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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ul 05. 2024

내 남편을 소개합니다 3탄

한때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웠을 때 멋있게 보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닌

1. 멋을 내지 않아도 멋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마른 남자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몸매가 마르고 곧아서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옷 입은 테가 나고, 대충 빗만 빗고 나온 듯 헝클어진 머리칼도 왠지 모르게 멋스러워 보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습조차 멋있게 보이던 시절...

아마 제 눈에 콩깍지가 씌웠던 때이겠지요.     


그때가 언제였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기만 합니다. 언제 세월이 흘렀는지 어느덧 쉰이 넘었네요. 팔팔했던 연애시절, 달콤했던 신혼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내 살이 네 살인지, 네 살이 내 살인지 모르는 나이까지는 아니어도 손만 닿아도 찌릿하던 연애시절이나 결혼 초기에 비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긴 한 것 같네요.     


지금은 이 남자가 멋을 부려도 멋이 날까 말까인데 멋이랑은 거리를 두기로 했는지 영 외모에 신경을 안 쓰네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어요. 


“여보세요, 자작가님. 나이가 들수록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거울을 보면 뭔가 느끼는 거 없어요? 같이 다니는 사람을 생각해서 신경을 좀 써 주면 안 되겠니?” 

물론 제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2. 그때가 스물몇 살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리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날씨가 흐렸던 것이 영향을 주었을까요? 아님 제가 안경을 맞출 적절한 때를 놓쳐서 그리 보였던 것일까요?      


남편이 남자치고 손가락이 가는 편이거든요.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여져 있는 담배에서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연기가 몽환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길게 한 모금 빨고서 연기를 뱉어낼 때의 그 모습이... 


담배를 피우는 몸의 선이 그때는 참 멋있고 예뻐 보였어요. 담배를 저렇게 멋있게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코웃음이 나는 것이 제가 어리기는 어렸었나 보네요. 사실 20대 초중반에 뭘 알았겠어요. 거기다가 콩깍지가 단단히 씌웠으니 뭐, 모든 게 다 멋있어 보였겠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남편이 담배를 피웠어요. 어느 날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켜는 모습을 보는데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더라고요. 1회용 라이터가 수명이 다했는지 불이 잘 붙지 않자 마구 흔들어 대면서 불을 붙이려고 손을 오므린 상태로 여러 번 시도를 하는데 왜 이리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은지. 여러 번 시도를 하다 보니 엄지손가락에 라이터돌에서 떨어진 가루가 까맣게 묻었나 봐요. 근데 그걸 또 저한테 이거 좀 봐봐, 하면서 보여주는 거예요. 지저분하게스리. 혹시 털어달라는 거였을까요?        


담배 얘기를 하니깐 이 기억이 떠오르네요. 십몇 년 전이었을 거예요. 방콕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갑자기 하는 말이,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야지 안 되겠어. 6시간 동안 날아갈 텐데 지금 한 대 피우지 않으면 비행기에서 참느라 힘들 것 같아.”

할 거면 진즉에 하지 꼭 마지막에 와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들은 다 그런가요? 

저는 좀 참아보라고 했어요. 이미 게이트 앞에 왔고 흡연을 하러 가려면 꽤 먼 길을 걸어갔다가 와야 하니깐 좀 참아보라고. 곧 탑승이 시작되니깐 참고 나중에 도착해서 피우라고.     


제 눈치를 살살 보던 이 남자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냅다 돌아서더니 흡연실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더군요. 그때는 신경질이 좀 났어요. 그놈의 담배, 담배, 담배. 어휴, 정말 저러고 싶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10분쯤 지났을까요? 헐레벌떡 뛰어오는 남편을 보니 어이가 없는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저렇게까지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와야 하는 저 남자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에 좋지도 않은데 끊으면 좀 좋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배를 피우고 온 남편이 하는 말이 흡연실이 너구리굴이 따로 없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거의 따닥따닥 붙어서 담배를 피우는데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고, 거의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담배를 피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과거에 담배를 좀 줄이거나 끊으면 안 되냐고 하면 예전에 제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했다면서. 그것 때문에 더 피우게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람이 그렇게 쉽게 말을 바꾸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데 정말 얄미웠어요. 손바닥으로 쫑알거리는 저 입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그냥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20대에는 어려서 그랬는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던 적이 잠깐 있었어요. 그러나 담배연기가 점점 싫어지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런데 담배를 끊기까지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네요. 

