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날라리 신자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원조 날라리 신자


스무 살 언저리, 나는 우연히 직장 동료의

권유로 천주교 성경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

다. 1년 가까이 이어진 교육이 었지만, 정

작 신앙심보다는 청춘의 설렘이 앞섰다.


성당의 레지오 단원 활동은 남녀가 짝을

이뤄 봉사하는 구조였고, 내 짝은 유난히

예쁜 아가씨였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어 안달하던

그 시절. 하얀 미사포를 쓰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만, 신앙보다 먼저 그녀에게 빠져

들었다.6개월간의 성경 공부가 끝나면

시험을 거쳐 세례를 받게 되어 있었지만,

나의 관심은 늘 성서보다 그녀의 치맛자락

이었고, 미사 때마다 들리는 치마의 바스

락 거림은 천사의 날갯짓처럼 느껴졌다.


예수님도, 마리아 님도, 그때의 내겐 그녀

의 미소만큼 가깝지 않았다. 결국 세례는

미루고,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짝

사랑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마음만 끙끙 앓

던 날들. 수녀님껜 “정말 공부 못하네요”

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나는 웃기만했다.

그 무렵 나의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사랑

이라는 착각에 가까웠다.


그러다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순환근무

로 다시 찾은 경북의 어느 성당에서 나는

놀랍도록 낯익은 얼굴과 재회했다. 미사포

를 곱게 쓴 채 조용히 성호를 긋던 한 할머

니 그녀였다.


세월의 풍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고요하고 품위 있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

보고 환히 웃으며 가족들을 소개하던 순간

내 안에서 잊힌 기억의 필름이 재생되듯

돌아 갔다.


그 옛날의 치맛자락이 이번에는 눈물 되어

가슴을 적셨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신앙

의 무게를 실감했다. 단순한 호기 심으로

시작했던 성당 생활은, 나도 모르게 내 인

생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를

긋는 손끝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했다.나는 '날라리 신자'였다


전국을 떠돌며 공직생활을 핑계로 성당을

등졌고, 고해성사는 그저 반복되는 의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세례명은 마치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내 이마에 새겨졌고, 성당

마다 내 교적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신앙은 기도문을

외우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성찰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라

는 것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신자다. 날마

다 흔들리고, 때론 멀어진다. 하지만 이제

는 안다. 하느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으셨

다는 것을.


늙은 눈에 돋보기를 끼고, 독서대 앞에 선

다. 그 위에 놓인 성경책을 넘기며, 나는

청춘의 설렘 속에서도 외면하지 못한 어떤

부름을 떠올린다. 기도는 끝나지 않는다.

그날, 성당 문을나서며 내 발걸음은 늙었

지만 가벼웠고, 지쳤지만 맑았다.


성당 창가로 스며든 햇살이

오래전 그녀가 쓰던 미사포처럼 조용히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

그리고 나는 들었다

하늘로부터 오는 그 속삭임을.

"그대는 늦은 신자가 아니다.

다만 오래 방황한 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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