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짜리 양심을 지니고 살아가는가
지극히도 주관적인 시선으로 '양심의 가격'을 바라보았다.
무단횡단과 대리비
귀찮다는 이유로 무단횡단을 많이도 한다. 나 또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단횡단을 당연하다는 듯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적발 시 범칙금은 2~3만 원이라고 하지만, 당사자와 타인에게 정말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는 상황을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사고라고 말할 수 없거니와 도로에 차가 다녀도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그 1분 정도의 시간으로 인해 자신이 지닌 양심의 수준을 그만큼으로 떨어뜨리는 사람이 많다.
애석하게도, 그들 중에는 1분이라는 시간과 양심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는 수준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3만 원이라는 기준을 바라보면 더욱 위험하고도 안쓰러운 정황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사유이지만 그 기본금 3만 원 때문에 자신과 타인의 목숨부터 100배가 넘는 벌금을 걸고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음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다고는 하나, 그것은 심신미약이라는 '범죄자를 위한 정당성'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일행의 양심이 상식적이지 않은 정황을 만나면 내 지갑을 연다. 일행과 다른 누군가의 인생과 안전이 내 지갑으로 인해 지켜졌다고 생각하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심을 포함해서 술과 운전에 대한 자부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관계를 정리할 생각도 했었다.
다행히도 그가, 더 이상 그런 무식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커피와 에티켓
커피의 가격은 자릿세를 포함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인 1음료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음료를 마시고 싶지 않다면, 디저트라도 하나 먹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기준점과 가치관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자신이 카페 사장이었을 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앉아있으면 불쾌할 것이다.
글을 쓰거나 읽고 있을 때 약속이 있던 지인이 일찍 카페에 찾아올 때가 있다. 오자마자 바로 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 때, 나는 음료를 주문할 것을 권한다.
그걸 또 아까워서 안 시키려는 의사를 보이면 나는 지갑을 연다. 이때는 누군가의 안전을 위한 의도는 아니다. 그저 음료도 안 시키고 공간을 무전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내 일행이라는 사실이 창피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내 지갑을 열 때 자신의 지갑을 여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그런 양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애초에 음료를 주문했을 것이다.
5만 원과 찰나의 경계선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때는 백수였고, 담뱃값만 겨우 있던 힘든 시기였다. 백화점에 심부름을 갔을 때였는데 어떤 종업원이 5만 원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 5만 원을 주워서 주인에게 전해줬다.
행동은 바로 했지만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챙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주인이 고맙다고 조금이라도 사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의 그 5만 원이라는 돈은 나에게 너무나도 달콤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내가 힘든 정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해서 내 양심의 기준이 낮아지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에, 지금도 그 찰나의 순간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만약에, 결국은
순간 양심을 버리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목도했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이 돈이나 승진, 다른 무언가이던 간에.
떠오르는 정황과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이후의 내면까지 상상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양심의 가격이 측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날의 나는 5만 원을 가지고 찰나의 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으며, 내적으로 갈등했다.
갈등했던 정황은 지나갔지만 지울 수 없기 때문에 내 양심의 가격은 5만 원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가격이다.
누군가는 70만 원 이상일 수 있다. 핸드폰을 습득했을 때 주인을 찾아주는 사람들을 만났었고, 나 또한 절대 횡령하려고 하지 않고 주인을 찾아 주었다.
70만 원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내 양심은 그보다 훨씬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의 가격 문제만은 아니다. 당연한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떳떳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내 양심의 가격은 한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