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아기 울음 대신 들리는 소리
서울의 아파트 단지는 조용하다. 바쁜
하루의 소음을 정리 한 저녁 무렵,나는
종종 집 주변을 산책한다. 평범한 일상
이지만 그 속에서 이상한 정적이 느껴
진다.
예전에는 아기 울음소리, 아이들 뛰
노는 소리, 젊은 엄마들 의 웃음소리
가 골목 사이사이를 메우곤 했지만,
이제는 그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작고 예쁜 강아지를 품에 안은
젊은 부인들의 모습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유모차 대신 강아지용 유모차를 밀고,
기저귀 대신 간식을 챙기는 그들의
일상은, 어쩌면 이 시대의 새로운 ‘
모성’일 지도 모른다.돌이켜보면,
내가 어렸을 적 골목길은 아이들 로
북적였다. 저녁 이면 아기 들이 울고,
누나와 형들이 뒤엉켜 놀고, 마당에
서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수다를 떨었다. 누가 울어도 다 같이
나와 봐주고, 누가 다쳐도 서로 챙겼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던 시절, 울음과 웃음 이 공존
하던 그 골목은 생명이 숨 쉬는 마을
이었다.그런데 지금, 그 생명의 소리
가 사라지고 있다.아기 울음은 어느
새 이방인이 되었고, 반려견의 짖는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귀여운 강아지가 나쁘다는 말이 아
니다. 나 또한 동물과 함께 하는 삶
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다만, 생명
의 탄생과 그에 대한 환영의 기운이
점점 희미해지는 현실 앞에서 가슴
이 뻐근할 뿐이다.
왜 아이는 줄고, 개는 늘까. 이 질문
은 단순한 유행이나 라이프 스타일
의 변화로 설명되기 어렵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기 두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출산은 축복 이
아니라 '각오'가 필요한 일이 되었고,
육아는 기쁨이 아닌 '투쟁'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높은 집값, 불안정한 고용, 경력 단절
에 대한 공포, 부족한 보육 시스템은
부부의 결정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생명 대신, 위로와
정서적 교감을 줄 수 있는 강아지 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개엄마’라는 단어가 생소하면
서도 서글프다. 그 단어 에는 분명
사랑이 담겨 있다. 책임지고 돌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
이다. 그러나 그 책임과 돌봄이 아이
가 아닌 강아지를 향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자연 스러운 흐름이 끊기고 있다는
징조는 아닐까.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을 개인의 선택이나 희생으로만 돌
려왔다.출산율이 낮다며 통계를 들
이밀고, 지원책을 논하지만 정작
아이가 자랄 수 있는 ‘공기’는 여전히
메말라 있다.
아파트의 벽은 높고, 이웃은 낯설고,
가족은 멀다. 누구도 쉽게 울수 없고,
누구도 쉽게 안아 주지 않는 도시에
서,우리는 소리를 잃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바로 아기의
울음소리 였다.
가끔 상상해본다. 아파트 복도 너머
에서 아기 울음이 들려 온다면 어떨
까.잠시 시끄럽더라도, 그 소리는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이 왔다는 신호다.
처음 울고,처음 웃고, 처음 엄마를
부르는 그 순간이 반복 되어야 사회
는 계속 살아 있을수 있다. 아이가
사라진 사회는 미래가 멈춘 사회다.
이제는 물어야 할 때다.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 가고 싶은가.
개 짖는 소리만 가득한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이
나라의 미래는 누구의 품에서 자라
고 있는가.
나는 바란다. 언젠가 다시, 골목을
걷다 아기 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추
는 날이 오기를.그 울음이 사람의
온기를 되살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도시든 시골이든,
마을과 마을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마다
아기 울음소리로 다시 살아나는 날 을~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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