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사라진 사람들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이름이 사라진 사람들



그분의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자주 가는 동네 마트 앞 벤치에

앉아 계시던 분.


겨울이면 털모자를 눌러쓰고,

여름이면 종이부채를 곁에 두고 있던,

그 익숙한 얼굴의 그분.


어느 날부터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아, 그 할아버지요? 병원 가셨대요.”

또 누군가는,

“요양원에 갔다던데요.”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그렇게 이름을 잃는다.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의 서사가

‘어르신’, 할아버지,‘할머니’,

‘그 노인네’ 같은 말로

단순화되고 흐려진다.


이름이 지워진다는 건,

존재가 흐려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든 이름으로 불릴 때

존재가 뚜렷해진다

그 이름 속에 살아온 날들이 깃들어

있고, 부르면 돌아보는

‘나’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이름’은 점점 불리지 않는다.

심지어 자식도, 손주도

어느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지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 이름은 여전히 거기 있는데,

세상은 점점 그것을 보지 않는다.


노년의 시간은

단지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도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이름이 있다.

나는 바란다

누군가 휠체어에 앉아 있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눈을

가졌으면.


그리고 적어도, 한 번쯤은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주었으면.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이 지워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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