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벚꽃으로 물들고 목련 잎이 하나 둘 떨어지며 개나리가 피어나고 있다. 개나리가 먼저 피고 목련, 벚꽃 순서로 피던 것이 올핸 어찌 된 일인지 모두 한꺼번에 개화하고 말았다. 물론 벚꽃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가려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봄을 알리는 수많은 꽃들이 자기 온몸을 다해 피어나는 것을 어찌 알아주지 못할까. 멀리 양재천에 갔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위아래 3중 길로 펼쳐진 꽃길에 흩날리는 벚꽃비를 마다할 수 있을까. 삼삼오오 연인이며 가족들이 줄지어 나온 길에 꽃은 그저 거들뿐이다. 바람이 살랑 불어오기라도 할라치면 그제야 수줍은 듯 흩날리는 벚꽃의 자태라니.
밤에 보면 화사함이 빚 바랜듯하지만 낮에 보는 벚은 그저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계절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은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평소에 깨끗하고 착하게 살지 못했으니 이 기회를 빌어 마음을 다잡으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마치 누군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듯하다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드디어 봄이 왔으니 맘껏 즐기라며, 그저 자기의 얼굴을 빼꼼 들이밀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려하다며 좋아하고 예쁘다는 말도 모자라 아름답다는 감탄을 자아낸다.
곁에 물오른 수많은 가지엔 그저 생명력이 움트는 어린잎들이 돋아났을 뿐인데 일 년 중 가장 어린싹들이 존재감을 보여준다. 아마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를 보듯 피어나는 새싹의 파릇함에 피곤이 가시고 온갖 시름을 잊는 듯한 마음이다. 피어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새싹이건 사람이건 모든 만물은 그저 아름답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고결함이 있어서다. 처음엔 환영하고 영원히 변하지 말라고, 순간의 아름다움이라도 기억해 주겠다는 듯 그렇게 맞이하곤 보내는 일을 한다. 알 것이다. 누군들 지금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올해 피고 지는 꽃이라 하더라도 내년에 살아있다면 다시 더 큰 생명력으로 살아 그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그래야 한다. 열심히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고 그 자리를 지키며 빛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자기 역할과 힘을 다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에 산다는 것은 내년에 다시 피어날지 아닐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것 또한 피어나는 것만큼이나 아름답지 아니한가. 젊어서 어려서 아름다운 것도 영원하지 않듯 나이 들고 늙어도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내면에 차곡히 쌓아 둔 것이며 일생을 통해 축적한 자기애와 스스로가 지닌 에너지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하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벚꽃이 혼자서 피어있는 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군집을 하면 더 빛나듯이 말이다.
모두 각자 다른 종이며 모양과 색이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어울려 있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빛이 되고 기운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나도 이런 벚처럼 스스로 아름답다 할지라도 다른 이들과 함께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한철 피고 지는 꽃일지라도 내년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미학과 때 되면 스스로 피어나는 것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 그래야 나도 벚꽃 같은 날마다 피어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오늘 난 피어나는 시간을 살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