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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로 Aug 14. 2022

한예종 연극원에서 네이버 개발자가 되기까지 5편

수평적인 회사에 들어가기

5-1 어디로 이직해야 할까


 이직을 준비할 때 어떤 회사에 가는 게 좋을까.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대표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번만큼은 직원의 의견을 정말로 존중해주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프로젝트 일정을 산정할 때 개발자의 의견을 존중하는지도 중요한 포인트였고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는지도 중요했다. 그렇게 지원한 회사들 중 두 군데에서 최종 오퍼가 왔다. 


 A 회사금융 스타트업에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이전 회사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CEO와 유명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CTO가 있어서 팀의 미래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개발팀 문화가 괜찮다고 생각했고 워라밸을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B 회사클라우드 회사로 코스닥 상장사였고 기술적인 성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추천을 받아 지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미리 알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두 회사 중 어느곳을 갈까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를 선택할 때 스스로 다짐했던 기준을 떠올려봤다. 그럴수록 이전 회사 대표가 수직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이직하려고 하는 이유는 수직적인 문화 때문이였지. 나는 결국 A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업계에서 A 회사 대표의 평판이 괜찮았던 반면 B 회사는 다소 일방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B 회사가 야근을 꽤 하는 편이라는 점도 한 목했다. 첫 회사에서 초과근무를 하면서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최대한 워라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굿바이 마이보스


5-2 저희는 서로 '님'을 붙여 존대해요


 A 회사에 최종 면접을 볼 때가 기억난다. 동료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존대를 하고 개발 업무의 일정을 산정할 때 개발자의 의견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로 IT 회사의 재택근무가 많이 보편화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는 극히 소수였다. A 회사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일하는 걸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었다. 업무 문화에 대해 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얘기하고 고민하는 회사라면 믿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다. 첫 한 달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기존 코드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재택근무를 시도하는 중이라고 들었던 것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는 개발자는 많지 않아 보였다. 이전 회사에서 외국인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다가 새회사에 와서 혼자 덩그러니 일하고 있자니 조금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전직장 동료들과 카톡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할수록 좀 더 있어볼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잘 이직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작심해서 이직했던만큼 새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서 좋은 모습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필로님, 질문 같은 거 하지 마시고 이 코드 보세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 개발자에게 모르는 서비스 코드가 있어서 질문을 했다. 코드에 대한 설명을 듣길 기대했지만 기대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군대 조교 출신이었던 그는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내 이름 뒤에 '님'을 붙이면서 '물어보지 마세요'라는 말로 존대해주었다. 그는 분명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규 입사를 한 입장에서 기존 코드를 물어보지 않고 업무를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쳐 말포이

 나는 CTO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분들도 어려워하고 있으니 잘 얘기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CTO는 군대 조교 출신 개발자를 잘 타일렀다. 예의를 지킬 줄 알았던 그 개발자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한테서만 들은 피드백은 아니었던지 알겠다고 대답했다. CTO는 중간에서 직원의 고충을 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5-3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사무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까. 여느때와 다를 것 없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날이었다. 갑자기 건너편 책상에서 곰 한 마리가 포효를 하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으!! 아아아!!! 

이게 무슨 소리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진원지를 보니 CTO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그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마저 일을 했다. 하....후... 하악...후.. ??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한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CTO가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슬랙에서 온 알림을 보니 버그가 났던 모양이다. 

 

 하루종일 사무실 전체에 울려퍼지는 그의 비명소리와 한숨소리를 들으니 고통스러웠다.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사무실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CTO는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자기가 힘들다는 걸 알아달라는 듯, 아니 듣던 말던 관심도 없다는 듯 더욱 크게 비명을 했다. 종소리가 들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슬랙에서 에러 알림이 뜨면 몇초 뒤에 들려올 비명소리에 귀부터 막는 멍멍이가 되어 있었다.

비명지르는 곰

 게다가 내가 들어온지 몇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권고사직을 당하는 일들이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질문 같은 거 하지 말라던 군대 조교 출신 개발자와 버그가 생길 때마다 비명소리를 지르던 CTO, 권고사직을 당하는 직원들. 내가 믿었던 수평적이라는 개발 문화는 온데 간데 없었고 회사의 미래는 처음 입사할 때와 달리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솔직히 눈물이 났다. 이전 회사와 달리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동료도 없었고 고심 끝에 선택한 회사가 기대했던 바와 너무 달라서 후회를 많이 했다. 또.. 이직인가... 


+ @: 아니 그래서 대체 네이버는 언제 가는 건데요

+ 나: 송구합니다만 20편 더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고갱님


...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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