으으, 그놈의 담배냄새.

지금 생각해 보면 사귈 때 그에게서 나는 담배냄새가 왜 좋았고 담배 피우는 모습이 왜 멋있게 보였는지는 정말 미스터리네요.     


지금은 다행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답니다. 담배를 끊은 지 십 년이 넘었을 거예요. 이 타이밍에 박수를 한번 쳐주어도 될 것 같네요. 짝짝짝! 잘했어. 

저는 잘할 때는 잘했다고 확실하게 말을 해주는 쿨한 여자거든요.       

   

3. 가득 술을 채운 소주잔을 들어서 단숨에 꺾어서 원샷으로 마시는 폼이 소위 요샛말로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었어요. 술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풀리는 눈동자도 멋있어 보였으니. 참 내가 미쳤지, 싶네요.   

  

꼭 술자리는 아닌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술을 마실 때면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주고는 했어요. 재미있고 웃긴 얘기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저런 얘기를 들었을까 싶은 야한 이야기들, 소위 음담패설이라고 하는 얘기들을 들려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그때는 제가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순진했고 약간의 내숭도 있어서 누군가가 야한 얘기를 할라치면 고개를 저으며 하지 말라고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다고 손짓으로 싫다는 표시를 아주 약하게 하면서 귀는 쫑긋 세우고 들었답니다. 

나중에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주면 재미있어하고 좋아했던 터라 어떻게든 열심히 기억을 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당시를 회상하면 참 어리고 순진했던 시절 얘기네요.     


어쩌면 당시의 남자친구이자 지금 제 남편이 된 이 남자가 선수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돌이켜보면 유머감각도 있고 말을 재치 있게 잘하기도 해서 순진한 제가 홀라당 넘어가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제 남편은 술을 마시면 조금만 마시는 게 아니고 취할 때까지 마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저로서는 술자리가 길어지면 괴롭고 지겨웠어요. 맛있지도 않고 쓰기만 한 술을 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술이 들어갈수록 말이 많아지는 것도 싫고, 게슴츠레하게 눈이 풀리는 것도 싫고, 갈지자로 걷는 것을 보는 것도 싫고, 온통 싫은 것투성이 인데.

과거에 술을 마시는 모습이 왜 멋있게 느껴졌는지 제가 술이 취했었나 봐요. 아니면 분위기에 취해서 제대로 생각이나 사고를 하지 못했거나.      


지금은 남편이 담배에 이어 술도 끊은 상태예요. 어떻게 술과 담배를 둘 다 끊게 되었는지. 죽을 때까지 못 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부분에서 만큼은 의지력이 대단하다고 인정을 해주어야겠네요. 인정!     


말을 잘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해서 저를 자주 웃겨 주기는 해요. 물론 짜증을 제대로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 남자가 연기자가 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을 연기인지 아니면 원래 내재되어 있던 모습이 순간 나오는 건지는 몰라도 맛보기로 잠깐씩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연기를 해도 참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제 남편인 자작가에게 어울리는 배역으로는,

양아치나 개저씨, 꼰대 또는 비굴한 역할이나 굽신굽신 대는 역할, 허술한 역할, 깐족대는 역할 등을 특히 잘 소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멋있는 역할은 하나도 없네요. 호호호.     


이제는 멋을 좀 부렸으면, 멋을 부려도 티가 날지 안 날지도 모르는데 멋을 낼 생각을 안 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애처로운 마음이 듭니다. 가뜩이나 윗머리의 머리숱이 줄어들어서 휑한데 뒷머리에 흰머리가 띠처럼 이어져서 마치 하얀 머리띠를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애잔한 마음이 드네요.     

 

이제 보니 자작가, 당신도 나이를 먹었네.        




             

(이 글은 아내의 관점에서 자작가인 제가 써본 글입니다.)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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