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부부가 함께 아프다 보니, 아침밥을
먹고 20~30분쯤 지나면 숭늉 한 사발을
앞에 두고 각자 약봉지 하나씩을 챙긴다.
TV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확인도
안 하고 각자 손에 쥔 약을 털썩 입에
넣는다.
그러곤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앗, 우야꼬! 당신 약 내가 먹었다.
어쩌지?”나는 황당해 소리친다.
“여보! 화장실 가서 토해! 잘못되면
죽는다!”죽기는 싫었던지,
마누라는 변기통을 붙잡고
“유액, 우액!”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런 일, 마누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느 날은 내가 먼저 약을
먹으려 는데, 마누라가 쟁반에 물 한 컵,
약 한 첩, 그리고 사탕 한 알까지 곱게
챙겨 와서 내민다.
담배를 끊은 뒤로 사탕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꿀꺽 삼켜 버렸다. 그때, 저쪽 방구석
에서 외치는 소리. “여보! 먹지 마세요!
그거 내 약봉지예요!”
헐! 이미 목구멍 넘어가고 없는데…
왕짜증이 난 나는,
마누라를 향해 쏘아붙인다.
“봐라, 범식이 어미!
도대체가 정신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내가 약물 중독으로 죽으면 당신 과부
되는 거다.
정신 좀 챙겨라, 좀!”
그런데 이 할망구,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한쪽 방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내가 당신한테 약을 주더라도,
꼭 확인하고 잡수셔요!”
도리어 역정까지 낸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약봉지를 바꿔 먹어도 죽지 않고,
오늘도 살아 있다.
서로의 말을 헛들으며,
소통은 오늘도 삐걱대고,
깜빡깜빡 정보 전달은 자꾸 어긋난다.
늙어가면서 뇌신경은 둔해지고,
집중력은 뚝뚝 떨어지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해 간다.
그 탓에
감정도 점점 거칠어지고,
건망증은 쌓여만 간다.
띨띨해져 간다, 우리 부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밭에서 실룩거리며 걸어오는
몸뻬 바지 입은 할망구의 모습.
허리인지, 궁둥이인지 모를 그 뒷모습.
그러나 커다란 두 눈동자엔
여전히 웃음이 가득하다.
나는 오늘도 그 웃음에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낸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다오,
약봉지를 바꿔 먹어도 괜찮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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