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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점이 좋은데 여긴 물음표 투성이

by 조용

봄 방학 후 첫 수학 수업.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났다.


1학년 첫 수학 수업을 여전히 아주 생생히 기억한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시간 반 동안 나를 짓누르던 긴장감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궁금증, 그리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와 같은 혼란이 모두 눈물로 하나가 되었다. 나의 눈물을 눈치 챈 교수님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렇게 나는 우는 얼굴로 교수님과 처음 일대일 대면했다. 그때 나눈 대화는 아쉽게도 생생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대화랄 것도 없었을 지 모른다. 나는 그치지 않는 눈물로 나의 혼란을 포효했고, 교수님은 나를 진정시키시며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고, 익숙해질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나를 울린 그 1학년 1학기 첫 번째 수학 수업은 많은 조니들이 가장 사랑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 첫 번째 수업이기 때문이다. 첫 수업에서 우리는 원론을 여는 스물 세 가지의 정의(Definition)과 각각 다섯 개의 공리(Postulates), 공준(Common Notions)를 두고 토의한다. 첫 번째 정의다: "A point is that which has no part."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며 혼자 읽을 때는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수업에서 나는 상상치도 못한 질문을 마구 던지며 열띤 토의를 이어가는 친구들을 보고 벙쪘다. '점'은 뭔지, '부분'은 뭔지 부터 시작해서, 세 번째 정의에서는 선의 양끝은 점이다 라고 하는데, 그럼 선의 끝도 부분이 없다는 건가? 그리고 네 번째 정의는 '직선'은 점들이 쭉 곧게 놓여 있는 선이다 라고 하는데 그럼 직선도 부분이 없는 건가? 두 번째 정의에서 ‘선’은 길이만 있고 폭이 없는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럼 부분이 없어도 길이가 있을 수 있는 거네?

생각하면 할 수록, 다른 정의를 더 참고하면 할 수록, 그리고 질문하면 할 수록, 답에서 멀어져가는 듯했다. 나는 답을 찾고 싶었고 온점을 원했다. 그런데 수업은 물음표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끝났다. 많은 경우에 시작보다 더 큰 물음표로 끝났다.



오늘 수학 수업도 그랬다. 오늘은 독일 수학자 리하르트 데데킨트(Richard Dedekind)의 Essays on the Theory of Numbers 첫 수업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난 지금, 내 공책에는 수업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물음표가 남았다.


오늘 다룬 부분은 Properties of Rational Numbers[유리수의 성질]이었다. 본격적인 토의에 앞서 데데킨트의 서론을 읽으며 그의 프로젝트가 무엇일까 질문했다. 데데킨트는 기하학에 의존하지 않는, 산술의 과학적 토대(Scientific foundation for arithmetic)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기하학이 싫다거나 열등하다는 게 아니다. 특히 미분학에 있어 기하학이 얼마나 유용한 지 그는 시인한다. "Even now such resort to geometric intuition in a first representation of the differential calculus, I regard as exceedingly useful, from the didactic standpoint, and indeed indispensable, if one does not wish to lose too much time."

그는 이어서 말한다. "But that this form of introduction into the differential calculus can make no claim to being scientific, no one will deny." 기하학을 통한 미분학은 scientific하지 않다고 한다. 기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scientific 하지 않다기 보다는, 미분 접근에 있어 기하학이 scientific하지 않다는 주장같다. 데데킨트는 순수 산수이면서 동시에 흠잡을 데 없이 철저한 무한소 해석학 원리의 기반을 찾고자 한다.("to find a purely arithmetic and perfectly rigorous foundation for the principles of infinitesimal analysis").


한 시간 반동안 우리는 질문했다. 데데킨트는 'scientific'이라는 형용사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 걸까? 산수(arithmetic)와 기하학은 어떻게 다른가? 산수와 기하학의 차이가, 유클리드 원론에서 배우는 multitude, magnitude의 차이와 비슷한 걸까? 휴대폰을 무한대로 쪼개는 행위와(기하학 예시), 데데킨트의 시스템 R, 다시 말해, 숫자의 시스템(산수 예시)을 무한대로 쪼개는 건 같은 행위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유리수는 왜 유리수이고, 무리수는 왜 무리수인가? 숫자란 무엇인가? 데데킨트는 뺄셈과 나눗셈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인간이 음수와 분수를 창조("created")했다고 말하는데,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면 그 근원(source/origin)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근원이란게 있긴할까? 0은 왜 숫자인가? Continuity가 산수와 기하학에서 마주하는 한계는 각각 어떤 것인가?


수업을 시작하는 질문은 "What is the project of Dedekind here?"(데데킨트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였고, 수업을 마치는 질문은 "Why does it matter?"(산수로 하던 기하학으로 하던 무슨 상관일까? 왜 기하학에서 온전히 독립한 산수로 미분학을 접근하려 할까? 데데킨트의 이 노력에 어떤 중대함이 함축되어 있을까?)였다. 결국 수업이 끝나고 나는 또 물음표와 단둘이 남았다. 이 물음표 투성이 혼란이 나를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때론 좀 멀리 갔으면 좋겠는데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내 곁에 꼭 붙어있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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