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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광대 May 16. 2024

경계선

중간선과 경계선에 관하여



  인간관계


  영원하거나 절대적일 것 같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가족, 친구, 좋거나 친한 직장동료, 마음과 생각이 잘 맞는 지인, 사제지간까지.


  그러나 사실, 이러한 모든 관계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을, 혹은 주변을 둘러보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가족관계, 손절한 친구, 손절당한 관계, 이직, 어떠한 사건이나 정황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까지.


  어떠한 사건이나 정황 없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따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적어도 그러한 상황이나 관계가 되지 않는 이상 어떠한 사건이나 정황 때문에 인간관계를 상실하고는 한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경계선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보이지 않는


  이러한 경계선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정황은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당사자든, 상대방이든, 둘 다 그러한 정황과 경계선을 식별하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되거나 트러블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은 아니기에 평소에 자신 스스로를, 혹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서로를 대하여야 그나마 영원할 것 같거나 절대적일 것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발짝, 반 발짝


  한 발짝, 반 발짝 경계선을 넘거나 넘기로 결정을 할 수 있다. 그의 반배로는 한 발짝, 반 발짝만 양보하거나 배려를 한다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경계선이라는 것이 비단 인간관계만의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라는 범주 내에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근로 계약이나 업무 분담, 일정 조정 등 서로 한 발짝, 반 발짝만 양보한다면 좋은 관계나 결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한 발짝의 배려, 반 발짝의 용서 등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존재하고 경험했던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정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일방적인 배려와 용서를 원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한 발짝, 반 발짝의 배려와 관계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래서 경계선 내에서의 한 발짝, 반 발짝의 중간선을 두고 상대방과 정황에 맞춰서 배려나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선에 관하여


  이러한 중간선 또한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 하지만, 인지하면서 관계와 정황을 바라본다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익숙한 상황이나 관계라거나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뎌졌다면, 상대방이 그만큼 무뎌졌다면 한 번쯤 경계선과 그 사이에 있는 중간선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배려가 필요하면 배려를, 엔딩이 필요하다면 엔딩을 선택하여 후회나 스트레스에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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