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죽고 싶다”는 말씀새빨간 거짓말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우리 아버지 “죽고 싶다”는 말씀

새빨간 거짓말



요 며칠, 농사일이 좀 바빴다.

일머리를 틀어놓고 나니, 문득 우리

아버지 ‘배탈 사건’이 떠올라 몇 자

끄적여본다


며칠 전, 동네 마을회관에서 노인회

회식이 있었다.동해에서 회를 잔뜩

사다가 푸짐하게 음식 잔치를 벌였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어르신들

에게는 남은 회를 각 가정으로 돌렸다.


우리 아버지, 동네 최장수 어르신이시라

그 귀한 회가 아버지 앞으로 전달되었다.

문제는 내가 밭일 간 사이에 벌어졌다.

그 많은 회를 아버지 혼자 다 드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저녁에 곤히 주무셨다는 거다.

그런데 새벽녘.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토사광란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장이 뒤집히고,생똥이 터지고,

집 안팎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갔고, 결국

병원에 입원.며칠 동안 죽도 못 삼키고

지내시다가 간신히 퇴원하셨다.


퇴원하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너무 오래 사는구나… 이제 그만

가야겠다…”

그리고는 쓸쓸하게 덧붙이셨다.

“큰 아야, 아랫도리에 힘이 없구나…”


사실, 이번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96세 노인이 큰 탈 없이 회복되기란

쉽지 않으니까.


마을 어르신들도 걱정이 컸다.

“이번에 초상 준비는 해놔야 하네.”

“저 연세에 저 정도면, 큰 고비지…

이런 말들이 속속 들려왔다.


며칠 뒤, 아버지는 집 안에 안 보이셨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부엌에서 쿵쾅거리

며 구시렁구시렁하셨다.


“이 영감탱이, 죽지도 않고 또 어딜

갔니!”

“많이 먹지 말라 했는데, 지 혼자

다 먹고 나는 맛도 못 봤다“


말도 없이 또 어디로 간 거야, 응?”

동네 어귀, 마을 골목, 들판 끝까지

다 찾아다녔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아비냐?”

“네, 아버님.”

“응급실인데, 니 좀 와라

계산 좀 해라.

영양제는 건강보험이 안 된단다.”


나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 3시간째 영양제를 맞고

계시는 아버지. 그러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큰 아야… 내가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피식 웃었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 아버지는

생의 영양제를 맞으며

아주 천천히, 아주 단단하게

다음 생을 살아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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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멤버십(2025.10.9)으로

원본(수정되기전)재발행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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