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당신 하고는 코드가 안 맞아
‘코드(chord)’는 우리말로 ‘화음(和音)’
이라 한다. 화(和), 곧 조화로울 화. 음(音),
곧 소리. 즉, 코드란 높낮이 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만들어내는 조화
의 울림이다.
‘도’ 하나만으로는 그저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미, 솔이 덧붙여질 때, 비로소 하나
의 세계가 열리듯 코드가 된다. 도-미-솔,
혹은 도-솔-미. 때론 도-미만으로도 충분
히 감동적이다.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울려 나오는 음의
흐름, 그 소리는 우리 삶의 결이자, 마음의
떨림으로도 이어진다. 나이 들어 살아가다
보면, 사람 사이에서도 문득 ‘코드’라는 말
을 떠올릴 때가 많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 이 사람
과는 코드가 맞는 것 같아.” 하고 느끼는
순간. 말이 통하고, 생각이 겹치며, 묘하게
웃음의 타이밍까지 닮았을 때, 그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울리는 조화로운 화음이다.
요즘 나는 온라인 글방에서 이런저런 글을
올리며 살아간다. 시에 대한 단상, 수필에
대한 감상. 댓글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센스 있게
위트를 건네는 사람, 남의 글에 따뜻하게
공감하고 정성껏 반응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가까이 있다면 와락 끌어안고 “이뻐
죽겠네!”하고 외치고 싶다.
어쩌면 그런 글 너머로 ‘짝지’를 만난 듯한
설렘이 일기도 한다. 이 사람이라면, 정말
코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반대로,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도 있다.
자기 체험을 말하라 했더니, 엉뚱한 방향
으로 혼자 떠들거나, 남의 글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자기 글처럼 내놓는 경우. 그럴 땐
솔직히 머리통을 살짝 쥐어박고 싶은 충동
도 든다.
내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 흐름에 맞춰
야 할 텐데. 그저 자기 박자대로 북을 두
드리는 사람들. 그건 코드가 아니라 ‘잡음’
이다. 늙어서도 사람 사이엔 코드가 필요
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코드가
딱 맞으면 말이 필요 없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오가고, 미소가 흐른다. 가령, 아내
가 속으로 ‘오늘 밤 영감이 또 꿍꿍이를
생각하나 보다’ 싶으면 슬며시 흰 타월을
개켜드는 손길도, 그건 오래된 악보 위에
조용히 올려지는 예의와 배려의 음표다.
그것이 바로 둘 사이의 조화로운 화음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편이 밤새 이웃집을 돌며
화투판을 전전하고, 씻지도 않고 누워버린
는 아침. 그때 아내의 마음은 “아, 이건
코드가 영 안 맞는다.”로 기울고 만다.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일은 어디선가 먼저
물을 끓이고, 어디 선가 조용히 문을 닫는
마음의 연습이다. 그 작은 배려의 음 하나
가 없을 때, 조화는 쉽게 깨진다.
나는 앞으로도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어울
리고 싶다. 노래방에서 다음 곡을 슬쩍 찾
아주는 에티켓, 뚱뚱하고 못생 겼더라도
자기 관리를 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나이 들수록 육체는 멀어지지만, 정신의
손뼉은 더 자주 마주쳐야 한다. 약봉지를
뜯으며 “물 좀 줄래요?” 할 때,“손발이
없나? 지가 가져다 먹지!”라는 말이 돌아
온다면 그건 단호하게 ‘불협’이다.
같이 살다가 언젠가 어느 한쪽이 먼저 떠
나게 될 그날까지, 서로의 삶을 조율하고,
맞춰가고, 조용히 배려하는 그 마음의 코드
가 도-미-솔처럼 울려 퍼지기를.
그 화음이 삶의 끝자락까지 이어지기를.
나는 바란다. 그 울림이 조용하고도 아름다게,
우리의 삶 속에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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