는 나의 해발고도를 볼 수 있다.


KakaoTalk_20241017_193443766_01.jpg 생각보다 엄청 높아지는 느낌이다. 알프스가 크긴 크고, 높긴 높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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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미친 풍경이다. 저렇게 까지 멀리 보이는구나.

하늘이 이렇게 파랗구나.

눈은 이렇게 하얗고, 바람은 미친놈같이 부는구나.


아주 콩알만하게 작아진 도시 건물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높은 곳에 올라왔구나 실감이난다.

그리고 저 멀리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를 보면

'개안'을 하염없이 하는 듯, 전자파에 절여진 내 눈을 뽑아 씻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전자파 절임이 된 내 눈은

솔직히 마음속으로 알프스를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프스를 올 때마다 놀라는 것은,

이 알프스의 스키장은 날 것 그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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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죄다 스키자국이다. 저 멀리 가운데 보이는 저것들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그냥 스키끼고 터벅터벅 올라가서 슬라이딩해서 내려오는 코스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하얀 곳이 다 슬로프인 셈이다.

쪼그만 꼬마애들도 아무 안전장치 없는 저기를 혼자 슥 슥 내려오는걸 보고 있자면

용감한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유럽 사람이라면 겨울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마음껏 개안을 하고 난 후 중턱으로 내려온 나는

기념품 샵과 작은 썰매장, 작은 펍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거의 유일한 펍이라 사람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스키타고 내려올 수 있는 중간 지점이라, 사람들이 잠깐 쉬러도 오는 코스기도 하고,

케이블카 타고 올라오는 중간지점이기도 해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https://maps.app.goo.gl/2fZc3dwZqsxsaEn28


나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자 자리가 나는 곳을 찾았고,

앉아서 주문을 했다. (오늘은 술얘기가 너무 뒤에 나온 느낌이다.)

노래도 시끌벅적하게 틀어놓고, 사람들도 복닥복닥하고,

주변 풍경은 푸른색 하얀색으로 미친듯이 칠해놓은 듯한 풍경이었으니,

그 분위기가 안좋았다면 그건 오롯이 날씨탓일 것이다.

물론 내가 갔던 날은 운이 좋게도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KakaoTalk_20241017_193443766.jpg

아마 내가 먹은 맥주의 해발고도 중에서 가장 높은 맥주와 감자튀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음식은 감성맛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고 상당 부문 공감한다.

사람 많은 것은 약간의 오류였지만,

저 푸르고 하얀 풍경을 마주보고 이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있으면,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마도 나의 해발고도만큼 높았던 행복지수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 술얘기는 굉장히 짧았지만,

너무도 강렬했던 경험이었다.

좋은 감성이 주는 최고의 맛은 아무때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 맛에 여행다니지..! 싶은.

나의 미각, 시각세포를 모두 만족시킴과 동시에

감성을 건드린 4dx적 미친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끝으로, 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이 미친 풍경을 오롯이 느끼려면 저정도는 해야겠다 싶었던게 패러글라이딩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해야만 했지만,

앞으로 어떤 기회가 찾아온다면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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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미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피사체 하나하나도 멋있지만 그걸 완성 시켜주는 정신나가도록 아름다운 배경에 넋을 놓고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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