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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발걸음 Apr 01. 2024

나에게 봄을 선물하다


봄이다.

거리를 거닐면 꽃들의 손짓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색색의 이쁜 옷을 새롭게 차려입고 자기 존재를 뽐내고 있는 존재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꽃을 향해 고개를 내밀면 그곳에는 이미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와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꿀벌과 나비들이 이제 왔냐며 슬쩍 쳐다보곤 자기 일에 집중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구경하며 사진도 찰칵 찍는다.

매번 돌아오는 계절이고 매번 이맘때 피는 꽃들 이건만 볼 때마다 새롭다.


밖에서는 서서히 봄기운이 느껴지는데, 우리 집은 아니다.

초록의 생명체가 띄엄띄엄 살뿐이다.

그것도 내 손길이 아닌 아이들의 손길로 말이다.

나는 식물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물만 주면 된다고 산 화분의 식물들도 어느새 말라죽어있다.

예전엔 내가 식물 키우는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리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살기 바빠서 같이 사는 식물은 아주 가끔 쳐다봤었다.

그러니 물도 가끔 주고 집이 좁다고 난리 쳐도 분갈이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봄이 되니 화분을 하나 살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꽃을 사기로 한다.

나 자신을 위한 봄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동안 꽃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젊었을 때는 내가 꽃인데 뭐?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나이가 들어서는 어차피 시들어 버릴 텐데 뭐 하러 사냐는 생각이 컸다.

이 말을 결혼 전 남편에게도 했나 보다. (그냥 혼자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결혼 후 딱 한 번 했다.

어머님은 내 생일이 되면 남편에게 전화해서 꽃을 사주라고 이야기한단다. (남편이 해준 얘기다.)

그런데 남편은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어머님 말을 듣고 그냥 흘려버린 거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작년부터 서운했다.

내가 꽃을 사도 되지만 남편이 나에게 사주는 꽃은 나를 위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남편에게 꽃을 선물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나 자신을 위한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으니 나, 남편, 두 아들 모두를 위한 선물인 셈 치면 되니까. 




우리집에 봄 향기를 선사한 프리지어


겨울 동안 칙칙한 회색, 검은색 톤을 없애기 위해 샛노란 프리지어를 샀다.

향기가 없는 꽃도 있지만 기왕이면 봄 향기를 선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향기 나는 꽃을 골랐다.

집에 노란 꽃이 더해지자 기분도 덩달아 노랗게 피는 것 같다.

조금씩 피어나는 프리지어와 그 향기에 취해 집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만 보는 것이 아닌 온 가족이 봄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좋다.

이 화사함과 향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맘껏 즐기기로 했다.


점점 더 화사하게 이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프리지어를 보면서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첫째 아들이 꽃향기를 맡으면서 꽃을 한참 관찰하고 있다.

자연, 생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잔뜩 겁먹는 표정으로 꽃을 버리라고 한다.

내가 봄을 느끼고 싶어 산 꽃을 왜 버리라는 건지 황당했다. 

"왜 그래?"

"엄마, 여기에 OO노린재(뭐라고 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어서 잊어버렸다;;)가 있어. 이거 잘못 물리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얼른 버려. 빨리!!"

그 이야기에 둘째까지 울면서 난리다.

"엄마, 엄마, 꽃 빨리 버려. 우리 죽을 수도 있다잖아. 안돼. 빨리 버려."

하...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것이 약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아이들이 이야기한 이름을 검색해서 정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지 찾아본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야기는 없는데... 그런데 첫째 아들은 어디에서 봤단다.

꽃에 가서 도대체 뭐가 있는지 살펴보는데, 아주 아주 조그만 초록색의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린재는 아닌 것 같은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이 먼저였기에 꽃병에서 꽃을 뽑아 들고는 물을 세게 틀었다.

초록색의 그 자그마한 생명체가 사라질 때까지 물샤워를 시킨다. 

괜히 우리 집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몇 번 반복한 후에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후에 꽃을 다시 꽃병에 꽂았다.


그런데 그때 힘을 잃어버린 꽃은 환한 생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장소도 식탁에서 주방 쪽으로,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꽃 사서 보는 것도 쉽지 않구나 느낀다.

그래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면서 봄을 느끼고 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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