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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l 14. 2024

'냉징고'를 위하여


아이들이 어릴 적엔 '엄친아'란 말이 유행했다. 엄마 친구의 아들로 잘나고 공부 잘하며, 만능 스포츠맨에 잘생기고 키까지 커서 붙은 이름이다. 사실 우리 집엔 엄친아가 아닌 '아친아'가 여럿 있다. 남편 친구 아들들로 비슷한 또래면서 엄친아의 기준을 모조리 섭렵한 그런 들의 소식이 늘 들려오곤 했다. 한 번도 만나거나 마주한 사이도 아니건만 늘 학교 입학부터 학년이 바뀌고 중학생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갈 중요 고비마다 수십 년째 성장을 같이한 자녀들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수다스럽다. 좀처럼 사생활을 나누질 않는 나에 비해 남편은 회사 동기들에게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다 주면서 비슷한 또래의 정보를 주고받곤 했다. 그중 한 명은 내 아이보다 한 두 살 많았는데 유치원서 영어를 배우고 온 아이가 apple, sky처럼 곧잘 말하길래 아들 보고 이것저것 질문하다


"그럼 냉장고는?"

"냉징고?"

"......"


호기롭게 대답했던 아이 대신 충격받은 엄마는 그 뒤 영어학원을 알아보고 영어에 매진해 그 아들이 외고에 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성공했다고 건넨 덕담 때문인지 그 뒤 대학도 취직도 일사천리로 원하는 대로 이어졌다. 얼굴도 모르지만 늘 '냉징고'로 불리며 남편 통해 엄친아로 외고를 거쳐 대학과 공무원이라는 꿈을 이뤄낸 밥상에서 듣기 좋은 레퍼토리였다. 한때 아들은 스포츠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는 남의 집 아들들 자랑을 들으면서 어떤 자식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로 우리를 웃게 했다.


그런 시샘 때문이었을까? 시청 앞에서 일어난 버스기사의 사고로 젊은 삼십 대 공무원이 목숨을 잃었단다. 그게 그 자녀 일 줄이야. 남편은 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처참하게 정신 줄 놓은 친구를 어떻게 위로할지 해 줄 말조차 없었다 한다. 소식을 듣는 순간 손이 떨리고 말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자식 잃은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갑자기 전해 들은 비보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어떻게 진정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지 모르는데.


한참을 말없이 지켜보고만 왔다. 자식이 다치고 간단한 수술을 한다 해도 마음이 서늘하고 신경 쓰이는데 아무 일 없던 평범한 저녁 밤늦게 받아 든 전화에 사고 당사자라는 소식을 접했을 시 어떠했을지. 가끔 전해 듣는 모임에서 남편들의 단골 메뉴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학교를 갔는지, 취직은 잘했는지로 가늠하는 사이였을 뿐 일면식도 없던 내 마음이 서늘하아리다.


살면서 숨 쉬고 마주하며 아무 일 없는 현실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극히 평범하게란 말은 지독히도 어려운 것이란 걸 체득한 순간일 테다. 언제든 선택하면 누릴 수 있는 것을 지금을 희생하고 감당하면서 미뤄야 하는 건 아니다. 건강하게 현재를 살고 아무런 사고 없이 무탈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가족이 받은 상처가 빠른 회복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사고 #엄친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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